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적대적일 필요는 없다.
어느샌가 우리는 진보니 보수니 하는 말로 사람들을 나누게 된 것 같다. 반공이 보수가 되고 민주화운동이 진보가 된 면이 없지 않고, 그 결과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단순히 본인의 경험으로 스스로를 보수나 진보로 정의짓고 시간이 흘러 어느새 처음에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 다만 그 두 추상적 단어만이 남아 서로를 공격하게 된 것 같다. 싸우다보니 왜 싸우고 있는지 잊어버린 경우는 우리 개인의 삶이나 사회적 현상 모두에 있어서 매우 많이 존재한다.
공산주의자들이 자본주의자들을 부르던 말은 '부르주아' 도 있지만, '반동' 이라는 말도 있다. 여기서 '반동' 은 영어로 Reactionary, 즉 상황에 따라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주어진 상황을 상수로 생각하고 스스로를 변화시켜 시류에 적응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 말은 딱히 긍정적인말은 아니지만, 딱히 부정적인 말도 아니다. 하지만 왕정 및 전체주의시대하에서, "왕정이나 전체주의는 어쩔수 없으니" 그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남거나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은 그 사회를 민주주의로 진행시키는데 있어서 방해가되니, '수구반동'적이라는 말로 공격한 것이다. 공산당도 결과가 독재라 그렇지 기본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한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자신과 세상을 볼 때 '세상' 은 바뀌지 않으니 '내' 가 바뀌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보수적인 사람들이 보는 세상은 '변하지 않는 것' 이므로, 그들은 스스로 노력해 스스로 시대에 적응하려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본인에 노력에 의하지 않은 이익을 혐오하고, 정부의 지원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에 대해 적대적이고, 정부에 의해 주도되는 평등의 조정에 굉장한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나는 열심히 해서 얻은 것을 왜 저사람은 환경이 불우하다고 받아가는가". 자연스럽게 보수주의자들은 '자유' 에대한 집착이 크게 된다. 하지만 보수주의자들의 자유는 공리적 자유라기 보다는 개인의 자유에 가깝기 때문에 이들은 같은 자본주의 안에서도 '정글자본주의' 를 부르짖게 되는 것이다. 공부를 열심히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할수록 '개인'의 자유를 더욱 갈망하기 마련이다. 나는 저 규제나 법만 없으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데 세상이 그걸 막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약육강식의 세계 (정글자본주의) 에서는 규칙이 없으면 없을수록 강자에게 유리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보수의 '자유' 이다.
반면, 진보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내' 가 아니라 '세상' 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세상' 에 문제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으므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제도로서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의 불공정이 심하거나 부패가 심화될 때 공산주의든 사회주의든 진보주의자들이 득세하게 된다. 진보의 '자유' 는 '조절된 공정' 에 의한 자유이다. 조절된 공정은 세율이나 사회복지로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강자들은 충분히 강하니 약자가 극단으로 몰리지 않고 않고 최소한 맞서 싸울 수 있는 사회를 목표로 한다. 따라서 여전히 강자는 강자이고 약자는 약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며 변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강자가 악이고 약자가 선인 것은 아니다. 절대적인 수로 보면 강자는 소수이고, 약자가 대다수이므로 당연히 약자들 중에 악한 사람들이 훨씬 많기 마련이다. 이것은 인구구조상 문제이므로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인권을 남용하고 경제적 처지가 좋지 않은 것을 이유로 선한 약자행세를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확률적으로 더 많이 보이는 주변의 눈꼴시린 약자들이 너무 많은데, 그들을 사회가 보호해주니 이에 반발심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들이 보수화되는 많은 경우가 이런 진보적 사회시스템의 부작용 때문인것은 부정할 수 없다.
진보가 보는 '세상' 과 보수가 보는 '세상' 은 모두 같은 세상이다. 다만 '나' 를 바꿀 것인지 '세상' 을 바꿀것인지의 차이인데, 내가 살아오면서 본 '나' 와 '세상' 은 모두 변화하는 대상이었다. 그런데 나는 한 번에 한 가지 밖엔 못한다. '나' 를 바꿀 때는 '세상' 을 고정시켜야 하고, '세상' 을 바꾸고 싶을 때는 '나' 를 바꾸기 힘들다. 그래서 진보와 보수는 치열하게 스스로의 존재의미를 증명해야 하며 사회를 지탱하는 두 다리와 같이 번갈아가며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 우리 사회를 계속 전진시켜야 하는 것이다.
우리사회가 지금 진보를 필요로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진보를 선택할 것이고, 지금 보수를 필요로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보수를 선택할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이고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합의를 이룩할 수 있는 장치이다. 더 좋은게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건 아직 없다. 따라서 진보와 보수는 치열하게 싸워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치열하게 싸워야한다고 해서 규칙도 무시하고 힘과 선동만으로 상대를 제압하려고 하면 민주주의는 파괴되고 파시스트들의 세상이 탄생하게 됨을 우리는 무솔리니와 히틀러에게서 불과 80년전에 배웠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옳다고 믿는 최소한의 규칙이 곧 '법' 이다. 그러한 법을 무시하며 싸우는 것은 정상적인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아닌 것이다.
나는 개인의 노력을 중요시하지만, 그러나 부잣집 도련님이 서울대를 들어가는 것과 가난한 집 도련님이 서울대를 들어가는 것의 노력이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상식이 파괴되면 귀족국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고, 내가보기에 이런 상식이 점차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