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연주자 실수가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불협화음이다

Codex 04. 고객이 여러 명이라면, 어떻게 문제를 정의하지?

by jaha Kim

PART 1. Decode the Customer(고객론): Understanding Customer Before Building Products


Codex 04. 고객이 여러 명이라면, 어떻게 문제를 정의하지?



B2B 고객은 한 사람이 아니라, 각기 다른 악기를 든 오케스트라다


B2B 제품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이 흔히 빠지는 함정이 있다. 실무 담당자와 미팅 후 환호하는 것이다. "우리 제품을 너무 좋아해요! 이건 무조건 팔립니다!" 하지만 그의 팀장과 미팅하면 예산 이야기를, 임원과 미팅하면 전략 방향 이야기를 듣다가 결국 프로젝트는 조용히 사라진다.


왜일까? 고객을 ‘한 사람’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악기 판매상이라고 상상해 보자. 바이올린 연주자에게 멀리서도 선명하고 입체감 있는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을 파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우리 교향곡에는 무게감과 그윽한 공명을 가진 바이올린이 필요한데?"라고 말한다면? 그 바이올린은 결코 오케스트라에 합류할 수 없다.


실무자는 자신의 업무 효율(소리가 좋은 바이올린)을, 관리자는 팀의 성과(오케스트라의 화음)를, 경영진은 회사의 성장(교향곡의 완성도)을 본다. 이들의 필요는 모두 다르다.


기억하라.

B2B 고객은 한 사람이 아니라, 각기 다른 악보를 보고 있는 오케스트라다.

우리의 역할은 각 연주자의 필요를 모두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전체 교향곡을 완성시킬 단 하나의 ‘중심 문제’를 찾아내는 것이다.




표면의 문제(Apparent Problem)와 중심 문제(Central Problem)를 구분하라


이해관계자가 여럿일 때 문제 정의가 어려운 이유는, 각자가 자신의 ‘표면 문제’만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 표면의 문제 (Apparent Problem): 각 이해관계자가 자신의 입장에서 느끼는 개별적인 고통이다.

"이 소프트웨어는 너무 쓰기 불편해요(실무자)",

"우리 팀원들의 업무 현황이 한눈에 파악되지 않아요(관리자)",

"경쟁사보다 프로젝트 처리 속도가 느립니다(경영진)".


✓ 중심 문제 (Central Problem): 이 모든 표면의 문제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핵심적인 병목 지점이다. 고객사 스스로도 명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다.

“수주-제작-납품으로 이어지는 핵심 워크플로우가 비효율적이다”


이 ‘중심 문제’를 해결하면, 실무자의 불편함이 해소되고, 관리자의 니즈가 충족되며, 경영진의 전략적 목표가 달성된다. 흩어져 있는 점(표면 문제)들을 이어, 하나의 선(중심 문제)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진짜 과제다.




고객은 제품이 아닌, ‘결과’를 고용한다: Jobs to be Done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가 주창한 ‘Jobs to be Done(해야 할 일)’ 이론은 이 복잡한 상황을 꿰뚫는 강력한 렌즈를 제공한다. 이 이론의 핵심은, “고객은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to get a job done)’ 제품을 고용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여러 이해관계자가 얽힌 B2B 상황에서 특히 강력한 통찰을 준다. 오케스트라의 각 연주자들은 같은 제품(예: 새로운 협업툴)을 보더라도, 각자 다른 ‘일’을 시키기 위해 고용하려 한다.

✓ 사용자(User): ‘반복적인 보고 업무를 줄이고, 창의적인 일에 집중하고 싶다’는 기능적(Functional)인 일을 위해 제품을 고용한다.


✓ 관리자(Manager): ‘우리 팀의 업무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성과를 예측하고 싶다’는 관리적(Managerial)인 일을 위해 제품을 고용한다.


✓ 경영진(Decider): ‘회사의 비효율을 줄여, 시장 경쟁력을 높이고 싶다’는 전략적(Strategic)인 일을 위해 제품을 고용한다.


결국 우리가 찾아야 할 ‘중심 문제’란, 이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라는 가장 중요한 ‘일(The Job)’인 셈이다. 우리의 진짜 역할은 각자가 원하는 기능(Feature)을 파는 것이 아니라, 조직 전체가 기꺼이 ‘고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궁극적인 ‘일’을 정의하고 해결하는 것이다.




사례: 슬랙(Slack)은 어떻게 조직 전체를 설득했나


오늘날 최고의 협업툴로 꼽히는 슬랙(Slack)의 초기 성장 전략은 구매 조직을 공략한 완벽한 예시다.


슬랙은 처음부터 CEO나 CIO(최고 정보 책임자)를 찾아가지 않았다. 그들은 개발자, 디자이너와 같은 ‘사용자(User)’에게 먼저 파고들었다. 사용자는 슬랙의 압도적인 편의성에 열광하며 자발적인 ‘영향력자(Influencer)’가 되어 팀에 슬랙을 전파했다.


팀의 ‘관리자(Buyer)’는 슬랙 도입 후 팀의 소통 비용이 줄고 개발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데이터로 확인했다. 마침내 ‘결정권자(Decider)’는 ‘전사적인 소통 비효율’이라는 ‘중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슬랙의 전사 도입을 승인했다.


슬랙은 각 연주자(이해관계자)에게 최적의 악기(가치)를 제공하면서, 결국 오케스트라 전체의 연주(기업의 성장)를 바꾸는 데 성공한 것이다.




방법론(Structural Method) – 이해관계자 지도를 그리고 중심 문제 관통하기


1. 이해관계자 목록화: ‘오케스트라 단원’의 명단을 만들어라

미팅에 나온 한 사람이 고객의 전부라고 착각하지 마라. 내 제안서가 최종 결재되기까지 거쳐야 하는 모든 사람(구매 조직)의 역할을 지도 위에 그려야 한다. 우리 제품의 챔피언이 되어줄 ‘사용자’는 누구이며, 최종 지갑을 여는 ‘결정권자’는 누구인가?


2. 각자의 문제(Pain) 듣기: ‘다른 악기’의 소리를 들어라

각 이해관계자를 만나 그들의 언어로 문제를 들어야 한다. 이때 “우리 제품 어때요?”라고 묻지 마라. “팀장님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요?”, “주로 어떤 일로 야근하시나요?”, “CEO에게 어떤 숫자를 보고하실 때 가장 스트레스받으시나요?”처럼 그들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3. 중심 문제(Keystone Problem) 연결하기: ‘하나의 화음’을 찾아라

각기 다른 연주자들이 내는 소리(표면 문제) 속에서, 이들을 하나로 묶는 공통의 화음(중심 문제)을 찾아내야 한다.


“개발팀의 잦은 야근(사용자 문제)과 프로젝트 납기 지연(관리자 문제), 그리고 경쟁사 대비 낮은 시장 출시 속도(경영진 문제)는 모두 ‘개발-배포 프로세스의 비효율’이라는 하나의 중심 문제에서 비롯됩니다.”


이 문장을 완성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당신의 제품은 단순한 ‘기능’이 아닌, 조직 전체를 위한 ‘솔루션’이 된다.




질문(Closing Prompt) – 생각을 다시 되묻는 피드백 루프


Q1. 나는 고객사의 ‘한 사람’만 만나고 있는가, 아니면 ‘오케스트라’ 전체를 보고 있는가?


Q2. 우리 제품의 최종 결재 라인에 있는 모든 이해관계자의 역할을 떠올릴 수 있는가?


Q3. 우리 제품이 해결하는 문제는 특정 연주자(User)만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전체 교향곡(Company Performance)을 바꾸는 것인가?


Q4. 우리 제품이 없을 때, 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대체 오케스트라’를 고용하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


당신은 한 연주자의 증상만 듣고 있는가,
아니면 오케스트라 전체의 ‘병명(病名)’을 진단하고 있는가?


위대한 B2B 제품은 최고의 ‘악기’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케스트라 전체가 더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있도록, 그들이 따라야 할 ‘악보’, 즉 일하는 방식 자체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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