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의 주도권은 제가 갖겠습니다

페미니즘의 시작

by 전주영




제모, 관장, 회음부 절개.

흔히 ‘출산 굴욕 3종 세트’라 부르는 이것을 꼭 해야만 할까?


임신하고 아이를 만날 준비를 하며 생각했던 첫 번째 질문이다. 인간의 신체 중 제일 민감한 부위를 뽑으라면 남녀노소 단연 회음부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은데…

조심스럽고 예민한 그곳을 마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날카로운 메스로 절개해야 한다면? 게다가 꿰맬 때 마취 안 하고 꿰맨다면서요?

잠깐의 상상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해지고 아이를 만날 설렘보다 공포가 앞섰다. 사람에 따라 용인할 수 있는 고통의 범위가 다르겠지만, 내 기준엔 가능한 피하고 싶은 고통이었고 처음 겪어보는 출산을 앞두고 되도록 스트레스는 줄이고 기쁘게 아이를 맞이하고 싶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출산 경험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이 낳을 당시의 고통이 커서 회음부 절개는 하는 줄도 모른다는 말이 있지만, 그 상처가 아무는 데 시간이 상당히 소요되고 괴롭다고 하였다.

출산 후엔 혈액, 점액 및 자궁 속막 조직 즉 오로가 나와 생리 패드를 착용하고 최대 3주 정도 지낸다고 한다. 일주일 생리하는 것도 괴롭건만 회음부 절개까지 하고 3주를 지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내 출산 예정일은 8월 말이었다. 늦여름이라지만 더위에 그 고통까지 더해진다니! 상상해보시라!)





그렇다면 회음부 절개는 출산의 필수 요소인가?


출산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었고 그중 내 눈길을 잡아챘던 정보는, 현대 사회의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출산은 의료진이 그 과정을 하기 쉽도록 세팅되었다는 것이다.

침대에 누워 양쪽으로 다리를 벌린 채 힘을 준다. 그래야 의료진이 내려오는 아기를 보기 쉬우니까. 하지만 사람은 용변을 보더라도 중력의 법칙에 따라 앉아서 바닥을 향해 힘을 줘야 잘 나오지 않는가. 똥보다도 훨씬 큰 사람을 누워서 낳아야 한다니,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굴욕 3종 세트’ 역시 마찬가지다. 의료진의 수고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산모의 입장은 뒷전인 셈 아닐까.

가능하다면, 그 모든 걸 피하고 싶었다.





아이는 제가 낳습니다.


나는 혼자 침대에 실려 수술실에 들어가 분만대 위에서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남들이 다 그렇게 한다고 하지만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아이를 혼자 만든 것도 아닌데, 미지의 세계가 열리는 무섭고도 두려운 순간엔 여러 감정을 혼자 오롯이 겪어야 하는 건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아니, 무엇보다 '출산의 주도권’이 온전히 내게 있기를 바랐다.

출산은 여성의 삶에 있어 일생일대 가장 큰 이벤트 중 하나가 아니던가.


불필요한 과정은 가능한 생략하고,

내가 최대한 편하게 느낄 수 있는 환경에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아이를 만나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요소들을 적절하게 배합해서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고 싶었던 나의 출산.






아쉬운 자가 우물을 파야지!


내가 원하는 출산의 첫 번째 조건은 산부인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이었다. 아이를 낳는 일은 그 과정에서 위급한 상황이 생길 변수가 존재하니 응급 수술 및 처치 가능한 전문 병원을 우선으로 두었다.

두 번째 조건이자 출산 프로젝트의 핵심. 출산 과정에서 산모의 의견을 우선 수렴하고 굴욕 3종을 하지 않아도 되며 수중분만이 가능한 곳이었으면 했다.

십 대 무렵 외국 다큐멘터리에서 수중분만하는 영상을 봤던 기억이 있다. 고요하고 안정된 환경, 널따란 욕조 속 미지근한 물에 들어가 있으면 몸이 이완되며 고통이 덜 느껴진다는 요점의 다큐멘터리였던가. 언젠가 아이를 낳게 되면, 나도 이렇게 해야지 생각했었다. 드디어 그 계획을 실행할 때가 왔다.





이제는 낳아야만 한다.

되돌이킬 수 없는 항해!!!


내가 첫아이를 임신한 시기는 2011년이었고 그 당시엔 ‘자연주의 출산’이라는 출산의 한 방법이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는데, 운 좋게도 경험 많은 산부인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자연주의 출산 전문 병원이 집 근처에 있었다.

자연주의 출산 병원은 일반 산부인과와 출산의 방향성이 다르다. 내가 출산을 준비할 당시 일반 산부인과의 출산 과정에는 굴욕 3종 세트는 기본이요, 분만 유도제라던가, 무통 주사 같은 선택 옵션이 있었는데, 자연주의 출산 병원에서는 그걸 가능한 한 배제하려고 한다.

그 이유는 출산할 때 우리의 몸은 쾌락 호르몬, 행복 호르몬이라고 부르는 엔도르핀이 생성된다고 하는데, 모르핀보다 100배 정도 더 강력한 엔도르핀의 수치는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꾸준히 가파르게 상승하여 출산의 고통을 완화시킨다고 한다. 반면 약물을 쓸 때 엔도르핀 수치가 급격히 떨어진다고 한다.

나는 온전한 내 힘으로 아기를 낳길 원했다. 겁이 없어서는 아니고 단순한 생각이었다. 개나 고양이 혹은 소나 돼지가 출산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동물도 할 수 있는데 나라고 못 할까 싶은 마음이었다. 엔도르핀의 역할을 믿기도 했고, 확인해보고 싶기도 했다. 쾌락의 호르몬이라 하지 않는가. 모르핀보다 강력한 이 쾌락 호르몬이 내게 선사할 황홀감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 호기심이 나를 자극했다.

그리하여 병원의 가치관과 내가 원했던 출산의 방향성이 같았기에 나는 자연주의 출산 병원을 선택했고 출산 과정까지 별다른 불만은 생기지 않았다. 출산 교육 2회 받는 걸 제외하고 나면 일반 산부인과보다 검사하는 횟수도 현저히 적었다. 선생님께서 건강한 식단 유지하라 권하셨는데 그걸 못 지킨 것만 빼고. (임신했을 때는 먹고 싶은 음식 다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온전한 내 힘으로 출산하기


자연주의 출산 병원에서 수중분만으로 두 아이를 낳은 나의 경험을 공유하자면 이렇다.

첫 아이는 진통이 7시간 정도로 길었고 내 뜻대로 병실을 돌아다니며 움직이고 여러 자세를 취해보았지만 아픈 건 매한가지였다. 첫째 낳을 때는 호흡법도 제대로 몰라서 어떻게 해도, 아팠다. 고통 완화를 위한 마사지를 해줘야 할 남편의 손은 고양이 손보다도 못했고 (하긴 이 남자도 출산이 처음인데 뭘 알겠나) 소리도 많이 질렀다. 나중에 들은 바는 그렇게 소리 지르면 더 아프다고 한다. 아무래도 소리를 지르면 몸이 긴장하니 아기가 밑으로 내려오기 힘들고 진통은 길어진다….

지금 생각하니 초산이어서 첫 출산이 힘든 것도 있었겠지만, 아이의 머리 모양도 중요하다. 남편의 머리둘레는 크고 넓었고 아들은 그 모양을 똑같이 이어받았다. 유전자의 힘이 얼마나 센 지 나는 출산을 하며 깨달았다. 아들을 낳기 힘들었던 이유는 오로지 머리둘레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나올 만하면 그 크기가 버거워 힘에 부쳐 실패하길 반복했다. 우여곡절 끝에 태어난 아이의 머리는 ‘외계소년 위제트’처럼 머리 모양이 길쭉해져 있었다. (시간이 지나니 다행히 원 상태로 돌아왔다.)


첫째 수중분만하면서는 부끄러운 것도 몰랐다. 나는 출산 준비를 하며 수중분만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찾아보지 않았었고, 그로 인해 욕조에 들어갈 때 입는 분만 드레스는 준비할 생각도 못 한 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낳았다. 지금이야 아찔한 감정이 샘솟지만, 그때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어서 이 고통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고, 고통에서 벗어나 환희에 빠진 나는 수건 한 장 걸친 상태로 당당하게 사진 촬영까지 했다.


둘째는 41주에 4.2kg으로 태어났다. 일반 산부인과였다면 초음파 검사로 확인을 먼저 했을 테고, 아이가 커서 내 의사와는 다르게 제왕절개를 해야 할 확률이 높았을 것 같다.

자연주의 출산 병원에서는 초음파 검사 횟수도 일반 산부인과에 비해 적어 우리는 둘째가 세상에 나올 때까지 몇 키로일지 예상하지 못했다. 39주 정도에 마지막 초음파 검사를 했었고 3kg대였던 둘째는, 내가 출산 전날까지 열심히 먹은 결과로 마지막 주에 부쩍 살이 붙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다.

아이가 예정일을 지나도 나오지 않아 걱정했던 내게 병원 측은 산모가 원한다면 추가 조치를 할 수는 있지만, 아이 상태에 특별한 문제가 없었으니 우선 마음 편하게 기다려보길 권했다. 아기가 원하는, 준비된 시간이 있다고 했다.

둘째는 예정일을 일주일 넘기고 41주 되는 날 우리에게 얼굴을 보여주었다. 둘째 진통은 오후 10시 즈음부터 시작되었는데, 아들은 바닥에 등을 대고 자는 습관을 들인 아이고 남편 역시 잠에 취약한 유형의 인간인지라 두 남자의 취침 시간을 고려하여 집에서 호흡하며 해가 떠오르는 시간까지 최대한 버텨보기로 했다.





진통은 파도와 같다.

내 몸에 스윽 들어왔다 다시 빠져나가는 고통.


한 번 경험을 해보았더니 크게 무섭진 않았다. 약물의 힘을 빌리지 않고 아이를 낳은 자의 자신감이었을까.

진통이 밀려오면 아무도 없는 고요한 바닷가, 고운 모래밭 위에 있는 내 모습을 상상했고, 바다로 되돌아가는 파도처럼 이 진통은 곧 지나가리라 생각하며 네 발 기기 자세로 몸에서 힘을 빼고 호흡을 내쉬려 했다.

그 결과 자정 무렵 시작된 진통은 새벽 즈음엔 그 주기가 살짝 길어졌고 나는 잠시 눈을 붙이기까지 했다.

머릿속 파도가 정말, 효과가 있었다.

이윽고 해가 떴고 나는 남편과 아들을 깨워 병원에 가며 엄마께 병원에 오시라 연락드리고, 출산 전문 사진작가님께도 연락을 드렸다. 첫째를 만나면서 전체 과정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하였더니 아쉬움이 오래 남았었다. 이번엔 그것을 만회하고자 전문가의 손길을 빌어 출산 과정 전체를 기록하고자 했다.


나는 이미 아이가 꽤 내려온 상태로 병원에 도착하였고 바로 욕조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자연주의 출산이 마음에 들었던 점 중 하나는 아들이 욕조에 함께 들어와 출산에 참여할 수 있어서였다.

아들은 출산을 도와주는 꼬마 ‘둘라’였다. 아들이 동생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했다. 엄마가 수술실에 들어가 낯선 존재를 데리고 오는 게 아니라 탄생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욕조에서 물놀이하다 엄마가 아프면 컵에 물을 담아 엄마 어깨에 끼얹어주고, 갈증이 나면 물을 마실 수 있게 도와주었던 아들. 욕조 밖에서 할머니와 놀기도 하면서 세상에 나올 동생을 함께 기다릴 수 있던 환경.

그래서 그럴까. 지금도 우리 집 어린이들은 싸우기도 하지만 서로 애틋이 여기며 정답게 지내고 있다.






할 만합니다. 두 번째 출산.

모르핀보다 더 강력한 쾌락 호르몬.


첫 번째 출산과 다르게 두 번째는 소리 한번 크게 지르지 않고 가능했다. 두 번째 출산에는 엄마와 아들을 포함한 가족 모두가 함께 자리했고 어린 아들을 놀라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은연중 마인드 컨트롤에 더욱 신경 썼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두 아이 모두 출산하며 회음부가 찢어지지 않았는데, 그 비결은 아이가 빠져나오는 순간 몸에 힘을 풀어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다. 아이 머리가 보인다고 하여 마지막 힘을 힘껏 주고 나서 아이가 쑤욱 빠져나갈 때 온몸에 긴장이 풀리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독히 오래 묵은 변비가 빠져나가면 이런 느낌일까.

나는 이것이 약물을 쓰지 않고 온전히 내 힘으로 아이를 낳아 느낄 수 있었던 ‘출산의 쾌락’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나는 그 쾌락의 맛을 봐서 그런 것인지, 아기가 너무 예뻐 그랬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둘째 3개월 즈음 셋째 생각도 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밝힌다. 누군가 육아만 해준다면 아이는 몇이고 낳을 수 있겠다는 호기로움까지 얻은 것이다.

둘째는 내 계획상 인생의 마지막 출산이었기에, 이 출산엔 나를 낳은 엄마께도 참여해주시길 요청드렸다. 엄마는 자신의 딸이, 엄마가 되어 딸을 낳는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이셨을까. 내겐 그것이 꽤 큰 기쁨으로 남아있다. 내 몸에서 보이지 않는 생명체를 열 달을 품어 바깥세상으로 꺼내놓는 순간, 나와 나의 아이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따스한 축복을 받았다.





어느 것도 당연한 것은 없다.


나는 이 방법이 출산의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개개인의 건강 상태도, 가치관도 다르기에 자신이 원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다만 무엇을 하든 의문을 가질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방법으로 해야 하는 건지, 꼭 필요한 과정인지 그리고 그것이 내가 꿈꿔왔던 것인지, 한번 생각해보면 좋지 않을까.


두 번의 나의 출산 경험은 만족스럽다. 아픔보단 기쁨이 컸고, 가족 모두 인생을 통틀어 기억에 남을 만한 큰 이벤트이자 축제처럼 느꼈다. 우리 집에선 남편도 출산했다고 말하고 있다. 남편이 누군가에게 자신 있게 출산 경험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 그에게도 출산이 즐거운 경험으로 남아있는 듯하다. 편견 없이, 기꺼이 출산 과정에 동참해준 남편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이런 사람도, 이런 가족도, 이런 출산도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의 페미니즘은, 어쩌면 출산에서부터 태어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엄마로서 시작되는 새로운 여성의 삶, 그 첫 발걸음이 몹시도 상쾌했다.




은호그림_나를낳는엄마.jpg 딸 은호가 다섯 살 무렵 그린 그림. 『내가 태어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