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으면 범죄가 됩니다.
축구라는 스포츠는 공을 상대편 골대에 넣기만 하면 이기는 게임입니다. 그렇지만 공을 옮겨가는 과정에서 선수들간에 신체적 접촉이 필연적이라 때때로 선수들이 심한 부상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경기 중 우연한 사정에 의해서 부상을 당하는 선수들이 있다는 사실과 비교하여, 감정이 격해진 선수들끼리는 고의적인 반칙을 주고 받는 경우도 생깁니다. 축구경기에서의 신체적 접촉은 법적으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014년 11월 말, 당시 프랑스리그 리게앙에서 바스티아 소속으로 뛰고 있던 브란당 선수가 1개월 징역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죄목은 바로 상해에 해당하는데, 그 사실관계가 흥미롭습니다.
브란당은 2014년 8월 17일에 열렸던 14/15 리게앙 2라운드 파리생제르망과의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이 퇴장하는 터널에서 상대팀 소속선수인 티아고 모타를 기다렸다가, 모타가 나타나자 갑작스럽게 박치기를 하였습니다. 그 바람에 티아고 모타 선수는 코뼈가 부러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터널 cctv에 그대로 녹화되었기 때문에 브란당은 이를 이유로 처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 법정에서 브란당은 티아고 모타가 해당일 경기 중에 자신을 모욕하였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였지만, 그러한 폭력사태가 용서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브란당은 티아고 모타에게 상해를 입힌 혐의로 인하여 1월의 징역형과 함께 2만 유로(약 2750만 원)의 벌금형도 선고받았습니다.
브란당 사건을 보면 생각나는 것이 있으니, 팬들 사이에 유명한 로이 킨의 ‘복수사건’입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수년간 활약한 로이 킨은 퍼거슨이 기억하는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지만 다혈질적인 성격, 폭력적인 플레이스타일로 인하여 그를 폄하하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97/98시즌 맨유는 라이벌이던 리즈유나이티드와의 일전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경기에서 리즈 소속 알피 할란드 선수와 계속하여 부딪혔던 로이 킨은 경기 중 할란드와의 충돌로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큰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본 할란드는 쓰러진 로이 킨에게 다가가 엄살부리지 말라며 침을 뱉었습니다.
로이 킨은 이 부상으로 인하여 시즌아웃되었고, 그 결과 98프랑스월드컵에도 출전하지 못했으며, 그 해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맨유는 아스날에게 우승컵을 뺏기게 됩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후 할란드는 맨체스터시티 소속 선수가 되어 맨유와 일전을 치르게 됩니다. 그런데 그 경기에서 결국 로이 킨은 사고를 치고 맙니다. 공과는 상관없이 할란드의 무릎을 차버린 것입니다. 이로 인해 할란드는 쓰러졌고 로이 킨은 레드카드를 받은 이후 쓰러진 할란드에게 다가가 5년 전 흡사 할란드가 자신에게 한 것처럼 무엇인가 소리치고 그라운드를 벗어납니다.
이때 생긴 부상으로 인하여 결국 선수생활을 접게 된 할란드는 로이 킨이 고의적으로 자신을 가격했다며 법원에 고소를 하였지만, 법원은 할란드의 무릎이 원래 좋지 않은 상황이었으므로 로이 킨의 반칙이 은퇴의 결정적 원인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하여 그의 고소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로이 킨은 자신의 새로운 자서전에서 할란드와의 일화를 언급하며 "내 인생에 후회스러운 일들이 몇몇 있었지만, 거기에 할란드와의 일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회고해 파장이 일기도 했습니다.
다만 ‘복수’에 대해서는 부정하였는데, 로이 킨이 부상당한 97/98시즌 이후 할란드가 부상당한 경기가 있기 전까지 적어도 서너차례 할란드를 상대했음에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로이 킨과 함께 맨유를 이끌었던 레전드 에릭 칸토나. 에릭 칸토나는 자신이 공격수 포지션에서 뛰게 된 이유를 ‘다른 포지션은 보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비난받기 쉽지만 공격수는 골만 넣으면 아무도 자신을 욕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 일화를 통해 칸토나가 무척이나 자의식이 강한 선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칸토나는 뛰어난 축구실력에도 불구하고 꽤나 자주 구설수에 오르내렸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는 선수도 아닌 관중에게 날린 쿵푸 킥 사건입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94/95시즌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경기에서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하던 칸토나에게 한 팰리스 팬이 폭언을 퍼부었는데, 칸토나는 이를 참지 못하고 관중석으로 뛰어들어 쿵푸 킥을 날린 것입니다. 이로 인해 칸토나는 2주간 실형을 선고받아 수감되었고, 이후 9개월의 출장정지, 12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받았습니다.
칸토나는 얼마 전 이 사건에 대해서 ‘내 현역시절의 하이라이트’라고 평가했다고 합니다.
앞서 살핀 세가지 경우 중 법원의 처벌을 받지 않은 경우는 로이 킨의 경우뿐입니다. 브란당의 경우 경기 후 선수를 고의로 폭행하여 상해를 입힌 것이고 에릭 칸토나의 경우 선수가 아닌 관중을 폭행한 것이라는 것이라면, 로이 킨은 경기 중 상대방에게 부상을 입힌 경우라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습니다.
왜 로이킨의 경우에는 처벌되지 않았을까요? 이를 우리나라의 형법과 관련시켜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운동경기에서 발생하는 모든 신체접촉행위는 상대방에 대한 폭행이 될 수 있고, 결과가 중하면 의도에 따라 상해로 볼 수도 있게 됩니다. 그렇지만 운동경기란 처음부터 선수들간의 신체접촉을 당연한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설사 경기 중에 상대방의 반칙으로 인하여 피해를 입었다 해도 이러한 행위는 위법성이 없어 처벌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선수들간의 관계에서, 운동경기를 하는데 수반되는 행위들에 한정되는 설명입니다. 칸토나는 서로간의 신체접촉이 정당화되지 않는 관중에 대하여 폭행을 한 것이므로 범죄가 되고, 브란당의 경우에는 선수간에 일어난 폭력사태이긴 하지만 경기가 이미 끝난 후 경기와 무관한 행위로 상대방을 가격한 것이기 때문에 역시 범죄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경기 중에는 로이 킨의 경우처럼 마음에 안드는 상대방을 고의로 가격하더라도 무방하다는 의미일까요? 전혀 그렇지는 않습니다. 선수가 상대방을 단지 위해하기 위하여 고의로 가격을 했다면 이는 운동경기에 당연히 수반되는 반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로이 킨 사건에서는 할란드를 고의로 가격한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경기 플레이를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신체접촉이었다는 점, 할란드의 무릎이 본래 좋지 않았다는 또다른 인과관계가 있었다는 점이 다소 고려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