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와 나의 이야기 10-12
존스노우가 떠나도 베이비소울은 남을 것이다. 그러나 베이비소울도 얼마 후 떠나겠지. 곧 그런 날이 온다 하더라도 지금은 양쪽 창문을 통해 '우 솔 좌 존' 하면서 식사할 수 있는 아침의 행복을, 그냥 누리자.
9월이 되자 새벽 기온이 뚝 떨어지는 날이 늘었고, 벌새 피더에도 나그네 새들의 방문이 늘어났다. 나는 이미 8월부터 기존의 잔디밭 스탠드에 걸어둔 피더 외에 현관문 유리창밖에 붙이는 가로형 피더를 설치해서 두 군데에서 사이좋게(?) 나눠먹을 수 있게 해주었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스탠드에 걸어두었던 피더를 현관문 처마 아래에 걸어주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벌새들은 척척 알아듣고 융통성 있게 행동했다. 내가 그들을 관찰하는 것만큼이나 벌새들도 내 행동과 우리집의 사소한 변화를 관찰하고 있는 것 같았다. 특히 존스노우의 행동에 뚜렷한 변화가 생겼다.
첫째, 존스노우가 두 개의 넥타통 중 하나(창문벽에 부착한 가로형 피더)를 베이비소울에게 양도했다는 것.
둘째, 존스노우가 그동안 털갈이 중이었던 목 깃털을 거의 완벽하게 회복하고 나타났다는 것. 은신하던 왕이 돌아온 것이다!
세째, 존스노우가 털갈이를 시작하기 전에 주로 앉던 토마토 지지대 위 왕좌에 다시 오랫동안 앉아 있기 시작했다는 것.
첫째 현상이 일어난 이유는 청소년 수컷 중 '베이비소울'의 힘이 점점 더 세져서 '식사중인' 존스노우에게 감히 도전하거나, 존스노우가 쫓아내도 도망치지 않고 거의 대등한 힘으로 대항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거기다 레나와 연두까지 덤비니까 세 마리를 한꺼번에 상대하다가 지친 모양이었다. 이건 순전히 내 추측이지만, 존스노우는 그 중 가장 힘이 센 베이비소울에게 두번째 넥타통을 양도함으로써, 베이비소울이 나머지 두 마리와 다른 침입자들을 상대하도록 만든 것 같았다. 존스노우는 결과적으로 자기 밥통만 지키면 되는 셈이니 이전에 비해 체력 보존율이 높아진 것이다. 물론 인간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2인자의 자리에 오른 베이비소울은 틈만 나면 존스노우의 밥그릇에 부리를 대고 존스노우의 힘을 시험해봄으로써 존스노우를 열 받게 만들었지만 말이다.
둘째 현상과 세째 현상은 상관이 있어 보인다. 존스노우는 몸 깃털을 갈던 중에는 모두에게 노출되는 자리보다는 건너편 나뭇가지 속에 숨어있길 좋아했다. 동물들에게 완벽한 외모는 외모 이상의 기능을 한다. 비루먹은 개처럼 털이 빠진 새들은 그만큼 다른 새들의 공격 대상이 되기 쉽고, 털이 없는 피부는 창과 같은 다른 벌새의 부리에 찔릴 경우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슴과 배의 깃털을 다 간 다음 목깃털도 개비하기 시작했는데, 몸깃털을 갈 때보다는 좀 더 당당해졌지만, 그래도 처음에 앉던 토마토 지지대 위에 오래 앉아 있는 행동은 삼갔다. 나는 존스노우가 잘 보이지 않던 기간 동안 아침마다 근처 보태니컬 가든에 가서 다른 벌새들이 꽃꿀을 먹는 장면을 사진 찍곤 했는데, 사진에 찍힌 벌새들은 거의 다 암컷들이었다. 넥타피더 없이 꽃꿀에 의존하며 사는 보태니컬가든의 수컷벌새들은 더 일찍부터 철새여행을 떠나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에 비하면 내 뒤뜰에 사는 존스노우는 꽤나 오랫동안 내곁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다 바로 오늘 아침, 완벽한 목깃털을 번쩍이며 나타난 후부터 토마토 지지대 위에 5분 이상씩 앉아서 털을 고르거나 해바라기를 하면서 망을 보기 시작했다. 심지어 내가 바깥에 카메라를 들고 나와도 토마토 지지대에 그대로 앉아 도망치지 않고 있다. "자, 이 정도 거리면 내가 충분히 커버할 수 있으니, 맘껏 사진 찍으시오!"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고는 내가 나오든지 말든지 거의 하루 종일 그 지지대 위에 보란 듯이 앉아 있다. 나는 부엌 식탁에 앉거나 서서 요리를 준비하는 틈틈이 존스노우와 눈을 마주쳤고, 존스노우는 안 보는 척하면서 유리창 안쪽의 내 행동을 신기한 듯 관찰했다.
완벽한 깃털로 나를 찾아왔던 존스노우가 처음의 그 자리에 비슷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걸 보니, 이제 존스노우가 떠날 날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스노우는 나에게 분명히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외면하려고 했지만 점점 마음이 슬퍼졌다. 내가 심어서 꽃피운 나팔꽃 꿀에서도 식사하는 모습을 보았으니, 나는 벌새에 대한 소망을 거의 다 실현했다. 그저 튼튼한 몸으로 남쪽으로 날아가서 오래오래 번성하기만을 바라면 되는 것이다. 존스노우에 한창 빠져들기 시작하던 무렵보다, 이별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음을 감지한 지금 존스노우에 대한 나의 애착은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언제나 마지막을 생각하면서 상대를 바라보면 애틋함때문에 작은 미움이나 불만 따위는 사라지고 만다. 더군다나 나는 존스노우를 좋아하기만 했을 뿐, 미워하거나 실망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네번째 변화는 존스노우가 이제 토마토지지대를 무대삼아 다양한 쇼까지 펼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지지대를 한 발 또는 두 발로 붙잡은 채 지지대 와이어에 부리닦기, 강아지처럼 한 발 들어올려 부리닦기, 부리로 가슴털 고르기, 고개를 180도까지 꼬며 전신의 날개깃 고르기, 배변하기, (벌새들은 다리가 약해서 다리로 걸음을 걷는 경우는 없다고 들었는데도) 종종걸음으로 왼쪽 오른쪽으로 조금씩 움직이기, 혀 날름 거리며 되새김질하기, 온몸의 털을 일으켜세워 통풍시키기, 몸을 부풀리거나 목깃털을 곤두세워 침입자에게 경고하기 등등... 그동안 나뭇가지에 숨어서 하던 행동이었을텐데, 이제 공개된 곳에서 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이러한 존스노우의 변화를 사진과 함께 블로그에 포스팅하고 있었는데, 캘리포니아에 사는 블로그 이웃 눈바람꽃님이 댓글을 달아두었다. 존스노우가 언제든 떠날 준비를 마친 것 같으니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것이었다. 몸을 부풀리며 안 하던 행동을 자주 하는 건, 장거리 여행에 대비하여 깃털의 기능들을 테스트하는 거라고 했다. 나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고, 눈바람꽃님이 극히 말을 아끼고 있는 것도 알았다.
'어쩌면 지금 당신의 눈앞에 있는 존스노우는 존스노우가 아닐지도 몰라요.'
눈바람꽃님의 침묵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의 존스노우는 이미 남쪽으로 떠나버렸고,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수컷 벌새는 북쪽에서 새로 내려온 나그네일지도 모른다. 이 벌새가 당당한 건, 떠나버린 나의 존스노우보다 성격이 대담해서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전에도 여러번 수컷들은 바뀌었으나 다만 나의 착각에 의해 존스노우의 역할을 이어받았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그렇다 한들 나의 믿음과 애정에 변화가 생기진 않았다. 나에게는 그만큼 벌새 존스노우의 존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부엌에 있는 두 개의 유리창의 블라인드를 올리기 전에 블라인드 틈으로 살짝 내다보면,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식사를 하고 있는 녀석이 있으니, 목에 분홍깃털이 서너개 밖에 없는 베이비소울이다. 존스노우에게서 두 번째 넥타통을 양도받은 베이비소울은 거의 하루 종일 이 넥타통 위에서 살다시피 한다.
물론 존스노우도 이제 하나밖에 남지않은 자기 밥통은 빼앗기지 않겠다고 결심했는지, 자기 넥타통이 잘 보이는 토마토 지지대 위에 거의 하루 종일 앉아서 넥타통만 하염없이 바라본다. 정확히 무엇 때문에 존스노우가 자신을 숨길 수 있는 근처 나뭇가지가 아닌 자기 몸을 노출시키는 토마토 지지대 위에 앉아 있기로 결심했는지는 모르지만, 바람의 방향과 질을 가늠해서 떠날 날을 고르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호시탐탐 자기 밥통을 노리는 베이비소울을 비롯해서 다른 침입자들을 더 빨리 쫓아내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매번 먼 곳에서 출동하자니 힘이 부치거나, 자기가 근처에 있다는 걸 알림으로써 적의 침입을 애초에 방지하려는 목적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철새여행에서 벌여야 할 수많은 전투에 대비하여 지금부터 매일매일 작은 싸움으로 몸을 단련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열길 물속보다 더 깊은 것이 1센티미터 벌새속이라니...
존스노우가 떠나도 베이비소울은 남을 것이다. 그러나 베이비소울도 얼마 후 떠나겠지. 곧 그런 날이 온다 하더라도 지금은 양쪽 창문을 통해 '우 솔 좌 존' 하면서 식사할 수 있는 아침의 행복을, 그냥 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