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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뭇국과 치킨

필사하며 나누며

by Eli

* 이 매거진은 fragancia 작가님의 필사 모임에서 제공된 자료를 토대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 이 매거진은 fragancia 작가님과 공동으로 하는 글쓰기입니다.

* 이 글쓰기의 목적은 필사 문장을 다시 음미하고 확장하려는 데 있습니다.



모든 음식은 어떤 면에서 약물이 아닐까? 우리는 '약물'이라는 단어를 금지된 물질에 주로 쓴다. 하지만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 대부분은 정신에 영향을 미치고 의식 상태를 변화시킨다는 차원에서 '약물'이다. 단지 영향력을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고 신경을 쓰지 않을 뿐이다.

거창한 식사도 좋지만 복잡한 요리가 언제가 좋은 인상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단순한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변색된 요리가 매력의 중요한 요소를 식탁 위에 올리기도 한다. 불안에 대한 솔직한 인정, 실패를 기꺼이 인정하려는 태도, 그리고 허세와 야망을 희극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친절이 바로 그것이다.
- 사유식당, (알랭 드 보통) -


질문 : 평소 간단하게 즐기거나 좋아하는 음식이 있나요?





"모든 음식은 어떤 면에서 약물이 아닐까?"


요즘은 입맛이 도통 없어서 괴롭다. 이것저것 먹어보고 외식도 하지만 맛이 없다. 무엇을 먹긴 먹어야 하는데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어서 난감하기만 하다. 입맛이 없는 이유는 더위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변 상황도 한몫을 한다. 먹고사는 문제, 자식들 걱정, 노령의 엄마 생각 등 고정금리처럼 변함이 없는데다 날씨는 미쳤고 관계는 철 지난 바닷가가 되어버렸으니 입맛이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냉장고에 머리를 디밀고 찾아본다. 먹을 게 없다. 배달이 되지 않는 곳이니 시켜 먹는 건 언감생심이고 그냥 굶는다. 누가 뭘 좀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긴다.


봄, 가을 환절기에 꼭 감기 몸살을 앓았다. 이 환절기 병은 아버지에게서 나에게로 그리고 내 둘째 아들에게 이어졌는데 아버지가 먼저 시름시름 며칠을 앓고 일어나시면 다음은 내 차례였다. 아버지와 내가 번갈아 아파 누우면

"이그, 봄이 오나 보다."

"또 계절이 바뀌는구먼."

하며 엄마는 혀를 차셨다. 그리고 아버지 드릴 흰 죽과 내가 좋아하는 소고기뭇국을 끓이셨다.


엄마는 국에 넣을 무를 나박나박 썰다가 한, 두 개를 입에 넣고 "아유, 무가 아주 달아." 하셨다. 맛있는 무는 물이 많고 투명하며 달다. 무가 맛이 있는지 없는지는 썰어보면 알 수 있다. 맛있는 무는 수분이 많아서 썰릴 때 "사각"소리와 함께 물이 튄다. 소고기 양지나 사태를 넣고 푹 고와 우려낸 육수에 무를 넣고 무가 반쯤 익으면 삶아놓은 고기를 넣는다. 보통 양지는 찢어 넣고 사태는 납작납작하게 썬다. 처음엔 센 불로 한소끔 끓이다가 불을 줄여 무가 다 익을 때까지 보글보글 끓여낸다. 나는 사태 넣은 뭇국을 더 좋아한다. 사태는 양지보다 질기지만 육수를 내느라 삶는 동안 사태에 들어있는 힘줄이 녹아 부드럽게 쫄깃거리는데 그 맛이 아주 좋다. 소고기뭇국이 맛있으려면 누린내가 나지 않도록 핏물을 빼고 찬물에 넣고 삶아야 하며 특히 무를 적당히 익혀야 한다. 더 맛있게 하겠다며 조미가 된 소금이나 육수코인 같은 것을 넣으면 국물이 밍밍해져서 맛이 없을 뿐만 아니라 쉽게 질린다. 고기와 무로 충분히 진해진 국물이기에 더 이상의 조미는 필요 없다. 담백하고 맑은 조선간장 3, 천일염 7의 비율로 간을 한다.


끓여놓은 뭇국은 한 번에 다 먹지 못한다. 두세 번은 더 먹을 수 있도록 넉넉하게 끓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무가 너무 물러지지 않도록 살캉하게 익힌다. 그래야 국물도 맑다. 두 번째 데울 때 무는 달큼하게 물렁해지고 고기 또한 더 부드러워진다. 육수도 진해져서 입에 짝짝 달라붙는다. 이 두 번째 데운 뭇국이 달고 가장 맛있다. 세 번째 데워 먹는 국물은 탁해졌지만 흐물 해진 무와 고기, 냄비 바닥에 가라앉은 파,마늘의 양념으로 진국이 된다. 이 국에 밥을 말으면 내용물이 다 함께 섞이며 녹진해져서 혓바늘 돋은 입에도 꿀떡꿀떡 잘 넘어간다. 이렇게 뭇국을 다 먹으면 나는 병이 나아 개운해지곤 했다.


한 번은 봄앓이를 하느라 또 몸살이 났는데 빈속에 누워 있으려니 마음이 슬펐다. 소고기뭇국이 생각났다. 남편에게 장을 봐 오라고 하고 끓여달라고 하는데 아들이 나섰다. 자리에 누워 만드는 순서를 일러주고 아들은 스마트폰에 받아 적었다. 고기 끓이는 냄새가 나고 또각또각소리가 나더니 다 끓였다며 밥과 국을 차려왔는데 잡곡이 섞인 밥이었다. 소고기뭇국엔 쌀밥이 좋은데, 하니 다음엔 쌀밥으로 해드리겠다고 했다. 뜨끈한 국에 밥 한 술 말아 훌훌 먹었다. 아들이 끓인 소고기뭇국도 참 맛있었다. 몸이 가벼워지며 진땀은 가라앉고 힘이 났다.


"당신 치킨 먹을 때 되지 않았어?"

남편이 묻는다. 나는 한 달에 두어 번 치킨 생각이 난다. 치킨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미리 정해 두고 하는 건 아닌데 꼭 달에 두어 번은 치킨이 생각나는 것이다. 치킨 먹을 때가 되지 않았냐고 남편이 물을 땐 내가 심드렁한 표정을 짓거나 먹을 게 없다고 투덜대는 것 같다. 나는 반색을 하며 치킨 주문할까? 하면서 전화기를 든다. 미리 전화로 주문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찾아오는데 이때 생맥주 한 통을 사 오거나 편의점에 들러 4개들이 캔맥주를 사다 함께 마신다.

"옛날에 엄마가 튀겨주던 치킨 정말 맛있었는데...."


어릴 때 아버지는 군대를 떠나 양계장을 운영하셨다. 체격 좋은 큰댁 오빠들을 불러 쓰셨는데 병아리를 부화시켜 육계로 키우는 농장이었다. 엄마는 여름 복날이거나 손님이 오시면 인삼과 황기를 넣은 백숙을 끓이거나 커다란 양은솥에 쇼트닝 기름을 붓고 조금 어린 닭을 튀겨내셨다. 닭을 튀길 때 별다른 레시피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커다랗게 네 조각으로 자른 후 소금과 후추, 소주를 부어 재워두었다. 기름방울이 솥 밑바닥에서 몽글몽글 올라오면 손가락 길이만 한 파를 밀가루 반죽에 담갔다가 기름에 넣었다. 그러면 파르르 떠오르면서 파향이 났고 엄마는 고개를 끄덕하셨다. 밀가루반죽이 묽어서 닭이 솥 안으로 들어갈 때 하얀 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튀기다가 꺼내 식히고 다시 튀기는 것을 세 번 반복하면 비로소 갈색 튀김이 되었다. 그땐 치킨이라고 하지 않고 닭튀김이라고 했다. 엄마는 옆에 앉아 군침을 흘리는 우리 형제들에게 맛보라고 조금 떼어 주셨는데 그 맛을 설명할 길이 없다. 바삭하게 씹히는 동시에 고소함이 그만이었다. 튀김옷이 얇아 닭고기의 맛을 그대로 느끼면서도 전체적으로 바삭한 것이 "아삭아삭 바득바득" 먹는 재미가 그만이었다. 닭고기에 배어든 후추의 향이 기억난다. 마치 유리그릇을 쌀 때 사용한 뽁뽁이를 "뽁뽁뽁"하고 하나씩 터뜨리는 것 같은 쾌감이 있었던 닭튀김.


닭고기엔 나만의 정서가 있는데 '닭다리 설움' 정도 되겠다. 어릴 때 그 많은 닭을 삶아 먹고 튀겨 먹고 볶아 먹었으면서도 닭다리는 내 차지가 아니었다. 한 마리의 닭으로 요리를 하면 닭다리 두 개가 나온다. 닭다리 한 개는 아버지 드리고 나머지 한 개는 오빠의 몫이었다. 두 마리를 요리해도 마찬가지였다. 남은 닭다리 두 개는 언니와 몸 약한 어린 동생 몫이었고 엄마와 나는 닭다리를 온전히 차지하고 먹어 보지 못했다. 복날 닭죽을 끓여가 먹으며 그 얘기를 하니 엄마는 내 앞으로 닭다리를 디밀며 네가 다 먹어, 하셨다. 나는 닭다리 못 먹어 본 사람끼리 한 개씩 잡고 뜯읍시다, 하며 웃었지만 이상하게 우린 둘 다 선뜻 지 못했다.


엄마가 나를 미워하거나 차별을 해서가 아니라 그땐 그랬다. 차별이라고 말할 수 없는 가족들의 위계질서였던 거다. 공경과 약함을 배려하는 그런 질서. 우리 집에선 내가 가장 건강했고 체격도 오빠보다 컸다. 그런데 같은 풍경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닭다리 두 개는 남편과 큰아이가 먹었고 큰 아이가 분가해 나가자 닭다리는 작은 아이에게 돌아갔다. 가족들과 치킨을 먹던 나는 닭다리에 얽힌 슬픈 설화가 있어, 하며 닭다리 얘기를 해 주었다. 남편은 웃으며 당신이 먹어, 했지만 진즉에 닭다리를 물고 있던 아들은 미안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물론 그러면서 살 한 점 남기지 않고 살뜰히 다 먹었다. 어느 날 치킨 시켜 먹을까? 하니 아들이 새로운 치킨 집을 알아놨다며 사 오겠다고 했다. 아들이 들고 온 치킨은 두 마리가 기본 세트였고 닭다리는 모두 4개였다. 우리는 닭다리 한 개씩을 들고 누구 눈치 보지 않고 먹었다. 그러고도 한 개가 남았는데 그 닭다리 한 개는 아무도 먹지 않아 다음 날 치킨 상자 안에서 딱딱해져 버렸다. 그날 닭다리를 먹으면서 생각해 보니 나는 사실 닭다리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는 날개나 닭봉을 더 좋아한다. 엄마가 닭을 튀기면서 맛보라고 준 것이 날개나 닭봉, 닭모래집이었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서글퍼진다. 그럴 땐 소고기뭇국을 먹고 기운을 낸다. 닭다리에 얽힌 슬픈? 설화는 이제 없어졌고 나는 여전히 치킨이 좋다. 밥은 싫고 가볍게 저녁을 먹고 싶을 때 두 마리 치킨과 맥주를 사다 먹는다. 닭다리 선택의 우선권은 이제 내게 있지만 나는 다른 걸 집어든다. 소고기뭇국이 없으면 아플 때 뭘 먹지? 하는 생각이 나고 치킨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객쩍은 생각도 가끔 한다.


이제 무를 심어야 한다. 김장 때 쓰고 남은 무를 신문지에 싸서 김치냉장고에 보관을 하고 그 무로 소고기뭇국을 끓여 먹으면서 환절기에 찾아오는 병을 다스릴 것이다. 소고기뭇국이 특히 더 달고 맛있어지면 겨울이 온 것이다. 찬 바람이 쌩하게 불면 뭇국을 끓이고 식구들 미안하지 않게 닭다리 넉넉한 치킨을 먹어야겠다. 내게 소고기뭇국과 치킨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몸에 이롭고 마음을 풀어주는 "약물"이다. 요즘 더위도 그렇고 절실히 약이 필요하다.

"아들아, 치킨 좀 시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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