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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삼정의 문란

자산보유자의 보호비를 노동자가 내 주는 나라

by 제이니

조세정의가 무너진 뒤의 조선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좋은말은 다 떠들던 유교경전을 붙잡고 살던 조선의 사대부들은 온갖 꼼수를 부려 세금을 포탈하고 국가의 조세체계를 무너뜨렸다. 사실 세종대왕의 최대업적은 당시에는 한글이라기보다는 조세체계를 제대로 개혁한 것인데, 임진왜란 이후 결국 사대부라 쓰고 토호라고 읽는자들이 삼정의 문란으로 조세제대롤 제대로 이용해먹고, 국가 재정을 최약체로 만들어 동아시아에서 맨날 처맞는 약체국가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물론 생각있는 사대부들은 대동법을 도입해 폐혜를 줄이려고 노력은 했으나, 시대의 한계인지 기득권인 토호들의 공작인지는 논란이 있지만 결국 제대로 돌아가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역사적으로 국가가 국민에게 부과하는 세금은 거의 "자산보유세" 가 주 였고, 소득세는 20세기나 들어와서 보편화된 세금이다. 이전에는 농사말곤 할게 없으니 전세니 토지세니 하는 방식으로 걷었지만, 상공업의 소득세는 파악하기 쉽지 않으니 걷지도 못했고 결국 세금도 안내는 놈들인 사농"공상" 식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 외 세금이라봐야 인두세, 창문세, 수염세 뭐 이딴 실제로 존재하는 자산? 같은 것들에 부과했던 것이다.


사실 이 세금들은 당연한 세금인데, 국가가 존재하지 못할 경우 자산 보유자들의 자산은 빼앗기거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종의 보호비 같은 성격인데, 결코 비싼 것이 아니며 내야할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의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100억짜리 부동산이 있는데, 북한이 쳐들어와 남한을 점령하면 그 부동산은 김정은 것이지 내 것이 아니게 되니까. 당연히 세금을 내서 나라를 지켜야지.


반면 소득세는 직업이 다양해지고 산업이 다양해지면서 국가가 행정서비스를 해야하기도 하고, 인프라도 확충해야 하니 걷어들이게 된 세금이다. 뭐 그냥 돈 걷고싶어서 걷는게 아니라, 이것도 필요에 의해 걷는 것인데, 이것은 보호비같은 성격이 아니라 일종의 서비스료에 가까운 것이다. 국가가 인프라를 제공할테니 네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면 나누자, 그럼 그 돈으로 다시 인프라를 확충해줄께. 이런 서비스적인 계약에 가깝다. 왜냐하면 근로소득 노동자의 경우에는 그 소득활동을 어차피 비슷한 인프라를 제공하는 다른 나라가 있다면 거기서 해도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전쟁이 나도 노동자는 타국에 가서 기술을 팔면 되는 것이다.


내지 않으면 재산을 잃는 보호비인 재산세와 인프라에 대한 서비스계약인 소득세는 이렇게 명확히 다르다. 그러면 국가는 어디에 더 높은 세율과 의무를 지워야 할까? 당연히 보호비인 재산세이다. 국가가 없어도 노동은 존재하지만, 사업과 재산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오래 발전한 나라들에서는 재산세에 상당히 고율을 적용하고, 시세평가도 빡세게 하는 편이다. 자본주의의 끝판왕 미국의 주택 재산세는 예외조항 거의 없이 카운티별로 대부분 연 1.2~1.8% 정도를 부과한다. 미국의 어느 지역 가구 평균 연소득이 20만달러 (약 2억8천만원) 인 동네라면 중산층 평균 집값은 80 만달러가 거의 넘지 않는데, 80만달러짜리 집을 사면 매년 재산세가 1500만원가까이 나오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100억짜리 집도 연 재산세가 5천만원도 안나오지만, 미국에서 100억짜리 집을 사면 재산세가 연 2억가까이 나오게 된다. 물론 주마다 다르지만, 대개 저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그나마 한국은 공시지가라는 게으른 행정 때문에 과표가 현실과 괴리되어있는 경우가 많다. 이게 특히 심한게 나대지 같은 토지 인데. 시장가는 10억인데 공시지가는 1억인 황당한 경우도 많다. 10억짜리를 보유하는데 재산세는 1억에 적용해서 매년 50만원도 내지 않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럴 경우 토지 보유자는 토지로 뭘 할 필요가 없이 그냥 계속 놀려도 상관이 없게 된다. 그럼 그 토지로 뭔가 유용한 일을 하려는 사람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보유비용이 낮으니 토지보유자의 협상력이 훨씬 높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국토의 효율적 발전이 가능할 수가 없다.


그래서 재산세는 할수 있는한 최대로 강화해야한다. 필요없는 부동산이 짐이 되어야, 그 부동산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가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것이다. 보유비용이 낮아서 그냥 자자손손 물려줄 생각을 하고, 얻어걸린 호구 하나 잡아서 팔자고치려고 하는 사람만 잔뜩 생기는 경우를 막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어디 취직해서 월급을 300만원쯤 받는다고 하면, 이 300만원중에 국가가 서비스해준 인프라를 이용해서 번 부분이 한 50만원이라고 하자. 그럼 나의 노동력 250만원과 국가인프라를 이용한 부분 50만원 해서 세금으로 50만원을 낸다고 생각하면 그게 소득세라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좀 사업을 크게 해서 월 수입이 3억원이라고 하자, 그러면 이 사람의 직접노동부분과 사회인프라이용부분을 나누면 얼마로 나누면 될까? 내 생각에는 직접노동부분이 아무리 높아봐야 3000만원이고, 사회인프라 이용부분이 2억7천만원정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직원들도 사회가 제공한 것이고, 사업관련 법률이나 소비시장도 모두 사회가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 국가가 2억7천만원을 가져가도 할 말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열심히 사업을 안하겠지, 그러니 소득세는 적당한 누진세로 적용하는 것이다. 무슨 돈 많이 버니까 벌주는게 아니라, 원래 경제적으로 그게 맞는 것이다. 사실 월급 300만원받으면 세금 50만원 안낸다. 그러니 적게버는 사람은 노동의욕을 고취하도록 세금을 '덜' 받고, 많이 버는 사람도 더 많이 벌라고 실제로 받아야 할 수준의 인프라 이용료를 덜 받는 것이다. 1900년대 초반 미국 소득세 최고구간은 70% 이상이었다.



"한국의 조세제도는 공정한가"


한국은 사실 전쟁의 위험에 아주 가까이 있는 나라인데, 전쟁이 나서 누구 주도로 통일이 되든 패전국의 자산보유자들은 알그지가 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북이 남을 점령하면 당연히 김정은이 남한 재산권을 보호해줄리가 없다. 그러면 재산보유자들이 기를 쓰고 국방비를 더 내서 재산을 지켜야 하는데, 한국의 재산세 수준은 최저수준에 가깝다. 재산 보호의 실익은 가지면서 보호비는 상대적으로 보호가 덜 필요한 노동자의 소득세에 의존하는 기형적인 국가인 것이다. 게다가 낮은 재산세로인한 고가의 자산보유가 가능하니 자산가격 거품에 일조하고, 이런 높은 자산가격으로 촉발된 주거비나 임대료 상승으로 근로소득자와 자영업자들의 가처분소득이 낮아져 경제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조세제도는 도대체 어떻게 땜방을 해온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이라 할 이야기는 너무나 많지만, 기본적으로 재산세/소득세의 지나친 역전이야말로 한국 조세제도의 가장큰 문제점이다. 거의 근본없는 조세제도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이며, 조세와 경제주체간의 이해관계가 역행하는 황당한 시스템이므로 전반적으로 뜯어고치지 않으면 조선시대 삼정의 문란이 재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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