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려는 노력이 결국 사랑이더라.
* 이 매거진은 Eli 작가님과 공동으로 하는 글쓰기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라고 말해야만 한다.
우리는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
- 이번 생은 처음이라.
Q. 누군가를 간절히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적이 있나요?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들고 있던 남편이 일어나 베란다 창고문을 열었다.
"내일 비 온다네."
이 말은 곧 남편이 오늘 세차를 나간다는 뜻이다. 일기예보 앱이 '비 소식'을 알려주면, 남편의 몸에는 자동으로 ‘세차 모드’ 스위치가 켜진다. 나에게는 비 소식이 ‘우산 준비 신호’라면, 남편에게는 ‘차 광내기 긴급 호출’인 셈이다.
이 행동은 오랫동안 내 수수께끼였다. 아니, 수수께끼보다 코미디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차를 하고 나서 비가 오면 ‘머피의 법칙’이라 부른다. 그런데 왜 그는 굳이 비 오기 직전에 세차를 하는 걸까? 세차야말로 비 오고 난 뒤에 해야 더 깔끔하지 않은가.
“괜히 돈 낭비, 시간 낭비 아니야? 그냥 비 오고 난 다음에 하지 그래요.”
남편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이미 옷을 갈아입고 양손에 세차 용품들을 챙겼다. 대답 대신 묘한 미소에 자신감이 묻어 있다. 나는 그 미소가 더 답답했다.
남편의 세차 루틴은 단순하지 않다. 고압 세척기를 돌린 뒤 집에 돌아와 가장 넓은 자리에 차를 주차하고, 몇 시간씩 차에 매달린다. 차 표면에 왁스를 정성껏 바르며 본격적인 ‘차 마사지’에 들어간다. 그리고 유리창엔 꼼꼼하게 코팅을 해준다. 그 모습이 마치 신성한 의식을 치르는 것 같았다. 손목은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옷은 땀에 흠뻑 젖어도 그는 지극히 만족스러운 얼굴로 차를 쓰다듬었다. 나는 그런 남편을 보며 ‘저게 뭐라고 저렇게 열심일까’ 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 솔직히 결혼 초반에는 그 모습이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마치 장난감을 아끼는 어린아이 같아서 ‘참 부지런하네’ 하고 흐뭇하게 바라봤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귀여움은 짜증으로 바뀌었다. 나는 속으로 ‘차 말고 나를 저렇게 공들여 다뤄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투덜거렸다. 어느 날은 대놓고 말했다.
“차에 왁스 바르지 말고, 나한테 로션이라도 좀 발라주지.” 남편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진지하게 답했다.
“자긴 손 있잖아. 그리고 안 발라도 예뻐.” 그 말에 순간적으로 웃음이 났다. 그런데 웃음은 딱 3초였다.
“아, 이 남자. 말은 잘해.” 하면서도 결국 또 차를 향해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괜히 씩씩거렸다.
다른 사람들에게 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대신 AI에게 물었다.
- 비 오기 전에 세차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설명해 줘.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 비 오기 전에 세차를 하면 차 표면의 먼지나 오염물이 제거되어 빗물로 인한 얼룩이나 부식을 줄일 수 있습니다. 특히 왁스나 코팅제를 미리 발라두면 차가 빗물을 더 잘 튕겨내서 오히려 깨끗하게 유지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 순간 진짜 할 말을 잃었다. 나는 괜히 잔소리만 늘어놓고, 정작 남편이 가진 나름의 논리를 들어보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남편은 나보다 더 ‘이성적’이고 ‘실용적’인 선택을 하고 있었다. 그동안 내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쓸데없다’고 치부했던 일이 사실은 꽤 근거 있는 행동이었다니, 부끄럽고도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몰려왔다.
그제야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의 세차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그는 차를 닦으면서 하루의 긴장을 풀고, 손끝으로 성실하게 시간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 나에겐 그저 유리창에 반짝이는 코팅제였지만, 남편에겐 그것이 자신만의 성실함을 확인하는 방법이었다. 비가 올 때야말로 그 노력의 결과가 드러난다. 와이퍼를 쓰지 않아도 물방울이 흩어져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다. 그는 분명 속으로 흐뭇해했을 것이다.
이제는 남편이 비 오기 전날 세차를 나간다고 해도 말리지 않는다. 오히려 세차하면서 마실 수 있도록 텀블러에 냉커피를 가득 타준다. 물론, 아직도 그의 세차는 가끔 과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과함 속에 남편의 진심이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나를 향한 사랑도, 삶을 대하는 태도도, 바로 그런 과함으로 표현되는 게 아닐까 싶다.
남편의 세차는 결국 내게 큰 교훈을 줬다. ‘나는 네 마음을 알아’라고 섣불리 말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잘 모르겠어. 네가 왜 그런지 알려줄래?”라고 묻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 그 깨달음은 세차장에서, 반짝이는 차 표면에서 배운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아마 남편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그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니까. 이제 비 소식이 들리면 나는 먼저 남편에게 말한다.
“자기야, 오늘 차 광내러 가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