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과 망치의 밤

벌새와 나의 이야기 10-11

by 최리라

8월말이 되자 존스노우는 하루 종일 피더 곁에 앉아 전투를 벌였다. 멀리는 알라스카나 캐나다 북단에서부터 남하하다가 들린 나그네 벌새들로부터 꿀밥통을 지키기 위한 눈물겨운 투쟁이랄까. 긴 여행에 허기진 나그네들도 절박하지만, 끝없이 밀려드는 침입자들과 며칠 째 전투를 치르느라 만신창이가 된 존스노우도 절박하긴 마찬가지였다. 내가 설탕물을 너무 달게 만든 까닭인지, 이제 너무 많은 새들이 존스노우의 넥타통에 부리를 대고 있었다. 일찌감치 피더를 두 군데에 나눠서 걸어두었는데도 말이다. 뿐만아니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힘없는 청소년이었던 새들이 성체가 되어서 존스노우의 권위에 마구 도전을 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아마 존스노우의 자식들도 있을 것이다. 벌새들의 세계에는 부부간의 정이나 부모 자식간의 도리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고작 몇 분간 지속되는 짝짓기 기간 동안만 수컷과 암컷이 만날 뿐, 수컷은 곧 다른 암컷을 찾아 떠나고 암컷 홀로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운다. 같은 밥통에서 다시 만나도 남이나 다를 바 없이 싸워댄다. 그나마 암컷은 새끼를 기르는 동안은 헌신적인 모성애를 발휘하지만, 새끼가 자라면 철저한 남이 된다. 가을 바람이 불면 철새 여행도 각자 알아서 떠나면 그만이다.


그해 여름 우리 부부가 미국에 온 지 10년이 되었고, 남편의 논문은 아직도 마무리 되지 않고 있었다. 늦어도 그해 여름엔 한국으로 귀환할 거라는 기대가 깨어지자 너무 오래 익어서 부패가 일어날 지경이 된 묵은지가 된 심정이었다. 한국의 부모님과 지인들의 "언제 마치고 들어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일에 지쳐가고 있었다. 아마도 이번 봄엔, 이번 여름엔, 이번 가을엔, 이번 겨울엔...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그것뿐이었으니까. 5월부터 시작된 조지아의 뜨겁고 건조한 여름 날씨까지 가세하여 나의 우울에 불을 질렀다. 지도교수를 만나고 올 때마다 풀죽어 있는 남편에게 내 심정을 말할 수도 없어서, 혼자 끙끙 앓다보니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일이 잦아졌다.


나의 불면증을 부추긴 또 하나의 요인은 얼마 전 새로 이사온 옆집이웃이었다. 이전까지는 그 아파트 관리업체 사장의 조카 커플이 살고 있었는데, 학부생이면서 동거를 하고 출산을 하여 힘들게 살던 커플이 겨우 졸업을 하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들은 백인이었고 온순하고 조용한 성품이었으며, 어쩌다 나랑 주차장에서 마주치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원예학과 학생인 아이 아빠는 우리집과 그들집 사이 좁은 공간에 온실에서 남아도는 꽃화분을 갖다두곤 했다. 그들은 너무 바빠서 꽃을 돌볼 시간이 없었기에 물주고 키우는 건 주로 내가 했지만 말이다.


새로 이사온 이웃은 젊은 흑인 커플이었는데, 그 커플 외에 가족인지 친구인지 회사 동료인지 모를 여러 명의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어서 정확히 누가 살고 있는지 구분이 어려웠다. 그것까진 괜찮았는데, 금요일과 토요일밤마다 파티를 벌이면서 쿵작쿵작 앰프를 높여 음악을 틀고, 집 안뿐만 아니라 집 바깥에까지 나와서 술을 마시고 새벽까지 큰 소리로 수다를 떠는 게 문제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는 그 도시의 동쪽 끝에 위치했고, 백인 서민들이나 가난한 흑인들이 많이 살아서 종종 도난사건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우리도 안전을 위해 뒷현관문을 항상 잠가두었고, 1층 유리창은 최대한 블라인드를 내리고 살았다. 그러다가 옆집에 술파티를 즐기는 흑인커플이 들어오자 바짝 긴장이 되었다. 일반인이 무기를 소지할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고, 마약과 알콜에 쩔어 지내는 이도 많았다. 마트에 장보러 온 여인의 작은 핸드백 속에도 호신용 총이 들어있곤 했다. 뭘 쏘았는지는 모르지만 가끔은 한밤중에 어디선가 총성이 들리기도 했다. 옆집에서 아무리 한밤중에 시끄럽게 굴어도 함부로 노크하여 조용해달라고 말하다간 총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금요일과 토요일밤 아무리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도 꾹 참고 지냈다.


무덥다못해 습도까지 높아 뱀파이어들이 출몰할 것 같던 어느 금요일 밤, 옆집에서 최고로 시끄러운 파티가 벌어졌다. 소리로 판단하건대 열 명쯤 와서 웃고 떠드는 것 같았다. 참고 자려고 2층 침실에 누웠다가,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1층 거실로 달려내려가 공구함에서 망치를 꺼내들었다. 그대로 집밖으로 튀어나가 옆집 문을 두드리고 싶었으나, 그때 마침 2층 서재에 있던 남편이 놀라서 뛰어내려왔다. 전의가 한풀 꺾인 나는 현관문 안에 서서 우리 현관과 그집 현관이 만나는 쪽 벽을 여러 번 꽝꽝 내리쳤다.


남편의 우려와 달리, 나의 망치소리에 옆집 사람들이 잠시 숨을 죽이고 조용해졌다. 여전히 음악소리는 들리고 있었으나 사람들이 일제히 입을 다문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가만히 있자 1분도 지나지 않아 그들이 다시 소리를 내고 떠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벽에 못질을 했거나, 단순히 부부싸움을 한 거라고 생각했나보다.


나는 다시 약간의 간격을 두고 망치로 세 번 벽을 두드렸다. 아까보다 신중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분노가 묻어있는 망치질이었다. 페인트를 칠한 시멘트벽이 조금 움푹 패인 것이 보였다. 그러자 다시 정적이 찾아오더니 음악소리도 멎었다. 그때부터 그들은 조용히 소곤거리다가 하나 둘 집을 떠나는 것 같았다. 총알이 벽이나 문을 뚫고 들어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간만에 단잠을 잘 수 있었다. 내일 총을 맞더라도, 오늘 나는 잠을 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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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오전 10시경, 누군가 예의바르게 우리집 문을 노크했다. 누구냐고 했더니 공손한 여자 목소리로 옆집 사람이라고 말했다. 문구멍으로 내다보니, 총을 들고 있거나 화난 표정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총 맞을 각오를 하고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제시카예요. 다름이 아니고요, 저희가 그동안 주말마다 너무 시끄럽게 했던 점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친구들이 오더라도 밤 12시에는 무조건 끝내려고 하는데요, 그 전에도 혹시 시끄러우면 말씀해 주세요."


그렇게 오랫동안 눈을 마주치고 정식으로 인사를 한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귀여운 얼굴의 제시카는 기껏해야 20대 초반 정도로 보였고, 매우 겁을 먹고 조심하고 있는 눈치였다.


"아 네... 저는 괜찮은데...우리 남편이 요즘 논문 마무리 때문에 좀 날카로워요..."


나는 어제 망치를 두드린 사람이 내가 아니라 남편인 것처럼 시치미를 뗐다. 그리고 늦어도 밤 12시부터는 앰프를 끄고 조용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인은 매우 고마워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문을 닫고 나자 피식 웃음이 났다. 미국에 10년을 살고도 여전히 흑인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다니.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들 중에 흑인 비중이 높긴 하지만, 그렇다고 일반적인 흑인들을 모두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해선 안 된다. 내가 백인도 아니고 동양인 유학생인 주제에, 나보다 지위가 높은 미국 시민인 흑인들에게 인종차별의 잣대를 적용하다니... 사실 그 순진한 흑인 청년들 입장에서는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인지 알 수 없는 중년의 동양인 부부인 우리가 더 무서웠을 수도 있다. 그 무렵 남편과 나는 유학말년 스트레스로 얼굴이 항상 어두웠고, 바깥에 나가도 무표정하거나 인상을 쓰고 있을 때가 많았다. 우리에 대해 아무 정보도 없는 그들은, 우리가 피신 중인 동양의 갱단이고, 화가 나면 총이나 사시미칼을 들고 그들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빠져들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우리가 그날 밤 망치로 벽을 쾅쾅 두드렸을 때, 그들은 얼마나 큰 공포에 빠져들었겠는가!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다고 하면서도 한국이라는 나라를 모르는 사람도 많고, 한국을 알고 있다쳐도 김정은의 나라가 남한인지 북한인지도 헷갈려하는 미국인이 흔했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를 북한사람들로 알지도 모른다. 역지사지란 얼마나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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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로 제시카는 바깥에서 나와 마주칠 때마다 깎듯하게 인사를 했다. 커플이긴 하지만 남자친구는 그곳에 살지 않으며, 가끔 머무르기만 한다고 했다. 나는 무서운 동양인답게 당당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존스노우를 닮아 싸움꾼이 되고 있는 건가? 벌새는 인디언 전설 속에서 용맹한 전사로 묘사되기도 하는데, 나에게 그런 벌새의 영혼이 깃들게 된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자 없던 힘이 불끈불끈 솟는 것 같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집에서도 매주 토요일이나 일요일밤 한국인들끼리 모여 새벽 한두 시까지 보드게임을 하며 놀곤 했다. 간혹 게임의 승패가 갈리는 순간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박장대소하면서... 진짜 무서운 사람들은 굴러온 돌인 주제에 박힌 돌을 위협하는 우리자신이었다. 아직도 내가 살던 그 아파트 벽은 그날 밤의 비밀을 간직한 채 움푹 패여 있을 것이다.



https://youtu.be/L_NH8nYlE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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