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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이유

필사하며 나누며

by Eli


* 이 매거진은 fragancia 작가님의 필사 모임에서 제공된 자료를 토대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 이 매거진은 fragancia 작가님과 공동으로 하는 글쓰기입니다.

* 글쓰기의 목적은 필사 문장을 다시 음미하고 확장하려는 데 있습니다.





아무리 책을 읽어도 마음을 채울 수는 없을 것 같아서 단념했습니다. 동시에 뭘 위해 책을 읽는 건지 나 스스로도 그 의미를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는 비로소 문학이란 어떤 것인가라는 개념을 나 자신의 힘으로, 근본적으로 세우는 수밖에 달리 나를 구할 길이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 나쓰메 소세키, 인생의 이야기 -


질문 : 당신은 무엇을 위해 책을 읽나요? 책을 통해 나를 구할 수 있을까요?





"뭘 위해 책을 읽는 건지"


내겐 7살 위의 언니가 있다. 아버지 사업이 망하고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자 언니는 고등학교 입학을 한 해 미루었다. 흔치않은 대학생 과외를 붙여가며 사대문 안에 있는 중학교를 보냈는데(언니는 시험을 보고 중학교에 갔었다) 학교 진학을 미룰 정도로 형편이 좋지 않았던 거다. 학교에 가지 못한 언니는 말을 하지 않았고 다락방에 들어가 종일 책을 읽었다. 어린 나는 잘 몰랐지만 다락방에서 나오지 않는 언니의 모습으로 그 마음을 짐작할 뿐이었다. 우리 식구는 아무도 언니를 건드리지 않았다. 언니가 없는 틈을 타 들여다본 다락방엔 이부자리 주변으로 책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 책들 또한 우리 집 것이 아니었다. 잘 사는 집 친구의 아버지 서재에 있는 책들을 빌려다 보며 언니는 학교에 가지 못하는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어느 날, 언니가 내게 책을 권하기 시작했다. 5학년 때였다. 너도 이제 많이 컸으니 이런 것들을 읽어라, 하며 내민 것이 '상록수'였다. 그다음엔 데미안, 수레바퀴 밑에서, 대지, 천국의 열쇠, 좁은 문, 어린 왕자, 폭풍의 언덕, 제인 에어.... 그때 언니의 옆구리엔 '죄와 벌'이 있었다. 내 독서의 시작은 언니였다. 채영신, 데미안과 싱클레어, 에바부인, 싯다르타, 왕룽일가와 치셤 신부, 제인 에어, 김약국집 딸들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나는 언니 덕분에 또래보다 일찍 나이를 먹었던 것 같다. 교과서에 등장한 상록수의 일부를 학생들에게 처음 가르칠 때 느낀 기분을 기억한다. 참 묘했다. '채영신'이란 여성처럼 살리라 생각했던 낭만적이고 치기 어린 모습이 생각났다. 그런데 그 소설을 가르치고 문제를 풀어야 하는 현실이 얼마나 생경했는지....


독후감을 쓰라고 해서 썼는데 선생님이 불렀다. 내가 쓴 독후감이 가짜라는 거였다. 6학년의 독서를 믿지 않았던 거다. 엄마가 학교에 오셨고 7살 위 언니가 있다고 증언? 해주면서 나는 각종 독후감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작가가 될 정도로 책을 읽으려면 김미옥 작가 정도는 돼야 한다) 그저 책이 좋아 읽었다. 한 권을 읽고 나면 다른 책을 읽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글이 글을 불러오듯이 책은 책을 불러왔다. 밤새워 시험공부는 안 했지만 밤을 새워 "전쟁과 평화"를 읽었고 헤르만 헤세, 레마르크와 도스토옙스키, 이청준, 박완서, 오정희, 전혜린, 루이제 린저 등과 함께 사춘기를 보냈다. 엄마는 내가 사춘기를 겪지 않았다고 하는데 천만의 만만의 콩떡, 모르시는 말씀이다. 책을 읽으며 끓어오르는 감정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책들이 내게 어떤 위로와 조언을 했는지 엄마는 모른다.


고등학교에서 평생친구를 만났다. 그 애 집에는 금박으로 제목을 입힌 책들이 거실 가득 꽂혀있었다. 그 친구의 집에 드나들면서 그 거실에 있는 책들을 읽었다. 대학에 가 보니 내가 공부할 텍스트들은 그 거실에 있던 책들이었다.


삼중당 문고를 기억하는가. 삼중당 문고를 안다면 당신은 나와 같이 7,80년대 청춘이었을 것이다. 작은 글자가 빽빽하게 세로로 인쇄된, 손안에 들어오는 작은 책. 등, 하교 길 버스 정류장 앞에 있던 서점에서 틈나는 대로 삼중당 문고를 샀다. 처음 가격이 150원이었던 책. 나는 350원일 때부터 사서 읽다가 750원인가 850원인가 할 때를 끝으로 더는 사지 않았다. 삼중당 문고를 얼마에 샀느냐에 따라 그 사람 나이를 대충 알게 되는 그런 책. 삼중당 문고는 교과서보다 작아서 수업시간에 몰래 읽기엔 그만이었다. 스탕달의 '적과 흑'을 교과서 안에 세워놓고 읽다가 들켜버렸다. 표지를 본 생물 선생님은 "나도 아직 안 읽었는데" 하며 그냥 지나가셨던 기억. 한국 문학을 비롯해 러시아와 유럽, 영미 문화권의 책들을 삼중당으로 읽었다. 현대 미술을 표지로 사용한 그 작은 책들을 나는 사랑했다. 대학에 가서 민음사의 책들을 보니 삼중당 문고는 장난감 같았다. 작은 핸드백에도 들어가는 삼중당 문고를 어딜 가든 들고 다녔다. 결혼할 때 누렇게 빛바랜 책들을 꺼내 다시 보니 밑줄 그으며 읽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내 정신의 일부였던 책. 나는 삼중당 문고로 사춘기의 슬픔을 견디고 20대의 불안을 지나왔다. 이젠 그런 책이 없다.


어른이 되어 돈이 없어도 나는 책을 사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아이들과 함께 서점에 다녔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갔고 첫눈이 오면 첫눈이 와서 갔다. 돈이 없어서 갔고 화가 나서 갔다. 어쩌다 서점을 그냥 지나치면 아이들이 물었다. 오늘은 서점에 안 가냐고. 군대에 가서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은 큰아이는 책에 감동하긴 처음이라고 했다. 책을 읽으며 언니는 집안의 가난을 견뎠고 내 친구는 결혼 생활을 견뎠고 큰아이 또한 책을 읽으며 군대를 견뎠다. 나는 무엇을 견뎌냈던 것일까.


내가 무엇을 견뎌냈는지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콱 죽어버리고 싶었을 때, 광장의 이명준을 태백산맥의 염대장과 소화를 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를 제인 에어를, 난쟁이와 영희를 생각했다. 콱 죽어버리지 않고 살고 있으니 책을 읽었기 때문일까.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세상의 부조리함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나를 대신하여 책은 나보다 더 절실히, 집요하게 삶에 대해 물었기 때문이다. 이것만은 확실한 사실이다. 왜 사는지, 왜 가난한지, 왜 불평등 한지, 노동의 가치는 무엇인지, 왜 세상은 부조리한 지.... 모든 불확실함 속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원하는 답을 찾아서가 아니라 자꾸만 떠오르는 질문들 때문이었다. 답을 찾아 헤맸는데 답은 쉽게 얻지 못했고 답과는 상관없다는 듯 질문은 끝없이 따라다녔다. 이 질문들에 대한 답찾으려면 책을 읽어야 했다. 책을 대신할 다른 수단이 있었다면 아마 그것을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책이었을 것이다. 읽겠다는 자유의지가 있었고 읽을 시간은 맘만 먹으면 주어졌으니 삶이 내게 베푼 좋은 것 중의 하나는 책이었다.


나는 책을 읽으며 결핍을 견디고 불안을 견디고 언제나 답을 주지 않는 삶을 견뎠지만 이제는 답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위해 책을 읽는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은? 진정한 인간의 품위란? 건강한 관계를 위한 선택은? 진짜로 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술의 영향은 얼마나 치명적인가? 자연은 왜 지켜야 하는가? 필요한 물질은 어느 만큼인가? 인간은 찌질한데 왜 위대한가? 예술과 창작은 돈보다 중요한가? 잘 늙고 잘 죽는다는 것은?


답은 없지만 모든 것이 왜 사는지에 대한 답으로 향했다. 그 답은 오아시스의 신기루이며 파랑새이고 끝없는 산을 넘으며 찾아갔던 무지개여서 손에 잡히지 않았다.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헤맨 것은 나의 어리석음이었다는 것. 답은 또 다른 질문을 불러온다는 것. 그 질문 앞에 서는 것이 살아가는 거라는 것. 무지개를 향해 손을 뻗으며 60개의 산을 넘고서야 비로소 겨우 이제야 아주 조금 알게 되었다. 나는 나의 의미와 세계의 의미, 그 가치를 추구했다. 깊이있게 살며 자유롭기를 바랐다. 나의 책읽기는 그랬다.


책을 읽을수록 나는 쓸쓸한 인간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이 쓸쓸함에 대한 확인은 내밀한 나의 비밀이고 이것 때문에 나는 성장한다. 쓸쓸함은 허전함이 아니라 나의 어리석음을 확인하며 겸손해지는 것이다. 맹렬한 열기가 물러가고 가을로 들어갈 때 *"개울물은 날로 여물어갔다"의 문장처럼 빛바랜 햇살의 그림자가 그늘로 지며 적막하지만 깊어지는 개울의 흐름 같은 것. 그것이 쓸쓸함이다. 쓸쓸함을 아는 사람은 조금씩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더 쓸쓸한 인간이 되고 싶다. 쓸쓸함이 주는 충만을 살며 무사히 늙고 싶다.


책읽기는 내게 주어진 행복한 사치다. 이 사치는 가진 것과 상관없다. 언젠가 하늘의 자비가 내게 닿는 날, 질문들은 그칠 것이고 그날까지 나는 도서관 목록을 검색하고 자기 전 밀리의 서재를 보며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주문할 것이다.

오늘도 나는 책장을 넘기며 질문 앞에 선다.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오는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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