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어느 날엔 타 언론사 기자의 권유로 ‘블랙티라떼‘에 ’샷 추가‘를 한 새로운 음료를 접하게 됐다.
단 것을 싫어하는 나는 카페에선 ‘아메리카노’만 고집했는데, 그날은 익숙한 선택을 두고 약간의 머뭇거림이 피어올랐고, 메뉴판 앞에서 주저하는 순간 때마침 새로운 메뉴를 권유한 자의 표정과 목소리에 묘한 설득력이 서려있었다. 어쩌면 그날따라 얄궂게 퍼붓는 비가 ‘일상의 일탈’에 힘을 실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엉겁결에 주문한 ‘에스프레소 샷 추가를 한 블랙티라떼’는 박카스보다 효능이 뛰어났으며, 피곤한 오후에 몸에 퍼지는 적당한 단맛은 날선 긴장을 부드럽게 풀어주어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 이후 나는 카페에 가서 신메뉴 구경하기를 즐겼으며, 사람들이 믹스커피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2023년을 5일쯤 남겨둔 어느 날엔 **의회 출입기자 송년 모임 겸 기자간담회가 있었다. 적당히 취해 집에 돌아와 샤워하고 거울 앞에 앉아 머리를 말리다, 낯선 충동에 휩싸였다.
이마를 쓸어 넘기는 버릇이 있는 나는 늘 긴 머리를 유지했는데, 그 밤엔 갑자기 머리카락을 자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딸의 앞머리를 잘라주려 산 가위가 생각났다. 십수 년 동안 고집하던 앞머리카락을 자르는 결심을 하는 데엔 몇 분 안 걸렸다.
가위질은 거침없었고, 조금 자르려던 머리카락은 눈썹 위까지 짧아졌다. 미용실에서 잘랐으면 후회할 길이였다. 거울 속엔 낯선 내가 있었고, 방바닥엔 잘린 머리카락이 수북했다.
직접 자르고 나니 탓할 사람도 없고. 나는 뱅헤어와 히메컷의 오묘한 조화를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다행히 나의 더벅머리를 발견한 사람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연말의 힘이었을까. 2년 정도 젊어 보인다는 덕담도 획득했다.
새해 첫날, 어색한 짧은 앞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밀크티에 샷 추가한 음료를 마시며 생각한다.
“사사로운 것에 천착하지 않고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면 좋겠다“고.
2024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