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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주셔서 감사하지만 낳아주셔서 감사하진 않다

한 순간의 특별한 교차로 인해, 우리 모두는 이렇게 잉태된다


유치원을 다니던 때에 친구들은 어버이날,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곤 했는데, 솔직히 지금도 그때도 이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정말 훌륭하고 좋으신 분이다. 성인이 된 지금의 나에게도 여전히 애정 표현을 많이 해주시기에 감사히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부모라서 존경하고 받들어야 한다는 유교사상엔 반대하는 입장이다. 존경할 만한 부모는 부모 나름이다.


난 내 의사와 상관없이 태어났다. 부모님도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지금의 나를 낳았다. 속도위반 같이 실수로 임신했다는 말이 아니다. 이런 모습의, 이런 성향의, 이런 특징을 가진 나를 원해서 '짠' 하고 만들어낸 게 아니라는 말이다. 심지어 16주 이전의 태아는 성별조차 알 수 없다. 모든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를 원해서 아이를 낳기로 한 것일 뿐, 어떤 아이가 태어날지 알고 낳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잉태된다.


부모는 자녀를 잘 모른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생명체 역시 그들과는 다른 인격체다. 그럼에도 부모는 자녀를 지키고 키워내야한다는 책임감에 속박하려든다. 자녀는 본인을 위해 많은 것을 짊어지고 사는 부모에게 감사함을 느낄 거다. 그러나 동시에 지나친 애정을 간섭으로 느껴 불만을 가지고 부당하다 생각할 수 있다.


부모도 사람이라 완벽하지 않고, 대부분의 부모들은 우리랑 똑같이 모자란 환경에서 결핍을 느끼고 자라온 모자란 인간이다. 한마디로 그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결핍을 느끼며 자라왔고 나름의 대안을 갖고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왔지만, 여전히 완벽한 인간은 아니라는 것이다.


돈이 많은 집에서 태어났다면. 속된 말로, 금수저라면 결핍이 조금은 덜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피라미드 형태의 사회 구조상 사회적 지위가 높으며 경제적, 정신적 여유가 많은 사람들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들에게조차 나름의 결핍이 존재하며 부자인 부모들도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는 태어나면서 갖게 되는 그릇의 크기가 정해져 있으며, 이 크기는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고 믿는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그릇 크기가 얼마든지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간혹 몇몇 사람들은 왜 태어났는지, 왜 사는지 고민하곤 하는데 그러면 안된다. 의미 없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우린 죽지 못해 살거나, 태어났으니 사는 거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그릇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며 살면 된다.


어느 하나 예견된 것 없이 태어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지금의 인생을 어떻게 살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게 다다. 이렇게 그릇을 키워가는 과정에서 부모가 자녀의 인생에 지나치게 개입하여 걸림돌이 된다면, 자녀는 그들을 멀리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간혹 몇몇 부모님들이 자녀가 각박한 세상을 잘 살길 바란다며 강하게 키운답시고 자녀를 완강하게 대하기도 하는데, 그럴 필요는 없다. 집과 부모의 품은 따뜻하게 충전받아야 할 곳이지 훈련과 성장만 하는 곳이 아니다.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를 사랑할 줄 모르는 아이가 바깥에서 받게 될 마음의 상처는 상상하기 힘들 만큼 크고 무섭다.


각자도생이 필요하다. 부모가 사는 세상과 자녀가 사는 세상은 다르다. 부모가 살았던 세상과 자녀가 살고 있는 세상도 다르다. 첨언을 해줄 뿐, 선택은 자녀가 해야 하며, 그 선택에 지나치게 잘잘못을 따져서도 안된다. 부모는 그저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있는 자녀가 혹여나 떨어질까 뒤에서 살며시 받쳐주면 된다. 목적지를 향해 충분히 올라갔다 생각한 자녀가 잠시 숨을 돌리며 아래를 내려다봤을 땐,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보다 웃으며 응원해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부모로서 최고의 역할 수행이라 생각한다.


부모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고, 자식의 모든 문제에 개입한다면 그의 자식 인생은 의미 없는 삶이 된다. 그럼 사육되는 개 돼지랑 다를게 뭔가 싶다. 그나마 애완동물은 티 나게 이쁨도 받고 말 못 하는 짐승이라고 스트레스받지 않게 적절한 산책도 시켜주지만,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와 독립성을 필요로 하는 자녀에게 독립성을 갖고 스스로 해결한 문제 해결 방식에서 부족한 점을 꼬집으며 자식이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뉘우치고 부모의 말이 맞다고 믿으며 전적으로 따라주길 바라는 교육 방식은 옳지 않다고 본다.


혹은 자신도 틀릴 수 있음을 인지하는 부모라도 적절한 근거와 차분한 설득이 아닌 인상을 쓰고 감정을 소모하며 강압적인 태도를 버리지 못하는 부모는 자식이 스스로 부모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것도 답이라 생각한다. 아예 연을 끊으란 말이 아니다. 한번 떨어져 지내보면 부모도 자식을, 자식도 부모를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원래 한 집단이나 공간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들은 사라지고 나서야 그 빈자리가 크게 와 닿는 법이다.


모든 인간관계에는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 연인관계도, 부부관계도, 적당한 거리는 돈독한 관계를 형성한다. 하물며 부모 자식도 인간관계의 한 범주에 속하지 않는가. 각 가정의 구성원 중에서 매일 아침 출근하여 돈을 버는 사람도, 집에서 가정이 잘 돌아가도록 부지런히 제 몫을 해내는 사람도, 매일 아침 학교나 학원으로 나가는 사람도. 각자의 무대에서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서로 다른 인격체다. 때문에 필요한 만큼의 적당한 거리두기는 서로에게 이롭다고 생각한다. #자기계발감성 #자계감


인스타그램 : jagye_g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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