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sta Browne, Rosella's Vineyard 2009
하얀 머리칼이 반짝거리는 친구를 만났다.
아침부터 하늘엔 먹구름이 끼어 음침하게 꾸물거린 날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가벼운 안부와 함께 샴페인을 먼저 마셨다.
식탁 위에는 많은 것이 올라온다.
사람을 엿볼 수 있는 여러 단서들.
음식은 맛있고, 샴페인은 청량했으나, 식탁에 올라오는 어떤 이야기들은 날카로웠다.
날이 서지 않았지만, 찔리면 아팠다.
마치 아주 작은 유리 알갱이가 손바닥에 박힌 것마냥 피가 흐르지 않지만,
골치 아픈 아픔을 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뾰족한 파편이 튀는 웃음이 식탁을 감쌌다.
우리는 두 번째 와인을 열었다.
십 년이 넘는 긴 시간의 힘을 견딘 미국 피노누아는,
미국 와인은 달고 강렬한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폭신폭신한 양탄자처럼 입안을 부드럽게 감쌌고,
테이블을 마주 보고 있는 우리의 간격을 좁혔다.
우리는 피노누아를 마시며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들춰보기 싫은 일들과 앞으로 우리가 조심해야 할 많은 덫에 대해.
반복되는 어떤 실수들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고,
어떤 아픔은 사람을 성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며,
또 어떤 일들은 타협의 여지를 주지 않고 불쑥 찾아와 무력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런 혼란함 속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단순한 사실은 시간을 믿고 기다리는 것.
시간이 켜켜이 쌓여 보여주는 명확하고 간결한 답을 기다릴 것.
그리고 가끔씩 이렇게 시간이 녹아든 와인을 마시며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얻으면 더할 나위 없고.
Kosta Browne, Rosella's Vineyard Santa Lucia Highlands 2009
지역 : USA>Sant Lucia Highlands
품종 : Pinot Noir
테이스팅 노트
미국 피노누아입니다.
'Kosta Browne'은 레스토랑에서 함께 근무한 Dan Kosta와 Michael Browne이 의기투합해
1997년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와이너리입니다.
와인 양조교육을 받아본 적 없는 두 청년이 출근 전 시간을 활용해
와인을 만들며 뿜어낸 열정과 노력이 차곡차곡 쌓여 빛을 발해,
‘Kosta Browne Sonama Coast Pinot Noir 2009’가
Wine Spectator가 선정한 Wine of the Year in 2011에 선정돼며 주목을 받습니다.
하늘하늘거리는 피노누아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미국 와인은 대체로 달고 조미료 친 느낌이라 사실 좀 꺼려하는 편인데요.
시간의 무게를 더한 미국와인은 그런 편견을 비웃듯 부드럽고 정제된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마신 와인은 총 4099병 생산됐으며,
첫맛은 뭉툭했지만, 잔에서 천천히 피어오르는 과실향은 아름답고 우아했습니다.
입안을 부드럽게 감싸는 실키함이 돋보였고요.
그런 포근함에 마음이 열려 식탁 위엔 더 풍성한 이야깃거리들이 존재할 수 있었지요.
이번 와인은 전 세계 경매에 참여해 모은 희귀 와인과 올드빈티지를 엄선해 소개하는 신생와인 판매 사이트, ‘히든와인(Hidden Wine)’에서 제공해 주셔서 시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