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덕

by 배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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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원, 구립여성교실 등에서 옷본 그리기와 재봉질을 배웠다.

진짜 초보자로 시작할 때에는 선생님의 설명을 들어도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더니만, 이제는 대략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본적인 디자인의 바지 같은 경우에는 옷본 그리기에서 재단, 재봉까지 일련의 과정을 무난히 해낼 수 있게 되었다.


막상 내가 배웠으나 내 바지를 만들어 본 적은 없다. 그에 비해 어머니는 벌써 4벌가량의 바지를 만드셨는데 정말 과장이 아니라 내 덕분이다.


집에는 재봉틀이 하나 있다. 바짓단을 줄이거나 약간의 수선이 필요한 옷이 있을 경우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는데 어머니의 결혼 혼수로 우리 집에 들어온 이 재봉틀은 낡고 낡아서 살짝 맛이 가버렸다. 내가 이 재봉틀을 사용해볼라 치면 온갖 오작동을 일으키며 그야말로 고물 행세를 하는데 희한하게도 어머니가 사용하실 때에는 정상으로 작동을 한다. 재봉틀이 사람 가려가며 작동을 하니 속으로 이 재봉틀, 제 주인을 알아보는 안면인식 시스템이 장착된 것은 아닐까, 하고 의심이 들 정도이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말인즉슨, 나는 이 재봉틀을 사용하질 못한다.




사실 옷 만들기의 꽃은 재봉질이 아닐까 싶다. 옷본 그리기 작업은 할만한 작업이고, 천에 옷본을 옮겨 그리는 작업은 노동이며, 재단하는 가위질은 긴장감이 감도는 작업이다. 이런 과정들은 더디고 인내심이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고 말이다.

비해서 재봉질은 재미있다. 원하는 곳에 원하는 대로 드르륵 박히는 소리와 모양새가 재빠르고도 경쾌해서 앞선 여러 과정에서 쌓였던 스트레스와 지루함이 타파되는 기분이다. 그래서 내 경우엔 옷 만들기 과정 중에서 재봉질이 가장 재미있다.




어머니는 바지가 필요하시다고, 바지를 만들어야겠으니 내게 옷본을 그려내라고 종용하신다.

맞춤재단으로 구입하신 바지가 있으신데 그 바지와 똑같이 만들어질 수 있는 옷본을 그려내라고 말씀이시다. 결국 나는 그 맞춤 바지를 일일이 치수를 잰 끝에 바지 패턴을 그려냈다. 천에 옷본을 그려내고 재단까지, 마땅히 넓은 테이블이 없어서 방바닥에서 허리를 굽혀가며 작업했더니 몸이 찌뿌둥하고 영 기분이 별로였다. 이렇게 인내의 시간을 보낸 후, 재미있는 재봉질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안면인식 기능이 있는(?) 재봉틀은 나를 거부한다. 재봉질은 어머니가 하셔야 했다.



재단된 천을 드르륵 박기만 해서 옷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실상 박는 순서와 부위마다 박는 방식이 살짝씩 다른 요령이 필요하다. 천조각들을 온전한 바지로 만드는 것이 성공하려면 내가 어머니 옆에서 알려드려야만 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가족끼리 뭣좀 가르치려면 정말 빈정 상하는 일이 많다.


왜 있지 않은가? 언니 오빠에게 뭔가를 배우다가 통박을 당하거나 아니면 동생을 가르치다가 통박을 주거나.... 너무 친한 사이에서는 허물이 없는 나머지 답답함을 별생각 없이 표출하다가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남편이 아내에게 주행 운전을 가르쳐주다가 부부싸움으로 번지기 일쑤인.... 뭐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지 않던가.


다른 사람들에겐 차분히 잘 알려주는데 너무 친한 어머니이시다 보니 괜히 불친절하게 툭툭 내뱉듯이 말하게 되더라.

거기에 어머니가 약간 헛갈려하시면 왜 그리 답답하던지.... 나는 질식사할 것 같았다.

성 내면 안돼, 친절해지자, 어머니잖아!!라는 효심을 발휘하여 살아남았다.


감정상의 고비가 몇 번 있었으나(?) 그래도 순조롭게 재봉질이 진행되었다.


재봉틀이 어머니를 잘 따랐다. 다만 좀 버벅거려서 시간이 좀 더 걸린 것 같았다. 재봉을 시작한 지 3시간 만에 바지가 완성되었다.

어머니는 완성된 바지를 입어보시고는 만족하시는 편이셨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기뻤다.

다 끝났다는 후련함과 함께 나는 한 숨을 쉬며 한 마디를 던졌다.


"아우~~ 힘들었다~~"


그 말을 들으신 어머니께서 까칠하게 말씀하신다.


"니가 뭘 해서 힘들었다니? 재봉질은 내가 했는데."


이건 너무하지 않던가. 나는 좀 황당해서 말을 못 하다가 웃고 말았다.


"어머니, 3시간 동안 내가 뭘 했게요?"


내가 컥컥 웃으며 묻자, 어머니도 머쓱해하시다가 큭큭 웃으신다. 그러곤 별말씀을 안 하신다.


나는 볼멘소리를 했다.


"내가 차비랑 시간 들여서 내가 왔다 갔다 배워왔는데, 내 옷은 안 만들고 어머니 옷만 만들고."


어머니 침묵하신다.


"내가 세 시간을 옆에서 봐드리고 알려드렸는데.... 나보고 뭘 했냐고요?"


어머니 다시 큭큭 웃으신다. 웃으시니 이 때다, 싶어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여쭸다.


"바지 완성은 누구 덕?"


"고생했다. 니 덕."


생색도 내고, 인정도 받고,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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