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에 관대해진 국가는 쇠퇴한다.
한국 조직과 미국 조직에서 일 해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책임과 면책의 확실한 구분과 그 적용이었다. 미국 조직에서는 내부고발이라 할 지라도 면책은 확실히 되는 반면에 한국의 내부고발은 면책은 커녕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는 일이 부지기수, 아니 거의 전부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도 내부고발자에 대한 차별이 당연히 존재하지만, 표면적으로 차별이 드러날 경우 역시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물게 된다. 우리나라는? 그딴 것 없다. 우리나라의 손해배상제도는 완벽히 불법행위를 저지른 사람에게 유리하게 되어있다.
이런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뀔 수 있는 이유는 매우 단순하게도 조직의 투명성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투명성이 낮으니 말바꾸기나 조직적 증거인멸, 그리고 피해자에대한 2차가해가 매우 쉬워지기 마련이다. 한국 사회는 예나 지금이나 투명성이 매우 낮은 편이다. 조선시대에도 공무나 공직자의 대화는 모두 기록이 되었는데, 현대의 한국사회가 장관들이 모여 이야기를 했는데도 정상적인 기록이 없다는 것은 참 부끄러운 일 이다.
투명성 이야기를 하면 기밀유지 같은 헛소리들을 하는데, 관련 사실을 발표하지 않을 경우 기한을 정해놓고 기밀로 취급하는 것이 보통이다. 미국 케네디 암살사건 조사내역을 몇십년간 기밀로 유지한다든지 하는 것 처럼. 저렇게 단순한 '기밀' 이니까 '불투명' 해야 한다는 헛소리는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 내가 보기에는 한국사회는 매우 후퇴했으며, 별로 더 이상 나아질 것 같지도 않다. 내란범 사무실이 기밀기관이라고 수사를 못하는게 무슨 국가인가. 그냥 내란 하라고 등떠미는 것이지. 부지런하지 않은 대륙법체계 국가는 반드시 망하게 되어있다.
미국은 치안도 그저그렇고,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의료복지도 그저 그렇다. 정치는 슈퍼팩 도입 후 빠르게 금권화가 진행되었고, 가짜뉴스나 극우선동이 판을 치고 있다. 나라가 그렇게 훌륭한 나라는 아니다. 하지만 정보투명성에 대해서는 내가 생각하기에 단연코 세계 1등이라고 할 수 있다. 청교도적 가치관에서 시작한 문화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은 '거짓말' 에 대해 거의 무관용에 가까운 자세를 가지고 있으며, 실패는 용서해도 거짓말은 절대 용서 하지 않아왔다. 닉슨 전 대통령은 워터게이트로 하야하면서 '거짓말' 때문에 하야했지, 도청 그 자체로 하야한 것이 아니었다.
거짓말과 신용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금융사기 피해에 대해 천문학적인 벌금을 부과하며 피해자 보상액도 엄청나다. 전부 다 사기로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결리면 인생이 끝장나니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미국 국세청에 세금보고를 하면 '일단 믿어준다' 라는 주의를 느낄 수 있다. 세금보고서에 당신 마음대로 적어 낼 수 있다. 거짓말해서 세금을 적게 내거나 돌려받아도 일단 다 믿어준다. 감사에 걸릴확률은 1~3% 정도이며, 연수입이 1000만달러가 넘어가면 조금 올라가는 수준이다. 하지만 감사에 걸리면, 당신의 인생은 끝장이다. 바로 세금사기로 기소되고 인생이 파탄난다. 한국은? 세금 뻥쳐도 다 봐주는 편이며 기소까지는 가지도 않는다. 오히려 안낸놈이 좀 덜내면 안되냐고 딜을 친다. 심지어 신고를 안해도, 세무서에서 직접 친절히 계산까지 해서 갖다바쳐주는데 뭐하러 신고를 하나. 한국은 이렇게 신뢰를 져버려도, 아주 관대하다. 사기죄 또한 아주 관대하게 처벌한다.
아무리 미국이 엉망진창이었어도, 이런 점 하나 때문에 사회가 유지되고 좋은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보다는 더 득세하는 사회였었던 것이다. 내가 경험한 한국사회는 정 반대였다. 꼼수부리고, 법률을 악용하고 주변 사람들을 거짓말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득세해왔고, 아예 이제는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그런 사회가 되었다. 최근 장관들이나 검찰총장들을 보니, 아 이런 악당들만 저런 자리에 갈 수 있구나 라는것을 느꼈는데, 결국 그 배경에는 과정이야 어쨌든 무슨짓을 해서라도 그 자리에 올라야 한다는 생각들이 팽배하구나, 신뢰나 원칙은 다 쌈싸먹었구나 라는 생각들이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미국도 거짓말과 꼼수가 판을 치는 '대안우파' 의 세상이 되어 미국이 최강대국으로서 유지될 수 있는 두 가지조건인 '투명성과 신뢰' 가 사라져가고 있다. 한국은 애시당초 '투명성과 신뢰' 가 없었고, 그것좀 만들려고 하면 사방에서 공격하고 깎아내려 오히려 후퇴해버렸다. 게다가 한국의 우파는 미국의 '대안우파' 정도의 최소한의 합리성조차 없는 진정한 파시스트들이 되어버린 듯 하다. 미래가 없다.
나는 2012년을 잊을 수 없다. 박근혜가 국회의원 정도 하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에 앉히는지 이해할 수 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건 필리핀보다도 10년이나 앞선 것이다. 독재자 마르코스의 아들이 대통령이 된 것이 2022년이다.
나는 내 정치적 지향을 보수로도 보지 않고, 진보로도 보지 않는다. 박정희에 대해서는 유신외에는 나쁘게 보지 않는다. 내가 뽑은 대통령 후보들은 반은 보수고, 반은 진보측이었지만 내가 뽑아서 감옥간 대통령은 없었다. 2008년에도 이명박을 뽑으려고 하다가, 투표일 얼마전에 BBK 사건에서 이명박씨가 거짓말한 것을 알고 투표하지 않았고, 거짓말을 하는데도 대통령에 뽑히는 걸 보고 좌절했던 기억이 있다. 어떻게, 거짓말하는 사람들 대통령으로 뽑나. 그리고, 어떻게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뽑나.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독재자의 자식을 대통령으로 뽑는건 그냥 그 사회의 민주적의식이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간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한국은 이제 상식적인 사람들이 살기가 너무 어렵다. 미국도 어려워지고 있다. 전쟁의 참혹함을 할아버지들과 함께 묻어버린 21세기의 극우 또라이들이 정권을 잡고 있다. 나는 당신들을 위해 십원한장, 단 1밀리미터의 피도 쓰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