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과 비영리재단의 변화를 향한 파트너십, 그 역사를 따라가다
미국 기업의 자선행위는 해를 거듭하며 그 형태를 바꾸어왔다. 기업은 이익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생긴 수익의 일부를 자선단체에 나누어 주는 것에서 이제는 직접적으로 사회문제 및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로 변모하는 과정 중에 있다. 비영리기구는 어떤가. 기업으로부터 후원을 받는 수혜자의 입장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스스로 이익을 실현하고 기업과 상생하며 더 큰 임팩트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업은 오랫동안 사회문제와 환경문제를 야기하는 주범으로 인식되어 왔고 비영리기구와 정부는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 집단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는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기업과 비영리기구가 하는 일의 경계는 점점 허물어지고 있다. 사회문제 해결을 사명으로 삼는 기업이 늘어나고,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 비영리기구 역시 점점 늘어나고 있다. 기업과 비영리기구는 파트너십을 맺고 효과적으로 또 규모 있게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익과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세상을 이로운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사명과 이익을 모두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기업, 친환경기업과 같은 방식은 비즈니스라고 부르기도 비영리기구라 부르기도 애매하다. 이러한 하이브리드 기업은 기업과 비영리의 장점만을 살려 세상을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낫게 만들고 있다. 기업과 비영리기구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있다.
형태의 발전
누구나 존 록펠러와 앤드류 카네기에 대해서 들어봤을 것이다. 그들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의 부를 사회에 기부한 비즈니스 리더이다. 카네기는 자신의 저서 "The Gospel Of Wealth"에서 부자는 도덕적으로 사회에 부를 환원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1935년 미국 세법이 통과된 이래로 본격적으로 기업은 합법적인 경로를 통해 이익의 일부를 자선단체에 기부해왔다. 기업 자신이 풀지 못하는, 혹은 풀기 까다로운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는 비영리기구에게 수익의 일부를 기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기부를 통해 세금 감면의 혜택까지 얻을 수 있으니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오랫동안 기업과 비영리기구의 관계는 기업이 비영리기구에 돈을 주는 일방적인 관계로서만 설명 가능했다. 비영리기구는 그 돈을 통해 사회 약자를 도와주고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물론 그들의 관계가 부모가 자식에게 돈을 주듯이 사랑으로 맺어진 것은 아니었다. 비영리기구는 기업이 문제를 만들어 내는 악의 축이라고 생각해 그들은 비난했고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소비자로부터 외면당했다. 비영리기구와 기업은 물과 기름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 만을 다해왔다.
미국의 기업 기부는 특히 1960년대 규모가 큰 기업들 위주로 재단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빠르게 증가했다. 기부의 형태 역시 해가 갈수록 다양해졌다. 현금에서 시작해 주식, 제품, 서비스 등이 기부에 포함되기 시작했고 기업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통해 기부활동에 참여했다. 기업 기부형태의 발전은 멈추지 않았다. 1980년이 되면서 좀 더 다양한 형태를 고민하기 시작한 몇몇 기업과 비영리기구는 스폰서십이라는 특별한 형태의 제휴를 시작했다. 기업은 특정 비영리기구의 캠페인이나 갈라 디너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비영리기구의 펀드라이징 활동에 참여했다. 또한, 공정무역이나 유기농, 1% for the planet과 같은 환경단체의 로고를 기업의 제품에 사용함으로써 제품 판매에 따른 일정 수익을 비영리기구에 기부하는 사회적 대의 마케팅 (cause related marketing)도 시작되었다. 이러한 마케팅을 통해 기업은 자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일 수 있었고, 비영리기구는 로고 라이센싱과 같은 방식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이제 두 집단은 일방적인 기부를 넘어 서로가 윈윈 할 수 있는 마케팅을 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대의 마케팅은 2016년 그 액수가 $2 billion에 달했다. (IEG,2016)
비영리기구와 기업관계의 발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 둘은 마케팅을 넘어 상생적 파트너십의 단계로 넘어갔다. 기업은 자신의 기업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특정 사회문제를 비영리기구의 힘을 빌어 해결함과 동시에 비용 절감의 효과를 누리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맥도널드와 환경 방위(Environmental Defense Fund Partnership with McDonalds)의 파트너십이다. 1980년대 초, 맥도널드의 일회용 쓰레기가 환경오염을 야기하고 무분별한 자원을 사용한다고 생각한 환경 방위는 맥도널드에 파트너십을 제안했다. 환경 방위는 재생용지나, 생분해 가능한 용기를 사용해 맥도널드가 좀 더 친환경적인 패키징 방식을 취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이를 통해 맥도널드는 15만 톤의 쓰레기 절감 효과를 거두었고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매 년 600만 달러의 비용을 절감한 셈이 되었다. 이런 맥도널드와 환경 방위의 상생적 파트너십과 같은 예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990년도에 들어서는 사회문제나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사명이 된 하이브리드형 기업 파타고니아, 더 바디샵과 같은 사회적 기업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때때로 비영리기구와 일반 기업의 법적 지위를 넘나들며 오로지 문제 해결과 지속 가능한 이익 창출에 관점을 맞추었다.
2000년도가 들어서 IT의 붐이 시작되고 빠르게 성장한 테크 기업들은 기업의 성장 단계부터 자선활동을 기업의 전략으로 채택하고 실현했다. 구글이나 세일즈포스와 같은 기업은 기업재단을 만들어 기업에서 창출하는 영업 이익의 1%를 재단에 기부했고, 재단은 이를 활용해 다양한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기업의 소속으로서 재단의 일을 병행했다. 구글은 인공지능 등과 같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없어질 저임금 노동자들을 걱정했다. 재단의 기부를 통해 저임금 노동자들이 새로운 기술 습득을 통해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교육시키는 일에 몸담았다. (Google Foundation Economic Opportunity) 세일즈포스의 창업자 마크 베니오프는 자사의 소프트웨어를 자선단체들이 무료로 사용해 더 효율적인 근무 환경을 제공하는데 일조했다. 테크 기업에 종사하는 많은 밀레니얼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비단 돈을 버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세상에 좋은 일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가 다니는 회사에서 사회에 부정적인 임팩트를 미치는 일에 적극적으로 반대의견을 내고 앞다투어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일에 참여한다. 2030년이 되면 전체 미국 노동자 70%가 밀레니얼 세대로 교체된다고 한다. 돈과 좋은 일 두 가지 토끼를 잡고자 하는 밀레니얼의 방식은 분명 기업의 사회적 임팩트 활동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마이클 포터는 2000년도 초반 기업의 공유가치 창출(CSV)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는 기업이 경제, 사회적 조건을 개선시키면서 동시에 비즈니스 핵심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업의 정책 및 경영활동을 의미한다. 기업이 이윤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생겨나는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더욱더 발전된 가치를 형성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기업과 사회 모두에 이익이 되는 가치이다. 대표적으로 스타벅스를 예로 들 수 있다. 스타벅스는 원두를 생산하는 농부들의 작업환경을 개선해주고 그들에게 더 나은 설비를 공급하고 교육함으로써 여러 가지 긍정적 효과를 거두었다. 유기농 전환 등을 통해 작업환경이 개선되면 농부와 그 가족의 건강은 더 나아지고 결과적으로 삶의 질이 나아지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기술 교육과 설비 공급을 통해 커피의 생산량이 늘어나고 원두의 질이 향상되는 두 가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스타벅스와 농부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환경이 마련되는 것이다. 나아가 이 과정에서 스타벅스는 커피 생산지 로컬 비영리기구와의 협업을 통해 지역 교육을 강화하고 의료시설 등을 지어주는 등 직원과 그들이 속해있는 공동체의 전체적 복지 향상에도 기여한다.
기업은 더 이상 사회적, 환경적 문제 해결을 비영리단체에만 의존하거나 맡기지 않는다. 공유가치 창출, 사회문제 해결을 수반한 수익창출과 기업활동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기업의 미래 생존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전략으로서 지속 가능한 발전은 그 핵심에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을 포함한 많은 테크 기업들은 멀지 않은 미래에 그들의 전기 사용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할 것을 약속했다. 대외적으로는 이러한 결정은 극심하게 진행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에 대한 설루션으로 적합해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것만이 전부일까? 거대 테크 기업이 운영하는 데이터 센터의 전기량은 한 나라 소도시의 1년 전기 사용량과 맞먹을 정도로 그 양이 많다. 기업에게 있어서 전기를 제때 확보하지 못한다는 것은 미래 기업활동을 하는데있엄청난 위험 요소이다. 그런 그들에게 에너지 확보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이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를 값싼 가격에 대량으로 확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거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은 소규모로 재생에너지를 구입할 때 치러야 하는 높은 비용과 확보 면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단체가 REBA이다. REBA는 미국의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를 보다 싸고 다량으로 공급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이처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전략으로 세우고 단순한 기부에서 스스로 변화가 되기로 결정한 많은 기업의 흐름은 변화의 속도와 규모를 바꾸고 있다. 비영리기구는 펀딩을 받아 홀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실질적으로 규모 있게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는 게 더 크고 효율적으로 임팩트는 만들어 낼 수 있다. 기업은 자본과 규모라는 힘이 있고, 비영리기구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명이 중심인 집단이다. 이 둘이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상생하는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사회문제를 보다 규모 있고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훌륭한 케이스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다수의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비용으로 인식하고 있다. 또한, 비영리기구는 기업으로부터 기부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사회적 환경적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비단 남의 기업이 저지른 일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비영리기구에게 문제의 해결을 떠맡겨서도 안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일부의 자금력을 동원해 표면적으로 해결하는 자세는 이제 지양해야 한다. 대신 제품을 만드는 초기 과정에서부터 시작해 사회에 미칠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임팩트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 기업은 생산 과정에서부터 공급과정 전체에 관여되는 사람이 비단 나와 내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생각뿐만 아니라 미래세대가 사는 그 세상까지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비영리단체, 정부와의 협업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수단으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비영리기구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비단 눈앞에 보이는 문제만을 해결하는 것이 아닌 보다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규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때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비단 비영리기구에 자본을 제공해 주는 집단으로서가 아닌,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해 협업해야 하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 비영리기구는 그들의 사명을 다하기 위한 노력을 할 때 필요하다면, 그 문제를 일으키는 기업의 윤리적이고 문제시되는 부분을 정확하게 진단해 해결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두 집단의 하는 일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불 분명해질수록, 더 많은 하이브리드 기업, 하이브리드 비영리기구가 나올 것이고, 세상의 문제는 줄어들고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되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