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udden thought(갑자기 든 생각)
"저는 매일 새벽 6시에 출근합니다. 주말도 반납했죠. 제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팀원들도 언젠가는 제 진심을 알아주고 함께 달려주지 않을까요?" 제가 만난 초기 스타트업의 B 대표는 번아웃 직전의 상태로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는 리더의 희생과 근면함이 조직의 기강을 잡고 성과를 만드는 '최고의 연료'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회사의 팀원들은 활기를 잃어 가고 있었습니다. 대표가 모든 문제를 가장 먼저 파악하고, 가장 늦게까지 남아 해결책을 고민하는 사이, 팀원들은 '대표님이 알아서 하겠지' 혹은 '어차피 내가 해도 대표님 기준에 안 맞을 텐데'라며 생각의 스위치를 꺼버린 것이죠.
이 현상의 이면에는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의 '학습된 무기력'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 이론]
스스로 상황을 통제하려고 노력해도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경험이 반복될 때, 통제할 수 없는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개체가, 나중에 상황을 바꿀 수 있는 환경에서도 스스로 극복하려는 시도를 포기하는 심리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인지적 믿음과 우울증, 자존감 저하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부지런한 대표는 본의 아니게 팀원의 성취 기회를 박탈합니다. 문제가 생기기도 전에 대표가 답을 내놓고, 팀원이 고민할 틈도 없이 대표가 직접 실행해 버리면, 팀원들은 자신의 유능함을 증명할 기회를 잃습니다. "내가 고민해 봐야 대표님이 다 고칠 텐데"라는 인식이 박히는 순간, 조직에는 자발적 동기가 사라지고 무력한 '실행자'들만 남게 됩니다.
스타트업이라는 자동차를 설계할 때, 많은 리더는 스스로를 세상에 없던 강력한 '슈퍼 엔진'이라 믿고 기꺼이 엔진룸 속으로 자신을 던집니다. 누구보다 뜨겁게 타오르는 리더의 마력(馬力)은 초기 성장의 폭발적인 동력이 되기도 하죠. 하지만 25년간 수많은 조직의 명멸을 지켜보며 깨달은 진실은, 자동차의 속도는 엔진의 힘이 아니라 그 힘을 바퀴까지 전달하는 '기어'와 '축'의 견고함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강력한 엔진에만 집착하고 차체와 구동계를 소홀히 한 자동차는 결국 자신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찢겨 나가게 됩니다. 리더의 과한 열정이 시스템 구축의 '최대 장애물'이 되는 지점도 바로 여기입니다.
리더가 실무라는 현장에서 매일 소방수를 자처하며 직접 불을 끄러 다닐 때, 조직의 '화재 방지 시스템'은 영원히 설계될 기회를 잃습니다. 오늘 당장 눈앞의 불을 끄는 것이 유능함이라 착각하는 사이, 조직은 리더가 자리를 비우는 순간 언제든 전소될 수 있는 위태로운 상태로 방치됩니다. 설계자가 현장의 인부로 전락하는 순간, 조직의 미래는 사라집니다.
리더는 자신이 가장 빠르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리더의 성실함은 조직 내에서 가장 비싼 '병목(Bottleneck)'이 됩니다. 모든 판단과 결재가 리더의 머릿속을 거쳐야만 하는 구조에서, 리더가 바빠질수록 조직의 전체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느려집니다. 엔진은 풀가동 중인데 기어가 맞물리지 않아 바퀴가 헛도는 격입니다. 결국 리더의 헌신이 조직의 민첩함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마는 것이죠.
스타트업에 합류하는 유능한 인재들은 단순히 월급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주도권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하기 위해 모여듭니다. 하지만 리더의 열정이 모든 공간을 점유해 버린 조직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리더의 지시'를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야생마처럼 달리고 싶어 하는 인재들에게 리더의 완벽한 가이드는 오히려 창의성을 가두는 감옥이 됩니다. 결국 스스로 생각하는 근육을 가진 이들은 떠나고, 리더의 입만 바라보는 수동적인 수행자들만 남게 됩니다.
당신의 성실함이 팀원들의 게으름을 정당화하고 있지는 않나요? 당신의 열정이 팀의 자생력을 태워버리고 있지는 않나요?
① 의도적인 '빈 공간'을 만들어라:
리더는 가장 먼저 출근해서 일을 시작하는 사람이 아니라, 팀원들이 스스로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세팅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때로는 문제를 알고도 팀원이 스스로 해결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인내심'이 최고의 전략입니다.
② '열심히'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일하라:
직접 불을 끄지 말고, '소화기 위치'와 '화재 예방 매뉴얼'을 만드는 데 에너지를 쓰십시오. 리더의 성실함은 실무가 아닌 시스템 관리에 발휘되어야 합니다.
③ 권한 위임(Delegation)의 기준을 세워라:
"내가 하면 1시간이면 끝날 일"이라도 팀원에게 맡기고 3시간을 기다려주십시오. 그 2시간의 차이가 팀원을 성장시키고 리더를 자유롭게 만들며, 비로소 시스템이 작동하게 합니다.
리더의 진정한 성실함은 '시스템'을 향해야 합니다
리더의 가장 큰 실수는 자신이 없으면 안 되는 조직을 만드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회사를 사랑한다면, 역설적으로 '내가 없어도 아무 문제없는 조직'을 만드는 데 당신의 열정을 쏟으십시오. 그것이 리더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성실함입니다.
[이어지는 글] 4회: 왜 대표의 희생은 팀을 무능하게 만드는가? – '영웅'을 넘어 '설계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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