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잠이 들었다. 어느 공원인지, 화장실에 잠깐 들렸는데 짙은 회색빛 대리석 타일이 단정하고 차분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더웠을까,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나왔다. 손에 닿는 물의 감촉. 손가락 사이를 타고 흐르는,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물의 서늘한 온도. 녹음이 짙은 공원, 작은 설탕 알갱이처럼 반짝이는 햇살. 오래된 나무로 만든 벤치. 누군가를 기다린 걸까. 멀리 바라봤지만, 아무도 나타나진 않았다. 안내 방송이 흘렀다. 남서풍이 불어온다고, 한낮 더위를 조심하라고, 높게 매달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다정한 목소리. 두 번 반복되어 흐르는 안내 방송을 들으며 나는 태풍이 오려나 생각했다. 그리고 잠에서 깨었다.
어릴 때 나는 낮잠에서 깨고 나면 울었다고 한다. 화들짝 놀라서 깨고 난 뒤, 울다 다시 잠들곤 했는데 일어나면 울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지금도 가끔 낮잠에서 깨고 나면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들어 서글픈 감정이 밀려온다. 다른 세상 같다. 어느 쪽이 진짜 내가 존재하는 세계인지 모르겠는….
불안한 잠에서 깬 내게 필요한 건 내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당신의 손길.
아무 일 없다고, 다른 세계면 어떻냐고 귓가에 대고 소곤거리는 당신의 목소리.
내 안으로 스며드는 당신의 체온.
나는 제자리에 있는 것일까.
미지근한 바람이 살갗을 스치고 지나간다.
등에 흐르는 쪽빛 사늘함에 나는 담요를 두르고 숨을 내쉰다.
어스름이 내려앉고 있다.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을 딛는 발에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이 뼈를 타고 현실로 돌아오게 한다. 저녁밥을 지어야겠다. 쌀을 안치고, 채소를 볶아 식탁에 올려야겠다. 밥솥에서 피어오르는 김, 채소를 볶는 프라이팬에서 전달되는 뜨거움. 윤기가 흐르는 갓 지은 밥을 입안에 넣고, 담백한 채소를 곁들이자. 차가운 화이트 와인을 한 잔 따르고 식탁 위에 꿈 이야기를 올려놓아야지.
나는…
나는, 여기서 숨을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