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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경미 Nov 15. 2022

수족관 속 해파리가 되고 싶어

해파리와의 대화

'분명히 여기 어딘데.'

예전에 갔던 기억이라면 이쯤에 있는 게 틀림없다. 떼를 지어 부드럽게 두둥실 떠오르는 모습이 마치 하얀 목련꽃이 흩날리는 것 같은 해파리 수족관 말이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아기자기한 니모 물고기와 푸른 물결을 한가로이 날고 있는 가오리의 유혹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그들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길 몇 분. 몇 개의 터널을 더 지나가서야 저 멀리 살랑살랑 새하얀 쉐폰 드레스를 흔들어 보이는 해파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에겐 야심 찬 계획이 있었다. 다음 생이 있다면 수족관 속 해파리로 태어나는 것이다. 다소 황당한 몽상에 사람들은 의아한 눈초리를 보내곤 했다. '왜?'라고 되물어보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걸 보면 수족관 속 해파리로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아는 사람은 정녕 나 혼자인 것 같다. 

세상을 보다 악착같이 살고자 했던 노력이 빛을 보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내가 사라졌음을 느꼈다. 삶에 대한 집착이 나에 대한 혐오로 바뀌어 있음을 깨닫고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었던 그때. 우연히 방문한 아쿠아리움에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해파리를 보게 됐다. 처음 본 것도 아니고 어쩌면 흔한 해파리에게 그토록 강렬하게 끌린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해파리 수족관 앞에 도착하니 올망졸망한 해파리들이 사뿐사뿐 내 앞으로 헤엄쳐 왔다. 마치 나를 기다린 듯이 말이다. 나도 그들을 좀 더 가까이 보고 싶었다. 몇 걸음 앞으로 다가가 수족관 유리에 코를 가까이 가져갔다. 해파리의 하얀 살갗이 너무도 투명해서 영혼마저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태어나면 나도 네가 될 수 있을까?' 

많은 해파리 중에 유독 투명한 해파리를 보며 생각했다. 그러자 수족관 조명이 푸른색에서 노란색으로 그리고 다시 보라색으로 바뀌었다. 투명한 해파리의 몸도 조명 색에 따라 아름답게 변했다.

'너는 왜 내가 되고 싶니?'

투명한 해파리가 유리  앞으로 바싹 다가오더니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깜짝 놀라 수족관 유리에 기댔던 손을 떼었다. 투명한 해파리가 몽환적인 몸짓을 하며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은 그냥 해파리가 아니라…… 꼭 수족관에 사는 해파리여야만 해. 난 수족관 속 해파리가 되고 싶어. 그곳은…….' 

어이없게도 나는 해파리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수족관 속 해파리라…….'

투명한 해파리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이곳은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고요하고 아름다워. 내가 태어났던 바다는 언제나 위험했어. 바다 생활에서 가장 안 좋았던 건 내 길을 내가 선택할 수 없다는 거였어. 그 기분을 상상할 수 있어? 우리는 그저 떠다니기만 했어. 바람이 이리로 가라고 하면 가고, 장난기 많은 물살에 나를 맡길 수밖에 없었지. 미미한 날갯짓으로 반항도 해봤지만 그럼 파도는 우습다는 듯이 나를 더 멀리 데리고 갔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상실감. 너는 이해할 수 있겠니?'

투명한 해파리가 한숨을 쉬는 것 같았다. 

'그래……. 우리가 사는 이곳도 마찬가지야. 사람들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지만 그것에 너무 몰두해서 우리의 발 밑이 마치 미로처럼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는 걸 느끼지 못해. 달리고 또 달렸지만 결국 제자리라는 사실을 알았을 땐 거대한 세상의 물결이 나를 밀어내는 것 같은 상실을 느끼지.'

나는 시선을 아래로 떨구며 말했다. 투명한 해파리는 잠시 나를 기다려 주는 듯했다.

'너는 어떻게 이곳으로 왔니?'

나는 고개를 들어 투명한 해파리에게 물었다. 투명한 해파리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시작했다.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날은 태양이 참 뜨거웠어.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해변가에서 물살에 몸을 맡기고 있었어. 그때 어느 보드라운 물체와 내가 우연히 포개진 거야. 그것이 인간의 발이란 건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 인간은 꽥하고 소리를 지르고 수선스럽게 발을 첨벙거렸어. 그들은 자신이 놀란 것만 중요하고 내 몸이 정신없이 휘날리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더라. 그렇다면 나도 살아야 하잖아. 내 안의 감춰 넣어둔 수많은 촉수를 꺼내서 독소를 일발 장전했지. 사람에게는 한 번도 쏴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 빨리 사단 날줄은 나도 몰랐어. 결국 나는 몇 명의 인간을 기절시켰어. 난 억울했어. 그게 모두 내 탓이야? 나를 가만히 놔두었다면 공격할 의지도, 상처 줄 이유도 없었다고. 나에게 상처받았다고 우기는 인간은 그들이 가했던 위협은 생각하지도 않는 것 같아. 나는 유일하게 나를 보호하는 방법을 썼을 뿐인데 말이야. 그때 나도 잠깐 기절했는지 깨 보니 여기였어.'

투명한 해파리의 몸에 힘이 빠진 것 같았다. 나는 해파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을 때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것이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건 자신의 잘못으로 발생한 일이건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친다. 그것이 얼마나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지 따위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내 고통이 가장 크다. 나도 그랬다. 

'수족관 안에선 어떠니? 살만하니?'

나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보통은 갇혀있는 공간에 있으면 자유가 없다고 하잖아. 그렇지만 이곳엔 더없이 큰 자유가 있더라. 우선 개복치와 바다거북이 장난 삼아 벌린 입에 심장을 동동거릴 필요가 없어. 우리 모두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적어도 포획자의 게으른 하품에 죽는다는 게 어이없지 않아?  무엇보다 좋은 건 사방에서 비추는 인공태양이 투명한 몸에 다시금 생명을 불어넣어 준다는 거야. 그럴 때면 인간들은 경이로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봐. 이런 열렬한 호응은 바다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말미잘과 히드라 같은 하등동물로 취급받는 내가 여기에서는 신비한 여신이 된다니까. 분홍 빛을 쏘아주면 나는 사랑에 빠진 로맨틱 소설의 주인공이 되고, 짙은 남색 빛이 나오면 우주를 나는 유에프오가 되어 세상을 항해하기도 하지. 나는 무엇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모든 걸 누릴 수 있어.'

투명한 해파리는 기분 좋은지 자신의 투명한 드레스를 살랑거렸다. 나는 해파리의 말을 곱씹었다. 생명의 위협이 없는 곳. 무엇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빛나는 어떤 존재가 되는 곳. 하등 하다는 태생의 라벨이 없는 곳. 그리고 그 모든 걸 흡수할 수 있는 투명한 몸을 가진 해파리. 뜻밖에도 투명한 해파리가 알려주었다. 내가 수족관 해파리가 되고 싶은 진정한 이유를 말이다.  

'바다가 그립진 않니?'

나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해파리는 선뜻 말했다.

'인간들은 나를 경외에 차서 보다가도 마지막에는 이렇게 얘기하고 지나가. 갇혀있어서 답답하겠다고 말이야. 아주 좁은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서 사는지도 모르는 인간들이 나를 걱정해주면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

투명한 해파리가 이제 가봐야 할 시간이라는 듯 날개를 펄럭이기 시작했다. 수많은 척수들이 물결을 따라 흐느적거리며 떠올랐다. 그 모습이 자신을 포근히 감싸 안는 것 같았다. 수족관 조명이 보라색에서 노란색으로 그리고 다시 푸른색으로 바뀌었다. 


해파리가 지나간 유리 위로 내 모습이 비쳤다. 지쳐 보이는 한 여자가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나도 사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 몰랐다. 사람들이 나를 심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은 과장된 생각을 떨쳐버리는 것이 말이다. 사람들이 나를 놓고 자신의 입맛대로 갈기갈기 찢어 씹어대는 것 같았다.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안전한 곳으로. 아무도 없는 곳으로. 그러면서도 빛나고 싶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세상을 기웃거렸다. 그렇게 수족관 속 해파리가 되고 싶었다. 

팔랑팔랑. 좁은 공간에서도 여유롭게 몸을 활짝 벌렸다가 안쪽으로 오므리는 해파리의 진동이 내 심장 박동과 닮았다. 해파리들이 이제 괜찮다고, 안정을 찾을 시간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리며 수족관 유리에 비친 나에게 말했다.

'그래. 광활한 바닷속에 있어도 그렇지 않아도 나로서 살아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면 그 선택에 성공과 실패는 없는 거야.'

나는 수족관 속 해파리를 뒤로하고 아쿠아리움 밖으로 나왔다. 마음의 근육을 이완시켜주는 것이 오늘의 마지막 업무였는지 들어올땐 하얀빛이었던 태양이 감미로운 붉은 황금빛 색조로 바뀌어 세상을 따뜻하게 내리 쬐고 있었다. 세상은 원래부터 따뜻한 곳일지 몰랐다. 지하철로 가는 발걸음이 해파리처럼 살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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