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와 나의 이야기 10-4
대부분의 세상 일이 그러하듯이 직접 겪어보면 상황은 생각한 것보다 10배 이상 복잡하고 정교하다.
'벌새 피더에 설탕물을 넣어서 걸어두면 벌새가 와서 먹겠지'라는 생각만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벌새들은 매일 매일 새로운 문제들을 내게 던져주고 해답을 찾으라고 요구했다. 나는 점점 무보수로 일하는 벌새들의 집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저 매일 아침 피더에 설탕물을 채워넣는 행위만으로 평화롭게 벌새를 바라보고 즐길 수 있었다면, 나는 곧 벌새에게 싫증이 났을지도 모른다.
자연 상태에서라면 꽃들의 꿀샘은 꽃자루 안쪽 깊숙한 곳(암술, 수술이나 꽃받침 부위)에 위치하며, 꿀을 먹으려고 오는 곤충들이 꽃가루를 묻혀서 수분해주기를 기다린다. 벌새는 꽃모양을 크게 가리지 않지만 꿀이 많이 든 꽃을 선호하고, 나팔꽃이나 사루비아, 바늘꽃처럼 길쭉해서 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꽃에서도 쉽게 꿀을 먹는다. 심지어 어떤 헬리코니아꽃(Heliconia tortuosa)은 오로지 특정 벌새만 먹을 수 있도록 진화한 것으로 알려진다. 최대한 수분을 잘 시켜줄 수 있는 대상을 선택하는 건 식물 자신인 것이다. 벌새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다른 경쟁자가 먹기 전에 갓 피어난 꽃에서 꿀을 먹는다. 다른 경쟁자(벌새, 나비, 벌, 개미, 파리 등)가 거쳐간 꽃은 빈 물통이나 마찬가지이다. 반면, 아무도 찾아주지 않아서 저녁에 꿀을 품은 채 꽃잎을 닫아버리려는 꽃도 찾아내서 좁은 틈새로 기다란 부리를 집어넣어 꿀을 먹는다. 우리 눈에는 활짝 피어 있는 꽃이어서 꿀이 있을 것 같지만 사실 누군가 거쳐간 빈 꽃일 수도 있고, 시들어가고 있는 것 같지만 여전히 꿀을 담고 있는 꽃도 있는데, 벌새들은 귀신같이 구별한다.
꽃이 담고 있는 소량의 신선한 넥타만 먹고 생존하려면 벌새들은 하루에 1-2천개 꽃을 찾아다녀야 하는데, 사람이 내걸어둔 피더가 있다면 그만큼 적게 노력해도 많은 넥타를 먹을 수 있으니 휴식할 틈이 생기고 생존률도 높아진다. 문제는 사람들이 꽃모양을 흉내내어 만든 인공 피더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는 것이다. 통 아래쪽에 벌새가 부리를 넣을 수 있는 구멍을 뚫어둔 세로형 피더는 물을 담아두었을 때처럼 물줄기가 새나오지는 않지만, 끈끈한 설탕물이 구멍쪽에 동그랗게 맺혀 있다가 조금씩 흘러내릴 수밖에 없다. 물론 벌새들이 부리를 집어넣었다가 꺼냈다가 하면서 표면장력이 깨어져 설탕물이 흐르기도 한다. 조금 더 비싼 피더는 아래쪽 구멍에서 살짝 위쪽으로 휘어진 관을 연결하고, 수술 모양의 관 주변으로 플라스틱 꽃잎 장식을 달아 하늘을 향해 꽃이 핀 효과를 낸다. 처음엔 단순한 벌새 유인책이겠거니 했는데, 벌새를 관찰하다보니 이 작은 피더를 만든 사람들이 얼마나 고심했는지 흔적이 보였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벌새를 좋아하진 않지만, 벌새 애호의 역사는 꽤 오래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수술 모양의 관이 위쪽을 향한다고 해서 넥타가 전혀 흘러내리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벌새들은 생각보다 깔끔하게 먹는 편이 아니고 기다란 혀로 넥타를 퍼올리면서 사방에 설탕물을 튀기는 모양이었다.
문제는 이렇게 흘러내린 설탕물에 다른 곤충들이 꼬인다는 점이었다. 무식한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인간만큼(특히 미국인들)이나 벌새들도 설탕을 좋아하고, 벌새들만큼이나 다른 새, 개, 벌, 나비, 나방, 파리, 개미도 당분을 좋아한다. 그래서 벌새 피더를 보면 가끔 작은 새도 부리를 대고, 벌과 나비도 붕붕거린다. 징그럽게 생긴 말벌은 특히 반갑지 않은 손님인데, 벌새들이 말벌에 쏘이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피더에 말벌이 붙어 있으면 벌새들은 말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다른 방향에서 넥타를 먹는다. 말벌은 그래도 불개미에 비하면 신사다.
불개미들은 일단 벌새 피더로부터 방울방울 떨어져내린 바닥의 넥타에 모여들어 포식을 한다. 그 중 한두 마리 전령 개미들은 자기들의 소굴로 돌아가서 다른 개미들을 불러오는 역할을 할 것이다. 미리 식사를 마친 불개미들은 넥타의 근원인 피더 자체를 차지할 궁리를 하고, 곧 빠른 걸음으로 머나먼 원정을 시작한다. 일단 바닥과 맞닿은 벌새 스탠드의 지지대를 타고 올라 스탠드 기둥을 따라 일렬로 등반을 시작한다. 대열은 결국 벌새 스탠드가 걸린 고리에 도달하고, 곧이어 벌새 피더에 도착하여 벌새가 부리를 대고 먹는 작은 넥타 구멍 속으로 들어간다. 불개미들은 넥타 오아시스에 도달하면 손에 손잡고 발에 발잡고 표면장력을 이용하여 설탕물 위에 뜨기 시작한다. 일렬로 들어오던 불개미들은 앞서간 불개미들의 몸을 징검다리 삼아 가장자리로 움직이면서 점점 더 얇고 납작한 동전 모양의 뗏목을 만든다. 내가 발견했을 당시에는 설탕물 위에 커다란 동전 모양으로 떠서 넥타를 먹고 있었는데, 꼬챙이로 건드리니까 두 세개로 나뉘었다. 물갈퀴도 없는 불개미들이 이런 일을 하다니! 나는 특히 불개미에게 물리면 알러지 반응이 심하게 올라오는 체질이어서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해 허리케인 하비가 텍사스를 강타했을 무렵에도 불개미가 화제가 되었다. 모든 것이 물에 잠겼는데 곳곳에 거대한 넓이의 불개미 뗏목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불개미들은 서로의 다리를 연결하여 함께 떠있는 상태로 마른 땅을 만날 때까지 떠다녔던 것이다. 그들은 서로 교대를 하면서 떠 있기 때문에 아래쪽의 개미도 위쪽으로 올라가 숨을 쉴 틈이 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자신을 희생한 아래쪽 불개미들이 만들어낸 섬 위에서 여왕개미와 애벌레들까지도 익사하지 않고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잔인하게도 해충 스프레이를 가져가서 스탠드 아래쪽에 뿌리곤 했지만, 효과는 잠깐밖에 지속되지 않았다. 스프레이를 맞으면 죽는다기보다는 잠시 기절했다가, 다시 깨어나 움직이는 것 같았다. 다만, 아무리 강인한 불개미들이라도 잠수 시간이 길어지는 세로형 넥타통 속까지는 잘 스며들지 못했고, 얇고 납작한 모양에 위쪽에 구멍이 뚫린 가로형 넥타통에만 집단적으로 침투했다. 벌새들은 아주 작은 곤충도 먹이로 삼지만, 불개미만큼은 먹지 않는다고 했다. (참, 벌새들은 넥타만 먹는 게 아니라 작은 곤충을 먹음으로써 단백질도 보충해야 한다) 아마 불개미의 몸속에 독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뿐만아니라, 다수의 불개미들이 넥타를 점령하면 넥타를 오염시키고, 가끔은 벌새의 부리 위로도 타고 오를 수 있기 때문에 벌새들이 싫어한다고 했다. 개미들이 점령한 피더를 보면 벌새들은 말없이 그곳을 포기하고 떠나버린다고 했다. 만약 내가 뿌려둔 해충스프레이를 몸에 묻힌 개미가 거기까지 왔다면, 유해한 성분이 넥타에 스며들어서 벌새에게 악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 그것이 내가 다시 세로형 넥타통을 내어 걸기 시작한 또다른 이유였다.
불개미를 좀더 근원적으로 차단해 보겠다고 끓는 물을 불개미 구멍에 부어보기도 했지만, 그들은 단 하루만에 무너진 곳을 보수하고 더 큰 저택을 지어버렸다. 불개미를 박멸하려고 더 독한 약을 뿌렸다가는 결국 벌새도 나도 같이 공멸할 수 있을 테니, 불개미를 없애겠다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했다. 불개미로 태어난 그 생명체들도 자기 종을 보호하고 새끼를 지키려고 그렇게 악랄해진 것이니, 결국 이해하며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 사실은 나보다도 벌새들이 더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말벌이나 불개미 집단을 발견하면, 그냥 조용히 그곳을 피하는 것이다. 벌새는 개미보다 크지만 집단을 이루지 않고 각자도생하는 생명체이기에, 집단의 힘을 발휘하는 개미들 앞에 무릎을 꿇는 수밖에 없다. 이렇듯 어디가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들은 반드시 존재하는 법이고, 늦기 전에 그것을 감지할 수 있다면 살아날 확률은 높아지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벌새 애호가들은 불개미들만큼이나 집요한 사람들이어서 아래 그림과 같은 벌새피더를 고안하기도 했다. 인간들이 옛날 성 주변에 방어용 해자(moat)를 만들어두었던 것을 본따서 피더 상단에 작은 벌새용 해자를 달아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위쪽 고리를 타고 내려오는 개미들이 저 깊이의 물을 잠수하다가 익사할 것이다. 그러나 이건 인간의 얕은 생각이거나 생각없는 소비자를 유인하기 위한 상술로 끝날 확률이 크다. '아쿠아맨' 불개미 같은 독종 불개미가 없어도 불개미들은 이 해자라는 장애물을 쉽게 통과할 것이 분명하다. 해자의 수면에서 서로의 몸을 연결하여 다리를 만든 다음 아래쪽 고리까지 기어내려가면 되니까 말이다.
*허리케인 하비가 지나간 후 불개미 뗏목이 발견된 현상을 다룬 신문기사
https://www.theverge.com/2017/8/29/16221842/hurricane-harvey-houston-fire-ants
https://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how-fire-ants-form-giant-rafts-to-survive-floods/
*나중에 이 불개미들의 기술에 착안하여 물에 뜨는 금속이 개발되었다는 과학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