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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번호를 지워야 했던 날.

기억은 사라져도, 사랑은 끝내 남는다.

by fragancia

* 이 매거진은 Eli 작가님과 공동으로 하는 글쓰기입니다.


어떤 아픈 기억은 지워져야만 살 수 있기도 하고,
어떤 기억은 아프지만 그 불행을 이겨 내는 힘으로 살기도 하지.
슬픔이 때론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해.

- 메리골드 마음세탁소 <윤정은>


Q. 어떤 슬픔이 당신을 살아가게 합니까?




“할머니, 또 모자 사러 가자는 거예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언제나 같았다. 할머니의 익숙한 울림 속에는 매번 나를 죄책감으로 흔드는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오늘은 안 돼요. 다음에 꼭 같이 갈게요. 죄송해요.” 힘없이 대답하는 내 목소리와 달리, 할머니는 끝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셨다.


“모자… 모자… 사러… 가자…” 그 목소리 속에는 나를 향한 애정과, 무너져가는 기억의 조각들이 희미하게 깜박이고 있었다.


할머니는 노인성 치매를 앓고 계신다. 작년에 할머니께서 요양차 이모들이 살고 있는 제주로 내려가셨다. 그 사이 친정엄마와 나는 주인 없는 빈집을 모두 정리했다. 이모들 곁에서 건강은 조금씩 회복되었지만 기억의 섬은 하루하루 무너져 내렸고, 매일 조금씩 더 침몰했다. 주변 사람들을 자주 의심하셨고, 말없이 집 밖을 서성이기도 하셨다. 어제의 일도, 오늘 아침의 밥상도, 심지어 당신이 사랑하는 나도 기억에 없다. 가족의 이름은 바람결에 흩날리듯 희미해졌다. 이모들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한계에 이르렀다. 결국 육지의 요양병원으로 할머니를 모실 수밖에 없었다.


엄마를 통해 그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충격 속에서 오랫동안 괴로워했다. 내 어린 시절, 늘 따뜻한 밥을 차려주시던 손길, 잠자리에서 머리카락을 정성스레 빗어주시던 모습, 내가 좋아하는 쑥절편을 노릇하게 구워주시던 부엌의 향기… 그 모든 순간들이 아직도 너무도 선명했기 때문이다. 요리에 서툴던 엄마 대신, 불지 않는 잡채와 밥알이 동동 뜨는 식혜를 만드는 법도 할머니께서 가르쳐 주신 비법이었다. 모두 잊으신 걸까? 나는 빨리 할머니를 만나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가족들과 함께 요양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엄마는 몇 번이고 내게 말했다. 할머니가 우리를 몰라볼 수 있으니 실망하지 말라고. 울지 말라고.


3층 4인 병실에 들어섰다. 창문 가장 가까운 침대에 할머니가 앉아 계셨다. 한 손에 손거울을 들고 백발의 머리를 이리저리 매만지다 문쪽을 바라보셨다. 우리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할머니는 “내 새끼들” 하며 일어서려 하셨다. 삐쩍 마른 팔과 다리에 축 늘어진 살보다 환한 미소가 먼저 눈에 들어와 마음이 놓였다. 내 이름을 정확히 부르지 못하셨지만, 할머니의 눈가에 번지는 미소는 여전히 따뜻했다. 내 손을 잡을 때 전해지는 체온은 비록 미약했지만, 할머니의 애정은 살아있었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기억은 사라져도 사랑은 끝내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날 이후 내 전화는 자주 울렸다. 통화를 할 때마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할머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할머니의 기억을 조심스레 뒤적였다. 어제의 대화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할머니와 오늘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건, 마치 매일 새로운 인연을 맺는 듯한 기분이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만남. 그래서 그 시간이 특별했다.


나는 할머니께 우리의 추억을 자주 들려드렸다. 초등학교 시절 할머니가 내 손을 잡고 시장 구경을 시켜 주던 날, 이모들과 함께 걸었던 올레길, 손녀와 증손과 나란히 집 근처를 산책하던 일, 아이패드 사용법을 물으며 다운로드하였던 책들, 민화투를 치던 오후, 술빵을 만들며 함께 웃던 부엌의 풍경. 이야기를 들려줄 때마다 할머니는 잠시나마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다. “그랬었지.” 할머니의 짧은 대답에 나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무엇보다도 할머니는 ‘모자’를 좋아하셨다. 외출할 때마다 옷에 맞는 모자를 골라 거울 앞에 서시곤 했다. 할머니 집을 정리할 때 유난히 많았던 모자들. 핑크, 노랑, 빨강… 나는 차마 버릴 수 없어 모두 제주로 보냈다. 철쭉 피던 봄날, 할머니는 내가 보내드린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으셨다. 그때의 미소는 꽃보다 예쁘게 빛났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치매는 단지 기억만 앗아가는 병이 아니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전화를 걸어오는 할머니. 때로는 가족들에게, 때로는 이미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에게까지. 같은 말을 반복하며 꾹꾹 눌러 전화를 걸었다. 그 모습은 가족들에게 큰 부담이 되었고, 마침내 친정엄마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오늘 네 번호를 할머니 핸드폰에서 지웠어.”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가슴이 조각나듯 아팠다. 할머니가 자주 찾던 사람이 바로 나였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그러나 동시에 알았다. 그것이 우리 모두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을. 번호 하나를 지운 게 아니라,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오래도록 이어져 있던 끈 하나를 떼어낸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다짐했다. 더 이상 전화를 기다리지 않고, 내가 직접 발걸음을 옮기겠다고. 이번에는 꼭 예쁜 하얀 모자를 사서 가야겠다고. 하얀색은 순수와 평화를 상징한다. 할머니와 잘 어울리는 색이다. 할머니가 그 모자를 쓰고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을 내 두 눈으로 영원히 담고 싶다.


어떤 아픈 기억은 지워져야만 삶이 이어지고, 또 어떤 것은 오히려 상처이기에 더욱 선명해져 끝내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슬픔이 때로는 짐이 아니라 힘이 되듯, 할머니와 나눈 시간은 내게 앞으로의 세월을 버티게 하는 가장 따뜻한 뿌리로 남을 것이다.


기억은 사라져도, 사랑은 끝내 지워지지 않는다.




아름다운 나의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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