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li May 24. 2024

비 내리는 날

투투 이야기


이제 5월 초인데 6, 7월 비처럼 연일 비가 내린다. 빗줄기도 사납다. 투투는 비옷 입는 것이 싫은 건지 비가 싫은 건지 비가 내리면 밖에 나가려 하지 않는다. 마당 끄트머리에서 겨우 볼 일만 보고 냉큼 들어온다.


비가 그쳤다. 날은 어둑하고 흐리지만 나가야 한다. 투투의 반응을 보니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다. 산책하자는 말에 기뻐하며 앞장서 나가면 신기하게도 대부분 비가 내리지 않는다. 반면에 비가 그쳤는데도 나가자는 말에 시큰둥하거나 테이블 밑으로 도망가면 비는 계속 내린다. 투투는 비의 행방을 아는 것 같다. 투투는 자연에 더 가까운 걸까. 비옷을 입히니 피하지 않는다. 녀석, 몹시 나가고 싶군. 싫어하는 비옷도 기꺼이 입고 앞장서 가는 뒤태가 명랑하다.



비를 맞은 초록은 더 선명해지고 송홧가루로 누렇던 길도 깨끗이 씻겨나갔다. 풀더미를 찾아 볼일을 보고 다시 휑하니 앞장을 서는 투투.


공조팝나무가 한아름 피어있고 영산홍은 비에 맞아 대부분 떨어져 잎들만 싱싱하다.


공조팝나무꽃


찔레꽃이 피기 시작했다. 찔레꽃은 6월 초여름 꽃인데 벌써 피고 있다. 기후변화가 TV 다큐멘터리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엉겅퀴도 일찍 피는 거 같고 꽃들의 개화시기가 생각보다 빠르다. 투투는 꽃을 지나치지 않고 일일이 냄새를 맡고 엄마는 일일이 꽃이름을 말해준다. 이름을 모르는 꽃은 그냥 "쥐봐라숭 꽃" 한다. 정체불명 꽃이다. *윤흥길 소설에 나오는 소년의 흉내를 내는 것이다.


지는 연산홍과 피는 찔레
엉겅퀴가 여기저기 한창이다

그런데 투투가 산책 때마다 뜯어먹는 풀이 있는데 바로 원삼덩굴이다. 산과 들에 지천으로 나는 것으로 줄기에 털 달린 가시가 있어서 자칫하면 노출된 피부에 상처를 내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덩굴 끝에 달린 어린 순만 따먹는다. 투투가 따 먹을 때마다 "똑똑" 소리가 다. 먹어도 되는 건지 염려가 되어 찾아보니 혈압을 낮추고 어혈 제거, 혈액순환에도 도움이 되는 등 약성이 있는 식물이다. 녀석, 어찌 알았을까. 크게 자란 잎은 껄끄럽고 억세니까 여린 잎만 먹고... 그래도 많이 먹으면 탈이 날까 봐 서너 장만 먹으면 못 먹게 다.


원삼덩굴을 먹는 투투, 수레국화도 여기저기
집에 안 가!  못 가!


어둑하던 하늘이 개기 시작했다. 집에 가려고 방향을 돌리자 안 가겠다며 고집을 피운다. 힘껏 당겨도 꿈쩍을 안 한다. 씨름 대회에 내보내야겠다. 힘이 장사다. 이럴 땐 방법이 있다. "엄마 간다~ " 하고 줄을 놓고 돌아서 멀어지는 엄마를 본 투투는 안 가겠다는 고집은 냉큼 버리고 전력질주로 뛰어온다. 서너 번 이렇게 하다 보면 집이 보이고 대문 앞까지 온 투투는 앞장서서 얌전히 들어간다.

이보다 착한 놈이 없다!


발을 닦은 후 거실을 두세 번 우당탕 쿵탕, 왁왁거리는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공을 물고 한바탕 뛴 후 소파에 누워 잠을 잔다. 투투가 자면 집안은 조용하다. 또 이렇게 투투의 하루가 흐른다.


투투 엉덩이에 저녁 햇살이 비친다


*  윤흥길, 기억 속의 들꽃

매거진의 이전글 아, 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