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가 소멸된 신 앞에 선 인간.

『좁은 문』 앙드레 지드

by 나살린



종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학교를 다닌 탓에 많은 알리사들을 보았다.

단정한 머리, 색채 없는 옷차림, 짙게 가라앉은 음성, 내면을 응시하는 차분한 시선

그들에겐 다가갈 수도, 말을 걸 수도 없는 깊은 소외를 느꼈다.

이와는 반대로 부스스한 머리, 꾸밈없는 옷차림, 귀를 찢는 듯한 하이톤의 음성, 어디서든 사람을 붙잡고 설교를 늘어놓는 집요함, 흑화 된 알리사들도 있었다.

그들에겐 내게 올 지도 모른다는 깊은 공포를 느꼈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람과의 관계가 무너져 있었다는 것이다.


가끔씩 궁금하다.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결혼은 했을까?

어떤 엄마가 되었을까?

타인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여전히 굳건한 신앙심을 가지고 있을까?

어쩌면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에서 만난 알리사의 삶을 살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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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과 신앙, 개인의 욕망과 도덕적 이상 사이에서 고뇌하는 두 인물, 제롬과 알리사의 내면을 세밀하게 조명하고 있다. 인간이 종교적 이상만을 좇을 때 겪는 자기 부정과 관계의 파괴, 마음의 소모 등을 다루고 있다.


제롬과 알리사는 단지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기에 더 높은 종교적 가치, 더 '좁은 길'을 가기로 선택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두 사람이 갈라진다.

제롬은 사랑에 충실하고, 그 사랑이 언젠가는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다. 헌신적이고 순수하지만, 동시에 상대방의 내면에 자리한 갈등과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오해와 이상화에 머문다.

반면, 알리사는 사랑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스스로 억제하고 거부한다. 이는 단지 종교적 신념 때문만은 아니다. 어머니의 부도덕함과 엄격한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 자신만은 깨끗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지니게 된 것이다. 그녀는 제롬을 사랑하면서도, 자신이 그의 삶에서 신앙적이고 도덕적인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낀다. 종교적 이상을 통해 자신을 정화하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그녀를 병들게 한다. 이는 자유로운 의지라기보다는 강박적인 자기 억제이며, 신에 대한 헌신보다는 자기 구속에 가깝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제롬과의 관계를 거부하고 ‘좁은문’을 통해 신에게 이르기를 선택한다.




철학사조 중에서 개인과 신이 직접 소통하는 사조에서는 사회철학이나 정치철학이 부재함을 보게 된다. 개인이 신에 직접 맞닿음으로써 다른 인간과의 관계는 사소한 것이거나 유치한 것으로 치부되는 것이다. 신이라는 큰 존재에 다른 인간은 너무도 원거리에 있는 것이다. 자신만은 그 거리를 좁히려 부단히 노력하는 거룩한 인간이다. 물론 좋은 사람이 되려는, 거룩한 인간이 되려는 노력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관계를 무너뜨리면 추구하는 개인의 숭고함은 타인에 대한 경멸을 은밀히 숨기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우리는 사람 사이에 살아간다. 내면의 경건함과 숭고함은 신과의 소통에서 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펼쳐져야 한다.


아! 알리사

그녀가 통과하는 좁은 문엔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보이지 않는다.

오직 자기 부정과 희생 그리고 관계 단절만이 보인다.

책을 읽는 동안,

그동안 스쳤던 알리사들,

삶에서 드러난 나의 알리사를 다시 만났다.


어떤 책에 읽은 구절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성령은 관계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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