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사랑과 증오는 같은 뿌리에서
『폭풍의 언덕』은 액자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치 할머니가 동네의 전설을 이야기해 주듯이 세입자 록우드에게 가정부 엘렌이 집과 집주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배경은 언덕 위의 집 워더링하이츠의 언쇼가와 언덕 아래 집 스러시크로스의 린튼가다. 워더링하이츠의 주인이 고아 소년을 입양하면서 복잡한 서사가 전개된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과 증오, 집착과 복수가 뒤엉킨 인간 본성의 깊은 심연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그 중심에는 히스클리프가 있다. 히스클리프는 워더링하이츠에 입양아로 들어온다. 그러나 워더링하이츠는 입양아에게 그리 호락호락한 공간이 아니다. 입양아에게 보내는 온정은 그를 학대하는 다른 구실이 되곤 한다.
히스클리프의 삶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캐서린을 향한 집착이었다. 어린 시절, 캐서린은 그의 유일한 친구이자 세상의 전부였다. 하지만 사회적 신분과 현실적인 조건 앞에서 캐서린은 에드거 린턴과 결혼하는 길을 택했다. 이는 히스클리프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히스클리프는 워더링하이츠를 떠나 다른 곳에서 3년을 보내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히스클리프는 예전의 그가 아니다. 악의와 분노에 찬 눈빛과 행위로 워더링하이츠를 둘러싼 인물들을 파괴와 죽음으로 몰고 간다. 그에게 3년은 복수를 꿈꾸고 학대를 곱씹는 분노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히스클리프의 캐서린을 향한 사랑은 절망과 복수로 변질되었을 때 자신을 파괴하는 길로 향한다. 사랑과 증오는 결국 같은 뿌리에서 자라난다. 히스클리프의 복수는 치밀했다. 그는 부를 축적하여 언쇼 가문의 재산을 빼앗았고, 린턴 가문의 몰락을 계획했다. 그러나 복수를 완성해갈수록 그는 더욱 공허해졌다. 캐서린을 잃은 후, 그는 살아 있으나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히스클리프는 점점 초월적인 존재처럼 변해간다. 그는 더 이상 복수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캐서린과의 재회를 갈망하며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질문이 남는다
히스클리프가 워더링하이츠 밖에서 보낸 3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만약 히스클리프가 복수가 아닌 용서를 택했다면 그의 삶은 달라졌을까?
그에게 다른 선택이 가능했을까?
마지막 문단이 히스클리프의 광기 어린 격정과 대비되어 자연의 처연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p 513
나는 온화한 하늘 아래에서 그 비석들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히스와 초롱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나방들을 지켜보기도 하고, 풀잎 사이로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고요한 땅에 묻힌 사람들이 평온하게 잠들지 못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작가 에밀리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ë, 1818~1848)는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단 한 편의 소설 ‘폭풍의 언덕’만을 남기고 30세에 짧은 생을 마쳤다. ‘폭풍의 언덕’은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이는 거친 자연의 묘사와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눈보라가 치는 황량한 언덕, 히스 꽃이 피는 절벽 등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히스클리프나 캐서린 등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반영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에밀리의 삶은 짧았지만, 그의 작품은 19세기 영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길게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