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사하며 나누며
* 이 매거진은 fragancia 작가님의 필사 모임에서 제공된 자료를 토대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 이 매거진은 fragancia 작가님과 공동으로 하는 글쓰기입니다.
* 이 글쓰기의 목적은 필사 문장을 다시 음미하고 확장하려는 데 있습니다.
완료해야 하는 과제와 상관없는 행동을 하면서 주위를 흩뜨린다. 급한 일을 하지 않고 갑자기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스크롤을 내리거나 당장 하지 않아도 되는 집안일을 하는 행등 등이 포함된다. 일하고 의사소통하고 세상과 상호작용을 하다 보면 주위가 산만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당신이 신경 써야 할 주의 산만의 요소는 당신의 마음과 관련되어 있다. 그곳이 주의 산만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예를 들어, 당신을 산만하게 하는 것은 스마트폰이 아니라 그것에 주의를 돌리고 싶은 충동이다. 먼저 마음이 그것에 대해 생각을 하고 당신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미루는 사람의 인생은 언제나 잔잔하게 불행하다.
- 힘든 일을 먼저 하라, (스콧 앨런) -
"먼저 마음이 그것에 대해 생각을 하고 당신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미루는 사람의 인생은 언제나 잔잔하게 불행하다."
뼈를 때리는 문장들이다.
내가 만났던 학부모님들은 대부분 자녀의 스마트폰 사용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학생들은 스마트폰 없이 살지 못했고 ADHD로 약을 먹는 아이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아이들과 부모님들은 스마트폰 때문에 끝없이 부딪쳤다. 학부모들은 고민했지만 쉽게 지쳤고 자녀들을 설득하지 못했으며 더러는 심한 좌절과 함께 자신의 자녀를 스마트폰에 내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할 수만 있다면 18세 미만의 미성년들이 스마트폰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제출하고 싶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나는 내 아이들이 중. 고등학생일 때 스마트폰을 사 주지 않았다. 다행히 큰 아인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스마트폰이 필요 없었고 작은 아이는 제 형을 따라 같은 2G 폰을 썼다. 하지만 작은 아이는 스마트폰을 갖고 싶어 했다.
어느 날부터 꼬박꼬박 작은 아이의 방문이 닫혔다. 엄마들의 촉은 동물 수준이 아니라 동물보다 뛰어나다. 작은 애는 친구들에게서 공기계를 얻어 방문을 꼭 닫고 희미한 스마트폰 불빛을 거실에 흘리며 밤마다 인터넷 가상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어느 날은 행성을 설계하고 어느 날은 마법사 노릇을 하고 어느 날은 기사가 되어 용을 퇴치하느라 엄마보다 더 바쁜 생활을 했다. 밤새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아들을 현장 검거한 나는 크게 실망했다. 또 다른 공기계를 조달할 거라는 예측 때문이었고 이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규칙을 세우고 집에 들어오는 대로 모든 기계를 압수했다. 그래도 그놈의 공기계가 사라지지 않았다. 공기계가 발견되면 아이의 등급은 내려갔고 공기계 없는 동안 아이의 등급은 안전하게 유지되었다. 그렇게 고3을 보내고 아슬아슬하게 아이는 대학에 갔다. 그때 내 아이는 스마트폰에 '생각과 마음을 빼앗겨' 산만해진 뇌로 인해 제 할 일을 미뤄두곤 했던 것이다.
아이들은 대학에 간 후 스마트폰을 소유했다. 부모 몰래가 아닌 합법적인 스마트폰 사용자가 되었고 항상 손에서 놓지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나는 진짜로 괴로워졌다. 다 큰 아이들을 제재하거나 설득할 명분이 없었다. 나 또한 스마트폰 없이는 생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니콜라스 카는 인터넷의 아버지라 불리는 세계적인 IT 학자다. 그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란 책을 통해 "구글이 우리를 바보로 만들고 있는가?"라고 물으며 "검색 엔진을 통한 인터넷 서핑은 우리의 지식과 문화를 즉흥적이고 주관적이며 단기적으로 접근하게 만들어 깊이를 잃어버린 지식을 양산해 낸다."라고 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우리를 멍청하게 하고 우리 자신은 물론 내 자녀의 뇌를 퇴화시킨다"라고 경고하면서 "인터넷은 나의 집중력과 사색의 시간을 빼앗고 있다. 온라인상에서든 오프라인상에서든 나의 마음은.... 숨 가쁘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작은 조각들의 흐름에 따라 정보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제트스키를 탄 사람처럼 겉만 핥고 있다." " 웹을 더 많이 사용할수록... 고질적인 산만함에 시달린다." "더 이상 <전쟁과 평화>와 같은 책을 읽을 수가 없다. 그런 능력을 잃어버렸다." " 스크롤만 움직일 뿐이다."라고 고백한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두꺼운 책이지만 사실은 한 가지를 강조하고 있다. "인터넷이 주는 자극으로 의식적, 무의식적 사고 모두에 합선을 일으켜 깊고 창의적인 사고를 방해한다"는 것, 즉 지금 우리의 뇌는 각종 미디어와 쇼츠, 릴스와 같은 동영상으로 인해 혹사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끄고 잠자리에 누워도 무작위로 받아들인 수많은 정보가 지나간 뇌는 홍수가 휩쓸고 지나간 뒤처럼 황폐해져서 쉬지 못한다. 그런데도 눈만 뜨면 스마트폰을 잡는다. 가령 일주일 동안 자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우리의 뇌가, 내 아이의 뇌가 지금 그렇다.
"뇌는 혹사당하면 산만해진다."
우리의 뇌는 유튜브의 동영상과 인터넷의 쇼츠, 그리고 카톡에 의해 바카스 한 박스로도 풀리지 않는 피로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글을 태블릿으로 쓰고 있고 태블릿 옆에는 스마트폰이 자료를 찾아주고 있다. PC가 필요하면 그것도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곁에 두었다. 예전엔 내 손으로 메모한 자료를 참고했지만 요즘은 메모조차도 스마트폰에 한다. 카톡이 오면 그것을 확인하다가 나도 모르게 인스타를 열어 열람을 하고 유튜브를 클릭한다. 잠깐인 것 같은데 3, 40분이 지나간다. 글을 쓰다 말고, 그림을 그리다 말고, 차의 시동을 켜놓고, 밥을 먹다 말고, 수돗물을 틀어놓고.... 같은 페이지를 1시간 내내 읽은 적도 여러 번이다. 마음먹고 책 읽는다고 도서관에 가서는 공연히 연락 없던 친구와 장시간 카톡만 하고 온 적도 있다. 중요한 일정이 있는 걸 알면서도 늦은 시간까지 동영상을 보고 다음 날 허둥대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 과거와 다르게 스마트폰과 인터넷 기기를 사용하면서 나는 가족 외 친한 친구의 번호를 외우지 못한다. 나의 뇌는 과거에 비해 바보가 되었다.
"뇌는 우리가 사고하는 대로 바뀐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는 chain smoker였다. 눈 뜨면서부터 담배를 피우셨다. 그런 아버지께서 50 중반의 나이에 가족들을 모두 불러 선포를 하셨다. 담배를 끊겠노라고. 엄마는 물론 우리 형제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아침부터 굴뚝을 땐다고 성화를 부리시던 엄마도 "니 아부지가 담배를 끊으면 기적이여, 기적"이라며 아버지의 금연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당신이 스스로 선포한 것을 지키셨다. 돌아가실 때까지 담배를 피우지 않으셨다. 어느 날 아버지께 물었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끊을 수가 있냐고. 왜 끊으신 거냐고.
" 야, 내가 미사에 가서는 기도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미사가 빨리 끝났으면 하는 거야. 빨리 나가서 담배를 피우고 싶어서. 참, 나. 그래서 끊어야겠다 생각했어. 비결? 안 피면 되지. 그냥 안 피면 돼. 내가 말했잖아. 끊는다고. 내 마음이야. 피고 싶지 않냐고? 피고 싶을 때마다 나는 끊었다~아~라고 나한테 말해."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하지만 하루 두 갑 피우던 아버지는 담배를 끊어내셨다.
뇌의 가소성이라는 게 있다. 뇌는 잘 변한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오랜 시간 길들여진 담배를 끊어내는 방법으로 "안 피면 된다, 내 마음이다, 스스로에게 안 핀다"라고 하셨고 그렇게 하셨다. 아버지께서 알고 하셨는지는 모르지만 뇌의 가소성을 이용하신 것이다. 담배를 끊지 못하도록 옛 습관을 유지하려는 것도 뇌고 끊어내는 것도 뇌다. 스마트폰에 길들여 놓지 못하게 하는 것도 뇌지만 스마트폰을 놓게 하는 것도 뇌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사용으로 우리는 집중력을 잃고 쉽게 산만해졌지만 다시 <전쟁과 평화>를 읽을 수도 있다. 각자의 선택일 뿐이다.
선택한다는 것은 구체적인 방법을 실행한다는 것. 산만해진 나의 뇌를 재정비하려면 매일 일정한 시간에 스마트폰과 작별해야 한다. 일정한 시간이 되면 스마트폰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뇌가 알게 하면 된다. 낮동안 일하고 밤에 쉬듯이 스마트폰도 필요한 만큼 사용하고 꺼놓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뇌가 알면 변할 수 있다. 뇌는 생각하는 장치가 아니라 반복하는 나의 행동에 주목할 뿐이다. 뇌는 반복을 좋아해서 반복하는 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하도록 명령을 내린다. 이점을 이용하여 우리 자신이 뇌를 속이면 된다. "뇌야, 나는 밤 11시가 되면 스마트폰을 보지 않아." 반복적으로 말하고 그렇게 하면 된다. "어, 얘는 밤 11시가 되면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구나" 하는 걸 알게 하면 된다. 시간 많이 걸리지 않는다. 해 보시라. 어떤 부모님과 아이들은 그렇게 했고 자신들의 뇌를 지켰으며 원하는 목표에 도달했다.
그래도 그게 쉽냐고??
아버지처럼 말하면 된다.
어떻게? 이렇게!
"나는 끊었다아아 아~"
"나는 스마트폰의 노예가 아니다아아 아~"
* 이 글은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대부분 인용했고 직접 인용하지 않은 부분도 책을 읽은 후 재구성된 것임을 밝힌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항 옮김, 창림 출판사, 2017년판
*니콜라스 카 : 세계적인 IT 미래 학자이자 인터넷의 아버지 불림. 정보 과학 기술이 우리의 사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 2008년 <애틀랜틱>지에 기고한 "구글이 우리를 바보로 만들고 있는가?(Is Google making us Stupid?)라는 글이 주목 받았다.
*군소리
나는 작은 애가 군에 있을 때 이 책을 요약하여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아이 말에 의하면 그 편지를 부대원들이 돌려 읽었다고 했다. 부대장까지도. 그러면 뭐 하나. 이놈아!
끊어라아아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