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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ijai Mar 15. 2019

질투란 감정에 관하여

질투로부터 자유를 선언하다

나는 질투에 관해 할말이 많다.  그 뜻은 기본적으로 나는 질투가 많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왜 나는 이런 감정을 느낄까 스스로 성찰을 많이 해보았다.  질투는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들면, 마음속 진정한 쉼을 누릴 수 없었기에 마음이 괴로웠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질투는 이렇게 정의되어있다.


질투-하다

동사

I.  「…을」

1. 부부 사이나 사랑하는 이성(異性) 사이에서 상대되는 이성이 다른 이성을 좋아할 경우에 지나치게 시기하다. ≒강샘하다ㆍ모질하다ㆍ투기하다

2. 다른 사람이 잘되거나 좋은 처지에 있는 것 따위를 공연히 미워하고 깎아내리려 하다.



질투가 시작되는 곳


나는 살면서 기본적으로 2번에 해당되는 질투로 인해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돌아보니, 대개 내가 힘든 상황 가운데 있을 때, 내 일이 잘 안 풀릴 때, 기본적으로 질투를 하게 되었다. 내 인생에 무언가가 완벽하지 않을 때에도. 내가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있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에 자신이 서지않을 때, 다른 사람에게 질투의 시선을 돌렸다.


나의 꿈과 계획이 생각만큼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을 때에도, 누군가를 질투하게 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질투의 대상은 저 먼 사람이 아니라, 대게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 친구들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것이다.  현빈이 멋있어서, 스티븐 잡스가 너무 똑똑해서 그들을 질투하지 않는다. 대게 나와 함께 이 삶을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을 향한다. 또 한 가지, 나는 가족은 질투하지 않는다. 그들이 잘 되는 게 좋으니까. 가족은 늘 나와한 몸인 듯 생각했다.


질투는 천천히 내 몸에 스며드는 맹독을 마시는 것과 같다. 사람을 칼칼하고 날이 선 사람으로 만든다. 네가 나보다 더 낫다고? 아니 나는 그걸 견딜 수 없다. 세상은 결국 누가 더 잘났고, 누가 더 행복한지 끊임없이 저울질하고 노골적이고 때론 은근한 자랑으로 넘쳐난다. 내가 어떻게 특별한지, 어떻게 너와 다른지도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질투는 거만하고 교만하다. 그리고 절대적으로 비교적이다. 이 이야기에서 말하고 싶은 건 질투의 속성이다.



끊임없이 비교하는 우리들


누구나 알 것이다. 비교하는 속성은 모든 불행의 시작이라는 걸. 그런데 내가 누군가에 비해 우월하다 느끼는 것뿐만 아니라, 누군가에 비해 내가 비교적 못났다고 생각해 좌절하는 마음 또한 교만한 마음이라는 걸 사람들은 알까? 어떤 다른 사람의 불행에 대해 비웃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건 내가 더 우월하다는 비교의식 때문이고, 반대로 어떤 사람의 성공을 보며 초라한 자신의 모습에 우울한 마음이 든다면 그것도 내가 세워 놓은 기준에서 ‘나는 저 사람보다 낮다’ 라고 평가하고 비교하며 내린 결론이기에, 역시 교만한 마음으로 비롯된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언젠가 자신이 비로소 성공의 자리에 섰을 때에 손으로는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을 갖고 교만 해질 수밖에 없다.


질투는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다. 모든 것을 나와 관련해서 연관시키기 때문에, 피곤하고 불행하다. 다른 사람의 행복과 성공도, 다른 사람이 겪는 불행조차 나와 연관시켜 비교를 하며 웃고 괴로워한다. 그렇지만 정말 자유로울 수 있는 건, 나는 나이고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그들의 삶의 여정을 나와 분리시켜 볼 수 있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이 문장은 내가 적어들으며 노트해놓은 것인데. 사람들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질투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내게 가치가 없는 것은 질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걸 들으며 다시금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어느새 내가 누군가에게 질투의 시선을 던지고 있다면 무엇이 현제 내 삶의 핵심가치인지, 무엇이 나를 나답게 만들고 가치 있게 만드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질투로부터 잃게 되는 것


다른 사람의 성공과 행복에 진정으로 기뻐할 수 없는 삶. 다시 말해선 정말 아름답고 좋은 것에 대한 감탄을 잃어버린다. 진정으로 감탄할 수 있는 사람은, 마음의 여유가 넘쳐나는 사람이다. 좋은 것을 좋다 느끼고, 내 친구의 행복과 잘됨에 대해 정말로 기뻐할 수 있는 마음. 아,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진정한 인생의 보물과 선물 찾은 것 과도 같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런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먼저 잘되야 다른 사람의 행복에 기어코 참여해 주는 사람이 있고, 그보다 더 못된 사람은, 자신이 이미 잘 지내고 있는 데에도, 다른 사람에 성공을 보며 배 아파하고 깎아내리려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



결국에 우리 모두가 깨달을 게 있다.  우리는 결국에 모두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존재이다. 누군가 나를 공격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그 사람 스스로가 불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더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서 남을 깎아내려야 한다면 그것은 정말 불행한 삶일 것이다. 이제 서로 비교하는 것을 멈추고, 나에게 기쁨을 주는 것에 머물러 시간을 좀 더 보내면 어떨까? 한번 돌아보자, 주위에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 한 사람이 있는가? 그럼 그걸로 됐다. 모든 관객에게 박수와 사랑받을 필요는 없으니까. 나에게 사랑을 채워주고 사랑을 가르쳐 주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더 길게 보내보자. 그 사랑으로 충분히 나의 마음의 공간을 채워가는 것이, 질투라는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가장 쉽고 확실한 길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 자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스스로 먼저 인정한다면, 삶은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 nothing is as it seems라는 어떤 한 대학 친구의 카톡명을 보며 다시금 느꼈다. 보이는 것에 그렇게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 우리는 모두 행복한 순간을 showcase 하고 싶어 하지, 절대로 내가 아파하고 눈물 흘리는 순간을 공유하지 않는다. 보이는 것에 집착을 그만두는 순간, SNS 뒷면에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반복되는 나의 매일의 일상 가운데 관심을 두고 정직한 수고와 땀을 흘린다면. 그것에 대한 만족과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매일 얻게 된다면, 순간적이고 elusive 한 다른 사람들의 자랑거리에 그다지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 왜냐면 꾸준하고 반복적인 것은 가치가 있으니까.


우리는 모두 살면서 누군가를 질투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한다. 그런 못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낙심하기도 하지만, 때때로 그런 자신의 연약함을 통해 다시금 인생의 중요한 것들을 돌아보며 재정비해 나갈수 있다. 나의 마음은 어떠한지. 상대방의 마음은 어떠한지. 이러한 삶의 훈련 가운데 조금씩 다듬어져 가며 그를 통해 진정으로 누군가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우리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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