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위가 아니라 책임이다
자기계발에 대해 대부분의 책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보스가 아니다.
자기 자신의 계발을 위한 첫 번째 우선순위는 탁월함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이다. 장인정신이 중요한 것은 수행한 일의 품질에서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 아니라, 일을 하는 사람의 차이를 만들기 때문이다. 당신이 자기갱신을 위해 일하고, 당신이 익숙한 일을 지속해서 풍요롭게 만드는 열정과 도전과 변화를 만들 수 있을 때라야만 일이 (계발의) 촉매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라. 자기갱신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길은 예측하지 못한 성공을 발견하고 그것을 계속하는 데에 있다.
성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책임(accountability)이다- 자신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유지하라. 다른 모든 것은 이것으로부터 나온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당신이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책임지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당신은 일을 충분히 인식할 정도로 중대하게 생각해야 한다: 나는 이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 왔다.
책임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사람은 자기 자신을 보다 큰 시야에서 바라보게 된다.
(피터 드러커, Managing the Non-Profit Organization)
인간다움에 대한 생각
역사는 어떤 면에서 ‘인간다움’에 대한 인식의 역사와도 같습니다.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끊임없이 변해왔기 때문입니다. 가장 원시적인 시대에서 인간의 가치척도는 육체적인 힘이었습니다. 자연이 인간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최고의 목표는 생존이었고 이를 위해 강인한 체력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과학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원시시대의 지도자는 가장 강한 체력을 가진 사람이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목숨을 위협하는 맹수나 자연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했고, 먹을 것을 위해 사냥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것이 문명이 발전하면서 종교적 권위가 육체를 대체하게 됩니다. 인류가 가진 본능-절대적인 것의 추구-을 대변하는 권위가 힘을 대신하게 됩니다. 종교적 권위는 매우 오랜 시간 가장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신이 보증하는 권위에 저항하는 세속적 권력(왕, 귀족 계급)이 있었지만, 왕의 권위는 신을 후원자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오랜 기간 인간을 지배했고 때로는 억압했던 종교의 시대도 영원하지는 않았습니다.
근대로 넘어오면서 절대적 권위를 대체한 것은 경제였습니다. 물론 먹고사는 문제는 항상 중요했지만 근대사회의 인류는 경제적 가치를 모든 것의 중심에 두는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가 되었습니다. 즉, 부와 소유는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되었습니다. 성공은 부를 의미했고, 부를 가지지 못하는 것은 실패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가치 전환의 바탕에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 합리적 행동에 대한 신념,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인간다움의 척도는 무엇일까요? 아직도 호모 이코노미쿠스에 대한 믿음은 강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 믿음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경제인의 가치가 만들어 온 인간의 삶과 세계에 대한 반성과 함께 아직 대답하지 못한 근원적 질문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모든 가치를 부인하고 오직 소유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인간이 과연 인간의 본성인가?
경제인의 가치를 추구한 대가로서 불평등, 불공정, 미래세대를 희생하는 환경파괴는 과연 대가로서 치를 만한 것인가?
경제인의 가치가 이룩한 사회는 과연 인간이 최선을 다해 노력할 만한 가치 있는 사회인가?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여기서 논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인간다움에 대한 생각의 중요성은 짚어야 할 듯싶습니다. 이 생각은 인간의 행동을 이끌고 사회의 성격을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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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움은 어떤 것일까? 인간에게 가치 있는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책임지는 사람
인간다움이라는 주제를 '조직에서의 삶'으로 좁혀서 살펴보겠습니다. 현대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직에서 일하기 때문입니다. 조직은 사람들이 생계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실현하는 현대 사회의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조직에서 사람들은 인간으로서의 의미와 보람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이것은 조직에게 부과된 의무이기도 하지만(사람들에게 적절한 지위와 보람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 사람들, 곧 지식근로자 스스로가 찾아야만 하는 과제이기도 합니다. 어디에서 출발해야 할까요? 드러커는 책임을 가장 중요한 척도로 말합니다. 조직에서 사람이 중요한 이유는 지위가 아니라 책임이라고 명확하게 말했습니다.
원래 조직에서 생활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생각은 그다지 긍정적인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슬로안 윌슨이 쓴 <회색 양복을 입은 사나이, The Man In The Gray Flannel Suit, 1955)라는 책이 있습니다. 서구에서 기업이 지배적 기관으로 한창 성장하던 시기, 세계 2차 대전 이후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틀어 쥐고 대기업에 의한 엄청난 경제성장을 달성한 미국에서 출간된 책입니다. 이 책에서는 조직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또 이것을 강요하는 조직) '조직 인간'의 어두운 모습을 그렸는데요, 영화로도 나올 정도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인간의 삶이 조직에서 피폐해지고 있다는 고발에 많은 사람이 호응했습니다. 그 고발은 조직은 인간성을 파괴하는 위험한 곳이다라는 목소리였습니다. 20세기 초 대량생산의 시대, 거대한 공장에서 기계부품처럼 종속되어 일했던 육체 근로자의 모습을 묘사했던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 Modern TImes>는 도심의 빌딩으로 옮겨 온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조직인의 모습은 오늘의 현실과는 맞지 않습니다. 현대는 지식사회가 되었고 대부분의 조직은 지식기반 조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식기반 조직에서의 삶은 일방적으로 강요당하는 삶이 아닙니다. 지식근로자에게는 자유와 선택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위계질서와 통제가 아직은 조직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처럼 명령과 지시를 통한 통제는 불가능합니다. 지식근로자는 지식을 가지고 있고 지식을 활용해서 일하고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는 근로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일과 행동에 대한 선택권은 조직이 아니라 지식근로자에게 넘어갔습니다. 다만, 이러한 지식근로자의 자유와 선택권은 공짜가 아닙니다. 자율과 책임은 한 쌍이기 때문입니다. 즉, 지식근로자는 자율적으로 일하면서 스스로가 가치를 창출한다는 책임을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책임을 지고 자율적으로 일한다는 바로 이것이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새로운 존재양식이고 조건입니다.
지식사회, 지식기반 조직에서 책임이란 무거운 것이지만 버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조직에 앞서서 사회가 있는 것처럼, 지식근로자에 앞서 조직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무엇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수행하는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합니다.
성장에 대한 책임
지식근로자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의 척도는 책임을 수행하는 것에 있습니다. 책임은 자신이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곧 조직의 비전, 사명, 목표가 지식근로자에게 책임을 부여합니다. 지식근로자는 자신의 지식으로 조직의 목표에 공헌하는 책임을 집니다. 이것이 공헌의 책임입니다. 이 책임을 짐으로써 지식근로자는 비로소 가치를 만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그 문제는 지식의 특성에서 발생합니다. 우선, 지식은 늘 새로워야 합니다. 새로운 인식, 새로운 발견, 새로운 이론, 새로운 방법, 새로운 해결책만이 가치를 낳습니다. 새로운 지식이 낡은 지식을 대체할 때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진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지식근로자는 자신의 지식을 항상 새롭게 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곧 성장의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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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근로자의 책임은 자신의 성장에 대한 책임입니다. 성장에 대한 책임은 다른 모든 책임의 전제조건입니다. 배운 것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위해 배우고 폐기하고 배우는 것, 이것이 지식근로자의 책임입니다.
드러커는 책임을 받아들일 때 자기 자신을 보다 넓은 시야에서 바라보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올바른 지적입니다. 저는 현대 사회가 경제인의 가치를 극복하는 생각의 전환이 이 지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다른 무엇보다 성장하는 존재입니다. 또한 조직에서 유일하게 성장하는 자원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성장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새로운 시각, 새로운 능력, 새로운 비전을 갖는 것이 진정한 성장입니다. 따라서 욕망이나 기대가 아니라 더욱 큰 책임을 수용할 때 진정한 성장이 이루어집니다. '내가 지금 왜 이 자리에 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신입사원, 중간관리자, 임원, 대표자 등 지금 어느 자리에 있든지 간에, 과거의 나를 이 자리에 있도록 만든 것은 내가 성장했기 때문이고 그 성장의 배후에는 책임에 대한 인식과 책임을 수행하려는 진지한 노력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양한 조직으로 이루어진 지식사회에서 인간다움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충만한 삶을 실현하는 진정한 가치는 어떤 것일까요? 부와 소유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경제인의 가치'는 생명을 다했습니다. '책임지는 존재'로서 인간을 이해하게 되면, 나의 삶을 바라보게 되면, 인간은 성장하는 존재로 자신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성장합니다.
내가 처음 수행한 책임은 무엇이었던가?
오늘 나는 어떤 책임을 감당하고 있는가?
내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이런 질문에 답변을 찾아보기를 제안합니다.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는 더욱 크게 보이고, 내일의 나는 오늘보다 더욱 큰 존재가 되리라는 비전을 그리게 됩니다.
사진) pixabay.co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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