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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기자 Dec 14. 2020

서해 피격공무원 이야기

유족들은 아직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한 남자가 있었다.


40대 중반의 그 남자는 서해 어업지도선에서 일하는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이었다. 팍팍한 월급이지만 중국 불법조업선을 감시하는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며 말수가 적고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하던 소박한 사람. 슬하에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고 배 위에 사느라 자주 얼굴을 보지 못하는 죄책감을 일에 대한 책임감으로 이겨내던 사람. 경제적으로 풍요롭진 않아도 자신을 따라 공무원이 되겠다는 아들의 꿈을 응원하던 사람.


그 사람이 어느 날 실종됐다. 당직근무를 서던 9월 21일 새벽 1시 35분쯤, 교대시간이 한참 남아있었지만 “밑에 내려가서 문서작업 좀 하겠다.”며 자리를 뜬 뒤 돌아오지 않았다. 그 남자의 직책은 1등 항해사로 배 안에선 상당히 높은 위치였으므로 어딜 간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또 당직 근무를 서면 아침을 먹지 않고 점심시간까지 자는 것이 배 위의 일상적인 생활이었기에, 동료 직원들은 그날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그 남자가 사라졌단 사실을 몰랐다.


배 안을 샅샅이 뒤진 동료들은 남자가 보이지 않자 오후 1시쯤 해경에 신고했고, 오후 1시 50분쯤부터 해군과 해경이 수색을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22일 오후 3시 30분쯤, 남자는 북한 해역에서 북한군에게 발견됐다. 북한군은 부유물을 붙잡고 바다 위에 떠있던 남자를 약 6시간 동안 바다 위에 둔 채 신원을 파악하는 등 심문을 했고 밤 9시 40분쯤 남자에게 총을 쏘고 시신을 불태웠다.


여기까지가 우리 군과 수사당국이 파악한 객관적 사실이다. 물론 북한군은 이후 시신을 불태우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적어도 이 부분에 대해선 바다 위에 표류하던 우리 국민을 총살한 북한군의 말 보단 우리 군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실종자가 타고 있던 무궁화 10호

하지만 이후 국방부는 실종자가 월북 시도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해경은 이 발표를 그대로 인용해 월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브리핑을 열었다.


이 글에서 지적하고 싶은 건 북한군이 바다에서 표류하던 민간인에게 총을 쐈다는 것이나 시신을 불태웠다는 것, 그동안 군과 정부는 뭘 하고 있었는지 등이 아니다. (물론 이것도 지적해야 할 부분이지만) 이 글에서는 군경이 ‘월북 가능성’이라고 발표하고 결론지은 점에 집중해 이야기하기로 한다.


자, 이제부터 상상을 해보자.

내게 가족이 있다. 아버지일 수도, 동생일 수도, 삼촌일 수도 있다. 그 가족이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북한군 총에 맞아 죽었단다. 억장이 무너질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우리 정부는 내 가족이 월북 시도를 하다 그렇게 됐다고 발표한다. 이제 의지할 수 있는 것도, 어떻게 된 일인지 밝혀질 거란 일말의 기대도 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 된다.


국방부와 해경이 월북 가능성을 말하며 들고 나온 근거는 다음과 같다. 실종자가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는 것. 선상에 슬리퍼를 벗어두고 사라졌다는 것, 배 위에서 생활했기에 당시 조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 평소 도박 빚이 많았다는 것.


월북 가능성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이 근거들이 확실한 사실이어야 한다.


자료화면


1.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


국방부는 남자가 실종된 직후 수색을 하면서, 남자가 타고 있던 배 안의 구명조끼를 전수 조사했다. 정해진 숫자에서 하나가 모자라면 실종자가 입었을 것이라는 추정을 했으리라. 그런데 웬걸, 물품 대장상 29개가 정수인 구명조끼는 배 안에 85개 있었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실종자가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월북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후 구명조끼를 입었다는 걸 어떻게 확인했냐는 질문에는 ‘군사기밀’이라고 답했다.


해경은 국방부 발표가 난 뒤 24일 오후 6시 최초 브리핑을 열었다. 처음 기자들에게 배포된 보도 자료에는 역시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던 점’이 명시돼 있었다. 그런데 본인들도 확실치 않았는지 이내 자료를 수정했고 브리핑에서 구명조끼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달 뒤인 10월 22일 브리핑에서 구명조끼를 다시 언급했다. 수사관들이 국방부를 직접 방문해 군 자료를 봤고, 구명조끼를 입었단 점이 확인됐다는 것. 무슨 자료를 봤느냐는 질문에 해경은 ‘군사기밀’이라고 답했다.


결국 실종자가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는지는 ‘군사기밀’이라는 명목 하에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상상해본다면, 내 가족이 월북자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데 그 근거가 군사기밀이라고 밝히지 않는 군경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려울 것 같다. 실제로 유족들은 수차례 국방부와 해경을 상대로 정보공개 요청을 했지만 거부됐다. 왜? 군사기밀이라서.


'군경에 따르면' 실종자가 벗어놓았다는 선상의 슬리퍼


2. 선상의 슬리퍼?


남자가 사라진 뒤 배 위에 있던 밧줄 사이에 나란히 놓인 슬리퍼가 발견됐다. 그리고 이 사실이 월북 가능성의 근거로 활용됐다.


이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선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우선 그 슬리퍼가 사라진 남자의 것이어야 하고, 남자는 바다에 뛰어들기 전 슬리퍼를 벗고 뛰었다는 근거가 추가로 있어야 한다.


해경은 9월 24일 최초 브리핑을 하면서 슬리퍼가 남자의 것임을 전제하고 월북 가능성의 근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해경은 최초 브리핑이 있었던 9월 24일 이후에 슬리퍼에 대한 유전자 감식을 실시한다. 유전자 감식 결과 슬리퍼에서는 여러 명의 DNA가 검출됐다. 이후 10월 22일 브리핑에서 해경은 배에 있던 동료직원 2명으로부터 사라진 남자가 슬리퍼를 신고 있었던 걸 봤다는 진술을 확보했다며 이 슬리퍼가 남자의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어떤가. 설득력이 있나?

유전자 감식을 하기 전에 남자의 것으로 전제해 놓고 그 후에 유전자 감식을 벌인 점이나, 정작 여러 명의 DNA가 검출되니 이젠 2명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말하는 점이나, 명쾌하게 납득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슬리퍼가 남자의 것이라 치자. 그럼 그 남자가 월북을 위해 슬리퍼를 벗어놓고 뛰어들었다는 건 무엇으로 증명할까? 아니 그보다 앞서, ‘뛰어들었다’라는 의도적 행위는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남자의 키는 180cm. 배의 난간은 120cm로, 남자의 허리정도 오는 높이다. 그것을 뛰어넘으려면 난간을 손으로 짚어야 한다. 그렇다면 난간에 지문이 남아있을 텐데, 지문을 채취해보니 남자의 지문은 검출되지 않았다. 반면 당시 바다는 너울성파도가 있던 상황. 허리정도 높이의 난간이라도 파도에 흔들려 실족했을 경우 충분히 난간 너머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 다수의 뱃사람들 증언이다. 가능성으로만 따져 봐도 어느 쪽으로 단정 짓기 어렵다는 뜻이다.


의도적으로 뛰어들었다는 점도 명백하게 증명하지 못하면서, ‘뛰어들기 전에 슬리퍼를 벗었다.’는 건 당최 어떻게 증명을 했기에 “선상에 슬리퍼를 벗어놓고 뛰어 든 점에 비춰 볼 때 월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발표할 수 있는 건지,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군경이 수색에 활용한 표류예측시스템 자료. 위에 표시된 선은 북방한계선(NLL).


3. 조류 상황을 잘 알았다?


군경은 실종자가 조류 상황을 잘 알았기 때문에 북으로 넘어가기 수월한 조류 때에 맞춰 월북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이 말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실제로 당시 조류가 북으로 넘어가기 수월한 조류였어야 한다.


해군과 해경이 수색에 활용한 국립해양조사원 표류예측시스템 자료를 살펴봤다. 바다 위에서 표류하는 물체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예측하는 자료인데, 21일 새벽을 기점으로 예측해보니 점점 서쪽으로 흘렀다. 북으로는 가기 어려운 조류였던 것.


게다가 연평도 주민들의 말을 들어보니 당시 물살은 홍수 났을 때의 한강 물살정도였다고 한다. 한 주민은 “박태환이 뛰어들어도 절대 북으로 거슬러 갈 수가 없는 물살”이었다며 코웃음을 쳤다.


무엇보다 그 남자는 1항해사였다. 배 안에서 1항해사는 선장 다음의 위치. 막말로 월북할 목적이었다면 “나 몸이 좀 안 좋아서 육지에 있는 보건소에 다녀와야 할 것 같다”등의 적당한 핑계를 둘러댄 뒤 보트를 내려서 북으로 편하게 넘어갈 수도 있는 위치라는 뜻이다. 뭣 하러 그 거센 물살을 거슬러 헤엄쳐서 목숨 걸고 북으로 넘어가야 했을까.


배 안에 남아있던 실종자의 옷

4. 도박 빚이 많았다?


이 부분이 가장 논란이었다. 해경은 스스로 “월북의 직접적 근거라고 확신할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이 부분을 지나치게 상세히 밝혔다. 총 부채 3억 6천만 원 중 인터넷 도박으로 인한 빚이 2억 6,800만 원이며 평소 채무상황 때문에 고통스러워했다는 것.


도박 빚에 의한 고통을 설명하기 위해 이혼경력까지 들췄다. 취재해보니 남자는 채무상황 때문에 이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건 맞았다. 하지만 문자 그대로 그 상황 때문이었지, 그 상황이 부부간 불화를 만든 건 아니었다. 남자는 실종 직전까지도 아내와 자녀들에게 연락하며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았다.


결국 해경의 상세한 도박 빚 발표는 가족들로 하여금 두 번의 상처를 받게 했을 뿐, 월북의 근거를 대지 못했다. 스스로 월북의 직접적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해놓고 월북 가능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생활을 상세히 들춰낸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웠다.


필자가 직접 인터뷰 한 유족. 채널A 뉴스 화면 갈무리.

이렇게 월북 가능성의 근거로 제시된 네 가지 사항은 사실로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거나, 군경 스스로도 월북의 직접적 근거가 아님을 밝힌 것들이다. 이런 근거들에 의한 주장이 설득력을 갖출 리 만무하다.


게다가 위 근거들이 모두 확실한 사실이라고 해도, ‘월북 가능성’과의 개연성이 성립되기 어렵다. 군경의 주장이 성립되려면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대로여야 한다.


'평소 인터넷 도박으로 수억의 빚을 지고 있던 남성은 어느 날 월북을 결심한다. 그 시간대는 보는 눈이 적은 당직근무 중 새벽으로 정하고 “볼 일이 있다.”고 말한 뒤 갑판으로 향한다. 바다에 뛰어들기 전 밧줄 사이에 슬리퍼를 고이 벗어두고 구명조끼를 챙겨 입고 뛰어든다. 그리고 전혀 북으로 넘어가기 수월하지 않은 조류상태이지만 그 물살을 거슬러 약 38시간동안 약 38km를 헤엄쳐 북한군 눈에 띄는 데 성공한다. …'


CCTV도 없고 당시 상황을 목격한 사람도 없는 상황이니 만큼 어떤 이야기가 더 설득력이 있느냐로 사건을 파악할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읽는 사람마다 판단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사건을 긴 시간동안 취재했던 기자로서, ‘월북’이라는 간단한 단어로는 풀리지 않는 의혹이 너무 많이 남아있다.


유족들은 시신이라도 찾을 수 있길 기도했다. 북한군이 불태웠다고 말하면서도 수색을 실시한 정부의 모순적인 행위역시 조금이라도 유족을 위로하기 위함이었을 거라 믿어보면서, 이미 ‘빨갱이’라는 댓글을 달며 가족까지 욕보이는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이겨내면서. 수색상황을 지켜봤고, 기도했다. 하지만 이후의 브리핑에서도 군경은 ‘월북’이라는 단어를 철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확신에 차 월북으로 결론 내렸다.


결국 유족들은 수색중단을 결정했다. 더 이상 의지할 곳도, 희망도 없었기에 체념했다. 그렇다고 시신도 없이 장례를 치를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아직도 진상이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이렇게 장례를 치르면 안 될 것 같다는 게 유족들의 마음이었다.


사건발생 후 100일이 다 돼간다.

유족들은 아직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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