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특별한 쥐 이야기
고양이는 자기의 눈을 의심했어요. 생쥐들이라는 건 원래 고양이를 보면 꼬리 빠지게 도망치거나 좁은 틈으로 숨어들어 벌벌 떨어야 하는 건데, 눈앞에 보이는 작은 생쥐는 고양이를 향해 가슴을 내밀고 우아하게 걸어오고 있었어요. 고양이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평소대로 날카로운 발톱을 꺼내 앞발을 번쩍 들었어요.
“잠깐만요!”
하얀코의 외침에 고양이는 어이가 없었어요.
“생쥐 주제에 고양이 앞에서 큰 소리라니 건방지군.”
“제가 평범한 생쥐라고 생각하십니까?”
“평범한 쥐? 맛있는 생쥐라고 생각하는데? 얼른 나에게 먹히시지?”
“절 잡수시면 후회하실 걸요?”
“후회한다고? 내가? 글쎄 후회를 한다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었는데 하는 후회겠지. 으흐응. 으흐응.”
고양이는 스스로 무척 재미있는 말을 했다는 듯이 발로 바닥을 긁으며 이상한 소리로 웃었어요.
“전 평범한 쥐가 아니에요. 제 얼굴을 잘 보세요.”
고양이는 번뜩이는 눈으로 하얀코의 얼굴을 살폈어요. 그동안 지킴이 쥐들은 재빨리 소파를 향해 달려갔어요.
“다른 쥐들과 다를 게 없잖아. 잠깐, 왜 코에 밥풀을 붙이고 있는 거지?”
“이건 밥풀이 아니라 하늘의 심부름꾼이라는 표시입니다.”
“뭐라고? 하늘심부름꾼? 으흐응, 으흐응. 이 쥐가 날 바보 고양이로 아나. 쥐가 어떻게 하늘의 심부름꾼이 돼?”
고양이는 하얀코에게 얼굴을 내밀고 온 몸에 털을 세워 위협했어요. 하지만 하얀코는 전혀 겁먹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어요.
“그럼 어째서 제 코는 하얗지요? 이제껏 여러 쥐를 보셨을 텐데요. 저 같은 하얀 코가 있었나요?”
확실히 고양이는 이제껏 코가 하얀 쥐는 본 적도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었어요. 하얀코의 당당함에 고양이는 털을 내리고 고개를 가로 저었어요.
“그러고 보니…. 본 적 없어. 하지만 하늘심부름꾼이 여기 무슨 볼 일이 있단 거야?”
지킴이 쥐들이 소파까지 간 것을 확인한 하얀코는 고양이를 향해 더 당당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저는 당신을 왕으로 임명하기 위해 하늘의 명령을 받고 왔습니다.”
“뭐? 왕이 된다고? 내가?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믿지 않으실까 봐 왕의 증거를 달아드리라는 명령도 있었습니다.”
“왕의 증거?”
어리둥절해 있는 고양이에게 하얀코는 목에 맨 방울을 내밀어 보였습니다.
“자, 바로 이게 왕이라는 증거입니다.”
“오호. 뭔가 반짝이는 게 예뻐 보이는데?”
“물론이죠. 이 증거를 달면 걸으실 때마다 왕의 소리가 납니다. 그 소리를 듣고 모두가 왕에게 길을 비켜주지요.”
“왕의 소리?”
“잘 들어보세요.”
하얀코는 제자리에서 빙빙 돌며 방울 소리를 들려줍니다.
“딸랑 딸랑”
방울 소리를 들은 고양이는 자세를 낮추더니 그릉그릉 소리를 냅니다. 하얀코가 빙빙 돌며 고양이의 관심을 끄는 동안 엄마 쥐와 지킴이 쥐들은 어느 새 둥지 근처까지 왔어요. 그리고 하얀코가 얘기하는 동안 천천히 한 걸음씩 둥지를 향했어요.
“왠지 귀가 간지러워지는 소리로군. 제법 마음에 드는데?”
“당연하죠. 이제 왕이 되실 테니 왕의 소리가 마음에 들 수밖에 없지요.”
“어떻게 가지고 다녀야 하지? 네가 걸고 있는 줄은 내 목에 안 맞을 것 같은데….”
“걱정 마십시오. 제가 다 준비했습니다.”
이번에는 파란 리본을 고양이 앞에 내밀었어요.
“이건 고양이님께 드리는 하늘의 리본입니다. 하늘과 꼭 닮은 파란색이지요?”
“흐음. 조금 마음에 드는데?”
“자, 왕 될 준비가 되셨나요?”
하얀코의 얘기를 듣고 고양이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좋아하면서도 아직 안심할 수 없다는 듯 망설이는 목소리로 하얀 코에게 물었어요.
“잠깐 하나만 더 물어보자. 어째서 내가 왕이 될 특별한 이유가 있어?”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어둠을 꿰뚫어보는 눈, 단단하고 날카로운 발톱, 사뿐사뿐 기품 있는 걸음걸이…. 당연히 왕이 되실 만하지요.”
“뭐라고?”
고양이는 갑자기 으르렁 거리며 발톱을 세운 발로 하얀코를 바닥에 눕혔어요. 고양이가 의심을 시작한 걸까요? 둥지 안까지 딱 한 걸음 남은 생쥐가족들은 깜짝 놀라서 오들오들 떨었어요. 금방이라도 하얀코를 잡아 버릴까 봐 무서웠지요.
“아야야,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잘 들어 생쥐, 금방 네가 한 말은 고양이라면 모두 갖고 있는 특징이야. 오히려 나는 다른 고양이들과는 다르게 꼬리 끝이 구부러진 못난 고양이다. 그런데 왕이 될 리가 없지.”
그러고 보니 고양이의 꼬리 끝은 쭉 뻗은 모양이 아닌 구부러진 철사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어요. 생쥐가족들은 어쩔 줄 모르며 발만 동동 구릅니다. 하얀코는 이 위기를 어떻게 할까요? 고양이의 발에 깔린 하얀코는 침착하게 침을 꼴깍 삼키고 입을 열었습니다.
“하늘의 뜻은 심부름꾼인 저도 알 수가 없지만 구부러진 꼬리야 말로 하늘의 증거….”
“속일 생각하지 마. 역시 수상해, 평범한 쥐가 코에 하얀 칠을 하고 날 속이려는 거지?”
“믿지 못하시겠다면 증거를 보여드리지요. 제 코를 핥아보세요.”
“그럴 생각이다. 칠이 벗겨지는 순간 널 통째로 삼켜주지.”
고양이는 하얀코의 코를 핥았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몇 번을 핥았지만 하얀 칠은 조금도 벗겨지지 않았습니다. 당연하지요. 하얀코의 코는 정말 하얀 색이었으니까요. 고양이는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너, 진짜 하늘의 심부름꾼이야?”
“이젠 절 믿으실 건가요?”
“그래. 아, 어쩌지? 하늘심부름꾼을 공격하다니. 난 이제 왕이 될 수 없을 거야….”
고양이는 꼬리를 내리고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하얀코는 그런 고양이에게 미소를 지었어요.
“아닙니다. 용감함이야말로 왕다운 것이지요. 자, 이제 왕의 증거를 달아 드리겠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어요. 작은 생쥐일 뿐인 하얀 코가 조심스럽게 고양이 등에 올라타 방울을 달았답니다. 구경하고 있던 생쥐가족들은 너무 놀라 소리도 내지 못하고 호들갑을 떨었어요.
“왕의 증거도 내렸으니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잘 가라. 고맙다.”
하얀코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고양이는 자리에서 빙빙 돌며 방울 소리를 울리는 데만 신경 썼어요. 하얀 코는 얼른 둥지로 뛰어갔어요. 이미 둥지 안에 도착해있던 가족들은 하얀 코를 보고 환호했습니다.
“하얀코! 너 정말 대단하다.”
“하얀코, 네 덕분에 무사히 왔구나. 고맙다.”
“하얀코 대단해! 와! 멋져!!”
“조금 전 고양이가 핥을 때 무섭지 않았어?”
“사실 나도 그때는 조금 떨려서 코끝이 분홍색으로 변하는 줄 알았어.”
부끄러워하는 하얀코도 그때는 다른 쥐들과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답니다.
그 뒤론 어떻게 됐냐고요? 고양이는 파란 리본에 예쁜 소리가 나는 방울을 달고 왕처럼 고개를 들고 다녔어요. 쥐들은 딸랑거리는 소리만 나면 얼른 숨었기 때문에 고양이가 갑자기 나타날까 봐 불안해하는 일은 없었어요. 모든 쥐들이 숨어 다녔냐고요? 아니요. 하얀코는 달랐어요. 고양이를 만나도 하늘 심부름을 왔다며 하얀 코를 내밀고 정중히 인사를 나눌 뿐이었으니까요.
<하얀코,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