결혼을 준비하는 이에게 보내는 소소한 팁
결혼은 인생을 건 도박이라 생각한다. 삶의 틀을 크게 뒤흔들 아주 중대한 결정이지만, 비교적 사람을 잘 모르는 나이에 선택하게 되는 아주 위험한 도박.
내가 그 도박을 한 당사자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엉겁결에, 이 정도면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만난 지 5개월 만에 혼인신고서 작성을 완료한 내 도박의 결과는, 다행히 십 년 넘게 별다른 잡음 없이 유지 중이다. 그는 현재 이 세상에서 나와 가장 친한 남자인 동시에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자 남편이다.
초특급 도박이 무난한 결과로 이어지는 데엔 몇 가지 기준이 있었고 살아보니 꽤 괜찮은 기준이 아니었나 생각하고 있어 한번 말해볼까 한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방향은 다르니 이것이 정답이라 할 순 없지만 가볍게 들어보시라.
0. 자신을 알라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부터 또렷하게 알아야 한다. 연애를 많이 해봐야 한다는 말이 존재하는 이유는 경험을 통해 명확해지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론만 빠삭해서는 알 수 없는, 예측하기 어려운 인간 대 인간의 교류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들.
몇 번의 연애 결과가 쌓이면 상대방의 어떤 점에 흔들려서 그렇게 좋아했는지 혹은 관계 속에서 내가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자신의 성향을 알고 나면, 상대방이 내게 끼칠 영향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해진다. 내 경우엔 자극적이며 재밌는 사람에게 끌렸지만, 그들과의 연애는 감정의 낙차가 커서 즐거운 만큼 불같이 싸울 일도 많았다. 그런 감정의 롤러코스터가 내게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걸 연애가 끝난 후 깨달았다.
또한 감정은 일단 주고 나면 주워 담기는 매우 힘드므로 싸늘한 느낌이 오면 재빨리 후퇴하자. ‘나쁜 건 알지만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어’라는 얼토당토않은 상상의 싹을 제거해야 한다. 극복할 일은 애초에 적어야 한다.
다양한 연애를 해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렵다면 적어도 내가 포용할 수 있는 것과 용납할 수 없는 것을 리스트로 작성해보도록 하자.
1.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결혼은 연애와 다르다. 연애야 좋을 때만 볼 수 있고 또 싫으면 안 봐도 되지만, 결혼하면 도망칠 곳이 사라진다. 가능하다면 24시간 내내 붙어있어도 거슬릴 문제가 적은 사람과 살아야 한다.
오랜 시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두 사람이 만나 함께 살아가게 될 일상.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선 선택해야 할 것이 많다. 선택의 과정에서 싸우고 부딪힐 일 역시 적진 않을 것이다. 덜 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평소 그가 생각하는 가치관을 엿보면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정치 성향이 그 사람이 평소 생각하는 철학을 알 수 있는, 그 사람이 앞으로 걸어갈 삶의 방향을 엿볼 수 있는 가장 쉬운 지표라고 생각한다.
정치인 혹은 정당이 하는 워딩을 한 번 유심히 살펴보시라. 각 정당이 추구하는 바는 명확하게 다르다. 그들이 생각하는 교육, 경제, 생활, 복지, 투자 등 모든 것이 내 가치관과 비슷한지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결혼도 정치와 다를 것 없다. 앞서 말한 그 모든 것을 다룬다. 삶에서 내가 무엇을 우선순위로 두었는지 생각해보시라.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앞으로 한국의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무상급식 혹은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등 한국의 복지 시스템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떤지 등 중요하게 여기는 주제에 대해서 결혼 전에 대화를 꼭 나눠보시라.
한배를 탄 사람과 선택의 파도 앞에서 노 들고 싸우고 싶은 생각이 아니라면, 되도록 같은 색을 지닌 사람을 만나야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이라 말해본다.
2. 그 사람의 서재
나는 누군가 만날 때 “대화가 통하는가”를 무척 중요하게 여겼다. 외모가 훌륭하더라도 혹은 돈이 많더라도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호감이 일지 않았다.
나는 호기심 많은 사람이어서 대화의 주제는 다양했고 서로 의견 주고받기를 즐겨했다. 또한 좋아하는 것에 대해선 공감하길 원했다.
남편과 연애하기 전, 우리의 공통 주제 중 하나는 만화책이었다. 어느 날 그가 갑작스레 자신의 집으로 나를 초대했다. 집에 만화책이 많다는 이야기를 건네며 구경하러 오라 했다. 반신반의했지만 호기심 해소차 초대를 수락했고, 그의 책장을 보고 이 사람과 연애해도 괜찮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의 집은 크지 않았지만, 햇살이 예쁘게 들어오는 집이었고 단정하게 정리되어있었다. 그의 책장엔 흥미로운 만화책이 많았으며 그 외에도 내가 좋아하는 책과 읽고 싶은 책 그리고 DVD, 클래식과 재즈 음반이 다양하게 있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수집한 목록이었을 것이다. 단숨에 그의 과거, 살아온 방향을 엿본 기분이 들었고 그 서재를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화는 돈 주고 살 수 없다. 취향은 그 사람이 그날까지 살아오며 형성된 습관 같은 것이기에 쉽게 변하기 힘든 종류의 것이다.
얼굴은 수술하면 되고 체형은 살 빼면 그만이오,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과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길고 긴 여행의 동반자를 선택할 때엔 무형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조언하고 싶다.
우리의 취향은 비슷한 색과 질감을 지녔고, 앞으로도 대화의 소재는 새롭게 생성될 것이다.
3. 그 사람의 결
언젠가 길을 걷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환한 대낮에 대로변을 걷고 있는데, 내 앞에 있던 사람이 마시던 음료수 캔을 바닥에 휙 던졌다. 구석에 버리는 것도 아니고 살포시 내려놓는 것도 아니고 정말 길 한복판에, 어떤 망설임도 없이 내던지는 모습을 목격하고 충격에 빠졌었다.
참고로 나는 사탕 비닐도 주머니에 넣어 집에 와서 버리는 사람이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인데, 그 사람에게는 가능한 일이었다. 몸에 밴 행동은 어릴 적부터 길들여진 습관일 확률이 높다. 즉 가정에서 어떤 육아관으로 아이를 양육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본다. 결혼은 가족과의 결합이기에 상대방의 부모 성향이 나와 얼마나 맞는 지도 중요한데 나는 여기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길에 담배꽁초 버리는 사람, 침 뱉는 사람 등 무심코 하는 행동을 가볍게 넘기지 말아라. 무엇보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라. 식당에서 혹은 쇼핑할 때 종업원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품성이 드러난다. 타인에게 상냥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 당신에게도 혹은 후에 태어날 자녀에게도 그런 일관된 태도를 유지할 확률이 높지 않겠나. 유아기부터 공공 예절을 가르치는 데엔 다 이유가 있다고 본다. 함께 살아갈 때 지켜야 하는 아주 단순한 덕목. 그거다.
0. 아니면 그만둬도 돼
누군가와 특별한 관계가 되겠다고 법적으로 기록한다는 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일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비혼의 시대에 결혼 추천 글까진 쓰고 싶지는 않지만, 누군가와 함께 사는 일이 장점이 없는 건 아니다.
나와 코드가 비슷한 이와 한다면 무척 즐겁고 안정감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내 경우에는 결혼하고 나서의 삶이 결혼 이전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척 건강해졌다고 느낀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를 때 엉겁결에 한 선택이 나를 괴롭게 한다면, 망설임 없이 말하겠다. 어서 그만두시라고. 실수할 수 있다. 인생은 길고 내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 역시 중요하다.
만약 당신이 앞으로 결혼을 할 예정이라면, 아니라는 판단이 들 때 빨리 그만둘 마음의 준비도 함께 하라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일 년 이상은 살아보고 혼인신고하길 바란다. 아이는 낳는 순간 되돌릴 수 없는 항해로 들어서게 되니, 그것만큼은 꼭 염두에 두길 바란다. 육아는 생각보다 훨씬 피곤한 일이며 동시에 도망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책임져야 하는 일이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이다. 인구 절벽 걱정이고 뭐고 남이 한다고 나도 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지뢰를 밟을지언정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사랑하시라 전하고 싶다. 삶을 변화시키는 건 미움보다 사랑이더라. 나의 지난 연애는 고달팠지만, 후회는 남지 않았고 그 상처로 인해 현재 건강해졌다고 믿으며 살고 있다.
덧붙임
남편의 외모는 내 취향이 아니었음에도, 그와 연애하기로 마음을 다지게 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어느 날 새벽, 그가 보내온 문자 한 통에 마음이 움직였다.
She is the only lady I have ever known who was as charming when she was drunk as when she was sober. (Ernest Hemingway, The Sun Also Rises) Good nite ;-)
헤밍웨이를 말하는 남자라니!
술을 즐기지 않는 남자가 취해 사는 여자를 만나 고생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