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인데, 예전에 우리 어머니는 수술을 받게 되셨었다.
척추 뼈가 신경을 눌러서 다리가 저리고 아프셔서 오래 걷지 못하시며 여러모로 괴로워하셨었다.
죽을병은 아닌 것 같고 현대의학이 얼마나 발달되던가, 큰 수술이긴 하지만 위험한 수술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머니께서도 내게 당신이 입원해 있는 동안 집안 잘 쓸고 닦고 밥 잘해먹고 있으라고, 병원이 머니까 굳이 면회 올 일 없다고 가볍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 당시 매일매일이 별다를 것 없었는데 그즈음 어머니는 너무 바빠지셨다. 원래도 부지런하신 분이 유난히 바빠지셔서 말 붙일 틈도 없었다. 주로 욕실과 부엌에서 뭔가를 늘 하시고 계시더라.
어머니의 입원 전날, 어머니는 그날도 한참 빨래를 하시고 집안을 돌아다니셨다. 그리고 밤이 되자 내 방에 오셔서 양말이며 속옷이며 빨래들을 잔뜩 가져오셔서 개키셨다.
그리고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집 깨끗이 하고 있어. 두꺼운 옷은 다 빨아서 넣어놨다. 반팔 옷들은 여기 있고. 냉장고에 반찬 꺼내먹고 국은 낼 아침에 해놓고 갈 테니까 데워서 먹고 그거 다 먹으면 호박 넣고 된장국 끓여먹어. 호박은 야채실에 사다 놨다. 개 밥 주면서 물 주는 거 잊지 말고 개 냄새 안 나게 오줌 싸면 물로 바로 씻어내 버리고, 오빠 저녁에 들어오면 밥 차려주고, 여름 다가오니까 수건은 자주 빨고, 가끔 삶아주고, 행주도 자주 삶고, 아침이면 꽃밭에 물 주고... 그건 아버지가 하실 꺼지만 가끔 잊으시는 것 같으면 네가 하고..........."
어머니의 당부는 한참 계속되셨다.
나는 갑자기 무서워졌다. 어머니가 영영 떠나실 것처럼, 영원히 안 돌아오실 것처럼 너무나 세세한 것을, 모든 것에 대한 방법을 내게 알려주시는 것이었다.
슬쩍 여쭸다.
"수술이 어렵데요?"
어머니는 당부를 계속하시다가 의외의 질문에 불현듯 정신이 돌아오신 것 같았다.
"수술하다가 신경이라도 잘 못 건드리면, 척추 마비되면........"
끝말을 잇지 못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면서, 아, 어머니가 불안하시구나, 라는 파악이 되었다.
어머니가 당부를 마치고 안방으로 돌아가셨을 때가 밤 11시쯤. 평소보다 늦은 시간까지 깨어계시다가 들어가시더라.
정말 불의의 사고로 수술이 잘 못되기라도 하면?
어머니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신다면?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싱숭생숭하셨겠지만 그런 어머니를 보며 그날 저녁 내 마음이 싱숭생숭 불안 초조하며 영 이상했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 어머니와 아버지는 일찌감치 병원으로 떠나셨고 오빠도 출근했다.
집안엔 나 혼자 밖에 없었다.
집안을 돌아보니 깨끗하고 말끔했다. 냉장고 안에는 각종 밑반찬들이 쌓여있었다.
안방, 마루, 부엌, 마당.. 어디랄 것 없이 청결하고 단정했다.
이 평화와 안정감과 정결함, 따뜻함... 이게 다 어머니의 손길 덕이지...
그런데... 만약 어머니가 안 계신다면?
갑자기 전날 저녁의 싱숭생숭함과 불안 초조함이 상기되면서 다시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행히 어머니의 허리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다. 입원 생활하실 때 문병도 갔다.
나를 본 어머니는 질문 일색이셨다.
"국은 다 먹었니?", "개 밥은 줬고?", "빨래는 자주 하고 있어?", "그건 해 놨니?".....
그날 나는 문병을 갔을 뿐인데 살림살이 일체에 대한 브리핑을 했던 게 기억난다.
영 내가 못 미더우신 모양이다. 자꾸 살림만 물어보셔서 짜증이 좀 생기려 했으나 속으로 '입원 전날과는 다르신 걸 보니 살아계시네. '하는 생각에 외려 기뻐서 무던하게 넘어갔었다.
나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속도 모르시고... 살림 나부랭이만 물어보시고.... 참, 내.
이번 주엔 어두운 소식을 두 가지나 들었다.
지인의 어머니께서 폐가 점점 굳어가는 병에 걸리셨다. 상태로 봐선 5년이면 다 굳어버린다는 의사의 진단이었다. 병명을 모르는 병이긴 한데 해당병에 효험이 있는 약을 처방받고 경과를 지켜봐야 한단다.
지인은 어머니가 늘 기관지 때문에 병원 진료를 받아오셨기 때문에 어쩐지 한 번은 큰 병에 걸리실 것만 같은 예감이었단다. 그런데 이렇게 폐가 굳어가는 병이라니, 어머니의 진단 결과를 막상 듣고 나니 가족 모두가 우울하게 가라앉은 분위기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지인의 어머니는 암에 걸리셨단다. 이미 오래전에 암에 걸리셨는데 전이도 없고 치료를 받으시고 무사히 15년이나 지내셨다. 그런데 이번에 암이 대장 쪽으로 전이가 되셔서 검사를 받으시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쪽 지인의 가족들도 우울하기는 매 마찬가지였다.
이런 소식을 들으니 참 안타깝다.
그리고 10년도 더 지난 어머니의 입원 전날이 떠올랐다.
어머니의 부재를 상상만 해도 우울하고 슬퍼진다.
지인들의 경우엔 그러한 상상에 더하여 그렇게 될 가능성이 덧붙여지니 마음이 얼마나 무거울까.
그들에게는 그저 어머니가 이해할 수 있는 표현방식으로 사랑해드리는 것이 제일 좋은 답이지 싶다.
오늘, '아무렇지도 않았던' 우리 어머니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지인들의 소식을 듣고 나니, 어머니가 '아무렇지 않'게 보이지 않았다.
나도 그녀가 이해할 수 있는 사랑을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