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할 수 있는 자격.

에세이_ [자아 표류기] 가끔은 겸손의 반대말로 살래

by 작은경미

[겸손] 명사_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있음

겸손한 사람은 언제나 자신보다 더 겸손한 사람을 동경하면서 스스로를 낮춘다. 그들은 대부분 오만하거나 위압적이지 않고 사려 깊고 점잖다. 더해서 하나같이 매력적인 겸손의 미소를 지니고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풍기는 여유로운 기품, 그리고 순수한 듯 내뱉는 장난스러운 재치를 닮고 싶어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저 사람은 참 겸손해'라는 말은 흔히 들으면서도, '나는 겸손한 사람입니다'라고 망설임 없이 말하는 사람을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겸손은 자신의 타고난 본성이나 투쟁해서 얻은 영광이 아닌 누군가에게 부여받은 일종의 '훈장'이라는 것을 그들도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 같다.


겸손해도 되는 조건을 구체적으로 따지자면 엄격히 적용되는 규칙이 있다. 우선 우리가 '겸손해도 됨'을 인정해주려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던 한 가지라도 흡족하게 타인보다 뛰어나야 한다. 태생적으로 아름다운 외모, 비상한 지적능력의 소유자, 앞으로의 여생마저 편하게 보낼 수 있는 금수저와 같은(좀 억울하긴 해도) 그저 타고난 사람도 겸손할 자격이 주어진다. 온전한 정신의 사회적 리더, 강력한 감각을 가진 각 분야의 전문가, 허영심이 가득 찬 지식인이라도 사회적 위치가 그러하다면 겸손할 자격이 주어진다. 가장 낮은 수준의 이 자격 기준을 통과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그 이유는 겸손함을 느껴도 되는 존재에 대해 우리는 알게 모르게 꽤 까다로운 심사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겸손함을 가장해서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는 교활한 사람. 꽤 잘난 것을 무기 삼아 사람을 통제하려는 교만한 사람. 본인이 남보다 더 갖은것도 모르고 공허함만 찾는 아둔한 사람들을 우리는 기똥차게 찾아내어 '위선'이라는 정 반대의 불명예를 던져준다.


좀 더 고차원의 겸손함을 갖춘 사람들은 서로 확연히 닮은 점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겸손한지 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좌절을 빈번하게 느끼며 그 자리에 와있겠지만 고통을 숙고하며 얻어진 삶의 통찰이 그들로 하여금 가던 길을 계속 가게 했을 것이다. 뼈저린 기억은 안주로, 갑자기 훤해진 미래는 술 한잔에 털어버리고 마땅히 우쭐거려도 되는 삶의 결과에게는 겸손한 미소를 지어주며 내일도 모레도 인생의 흐름에 집중한다. 겸손함은 참으로 우아하다. 그들은 삶에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는 것을 앎과 동시에 깜냥에 맞는 언덕 높이도 가늠하고 있는 것 같다. 언젠가는 밟아야 할 내리막을 스스로에게 '오르느라 고생했다. 잘 왔다'라고 말하며, 신나게 뛰어내려 갈 체비를 한걸음, 또 한걸음 겸허한 마음으로 준비하기에 삶에 찾아오는 순간의 고난과 환희는 추우면 옷을 저미고, 따스한 햇살이 비치면 잠시 쉬어가는 그저 하나의 여정이 된다. 이런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삶의 의지, 방향과 목적을 배운다.


나는 겸손을 오해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겸손의 의미를 잘못 알았던 것 같다. 부족한 나에게도 겸손해도 될 만한 어떤 것이 있었다.

그것이 준 행복과 기쁨, 환희는 어쭙잖은 겸손을 흉내 내다 시시하게 사라져 버렸다. 겸손은 행복을 느끼지 않는 무감각이 아님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화려한 환대에 겸손하지 않고 경솔하게 반응하는 것이 신의 노여움을 살까 조바심이 났다. 나머지 행운이 소멸되기라도 할 것처럼 기쁨을 숨기고 또 숨겼다. '또 언제 다가올지 모를 시련의 막막함을 대비해야 해. 이렇게 기뻐할 때가 아니야.' 그때는 몰랐다. 그 감정은, 그 격한 전율은 또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는 것을. 그리고 다시는 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고통과 모욕은 통째로 삼켜먹으면서, 왜 환희찬 감정들은 결사코 거부했는지. 지쳐있을 내 감정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싶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내가 나한테 괜찮은 놈이라고 말하고 싶어 졌습니다.” 오징어 게임의 오영수 님은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수상 후 묵직하지만 찬란한 환희를 스스로에게 표하고 위로했다. 그가 미디어에서는 보여주지 않았을 감정을 몰래 훔쳐보고 싶다. 그가 가족과 느꼈을, 친구들과 느꼈을 조용한 환호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싶다. 겸손한 사람이 행복을 표현하는 것을 배우고 싶다. 그러면서 나도 죄의식 없이 삶의 만족감을 표현하며 살아도 되는 건지 알고 싶다.


왜 이렇게 오래걸렸을까. 늦었지만 이제라도 겸손이라는 인생의 지침서 위에 삶이 그 고단함을 어루만져주듯 흩뿌려주는 한순간의 기쁨을 온 옴으로 맞아보고 싶다. 언제가 올지 모를 그날에는 삶의 전율을 죄책감 없이 느끼겠다. 어깨를 으쓱하며 내 능력에 감탄도 해보고, 기쁨을 감출 길이 없어 어쩔 줄 모르는 반짝이는 소녀처럼 폴짝폴짝 뛸 것이다. 얼굴에 주름이 이렇게나 많았는지 알고 싶을 만큼 활짝. 더없이 활짝 웃을 것이다. 삶의 축복에 더없이 압도당하고 싶다. 그리고 다시 겸손히 내 갈길을 가고 싶다. 그 날이 온다면 꼭 그렇게 하리라.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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