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드러커로 세상 읽기(12)

충만한 삶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by 자키바 문정엽
The critical factor for success is the accountability- holding yourself accountable. Everything else flows from that. The important thing is not that you have rank, but that you have responsibility. To be accountable, you must take the job seriously enough to recognize: I’ve got t grow up to the job. By focusing on accountability, people take a bigger view of the themselves. (Peter F. Drucker, Managing the Non-Profit Organization)

성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책임(accountability)이다- 자신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유지하는 것. 다른 모든 것은 이것으로부터 나온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당신이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책임지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당신은 다음 사항을 인식하기에 충분하게 일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나는 이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 왔다. 책임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사람은 자기 자신을 보다 큰 시야에서 바라보게 된다.


요즈음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이 있습니다.

"조금 앞서 생을 살아온 시니어로서 청년들에게 어떻게 용기를 줄 수 있을까?"

2018년 들어 청년들을 위한 공익사업을 수행하면서 드는 질문입니다


1997년 말경 IMF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그 뒤로 10여 년간 한국인들이 겪었던 고통은 대단했습니다. 저는 은행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무너지고,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금방이라도 나라가 망할 것 같은 불안감이 팽배했던 그 시기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런데, 현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은 현재가 더욱 불행한 시대라고 여기는 듯합니다.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먼저 청년들 각자가 한 사람의 자격을 갖춘 직업인으로서 경력을 시작하기에는 여건이 어렵습니다. 저는 많은 청년들이 자신의 꿈에 대해 말하길 꺼려한다는 것을 자주 접하고 있습니다. 높아지는 취업문턱과 높은 실업률, 비정규직 중심으로 변하는 고용구조 등 경제구조의 어려움은 청년들로 하여금 미래를 향한 꿈을 박탈하는 것 같습니다.

선배 세대로서 비전을 갖길 꺼려하는 청년의 모습은 안타깝습니다. 청년의 유일한 특권, 미래를 위해 도전하고 기꺼이 변화를 감내하는 삶의 약동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청년들에게 진실한 조언을 해 주고 싶습니다. 시대와 상황이 어려운 것은 분명하지만, 한 사람의 개인이자 자유로운 시민으로서 각자가 충만한 인생을 살기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마땅한 조언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청년들은 우선 경력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와 지원 등 눈에 보이는 도움을 기대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제가 깊이 믿고 있는 삶의 방식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기도 합니다.


드러커라면 어떤 조언을 했을까요? 그 누구보다도 쉽지 않은 생을 살아가야 했던, 그리고 생을 스스로 만들어 나갔던 드러커라면 삶을 이해하고, 세계를 경험하고, 온전한 한 사람의 자유인으로서 진정함과 현명함을 듬뿍 담아 조언하리라 생각합니다. 드러커의 생을 빌려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습니다.


자기 운명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삶을 해석하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권리 대 책임.

권리는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통해 삶을 바라봅니다. 인간은 그 어떤 차별 없이 동등하게 태어났고 각자가 원하는 삶의 목표와 방식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믿습니다. 거의 모든 독자들은 이 관점을 지지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관점이 담고 있는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대인에게는 이러한 인간관이 자연스럽지만 2백 년 전만 해도 이 관점은 매우 파괴적인 발상이었습니다. 인간은 동등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차별이 자연스러웠죠. '권리'라는 렌즈는 사람에 의한 사람의 지배, 즉 차별을 부끄럽고 나쁜 것으로 만들었고, 인간을 중시하는 사회를 발전하게끔 이끌었습니다. 권리는 인간에게 자긍심을 부여하고 차별을 부끄럽게 생각하도록 이끕니다. 이것은 올바른 가치관이고 인간관이고 세계관입니다.


책임은 마땅히 행동해야 하는 덕목을 통해 삶을 바라봅니다. 책임이라는 렌즈는 인간은 자신이 놓인 자리에서 마땅히 행동할 의무로 삶을 바라봅니다. 첫 번째 책임은 자기 자신에 대한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꾸려야 할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아가 다른 인간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의무를 인식하고, 시민으로서 올바른 삶의 방식을 이해합니다. 책임은 인간이 올바름에 대한 민감성을 기르도록 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행동을 의식하게 하고, 더욱 높은 경지로 행동을 이끕니다.


권리와 책임은 모두가 삶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갖춰야 하는 관점입니다. 인간은 단독으로 살지만 또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나를 위해서 살아야 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두 가지 관점은 올바른 것입니다. 양자는 서로 동행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책임을 통해 삶을 바라보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자기 운명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라는 질문은 삶의 주인으로 똑바로 서기 위해 반드시 스스로 제기해야 하는 질문입니다. 세상이 자신의 마음 같지 않은 사람에게 책임은 자신의 바깥에 있습니다. '내가 지금 이러한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내 잘못이 아니다. ' '그것은 다른 사람과 사회의 책임이다.' '아무리 내가 잘해 봐도 내 꿈을 이룰 수는 없다.'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 숨 쉴 틈을 주지 않는 세계에서 어떻게 한 사람의 인간이 뜻을 펼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생각 혹은 주장에는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한 사람이 성취할 수 있는 일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날고 싶지만 날개가 없으면 날 수 없습니다. 냉혹하지만 삶은 인간의 뜻과는 무관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생각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습니다. 삶의 방향과 경로를 선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몫입니다. 인간의 생각이고 감정이고 판단이 모든 목적과 길을 정합니다. 다만 사회는 그것이 얼마나 올바른가를 ,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정할 뿐입니다. 사회가 반드시 그 사람에게 그 사람이 원하는 보답을 주어야 한다는 것은 진실도 아니고 존재하지도 않는 가정일 뿐입니다.


드러커는 두 번의 전쟁을 겪은 사람입니다. 19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유럽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드러커는 유년기에는 1차 대전을, 청년기에는 2차 대전을 겪었습니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사에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남긴 전체주의의 망령을 목격하고 그 망령에 고통을 겪은 인물입니다. 드러커가 살아야만 했던 세계는 그가 고향을 떠나 이방인으로 살게 만든 중요한 요인입니다. 드러커는 10대 후반에 고향 비엔나를 떠났고 30대에는 유럽을 떠났습니다. 그 후로는 그가 표현한 대로 방관자의 삶을 살았습니다(사실 사전적 의미에서 방관자가 아니라 일어난 일을 관찰하고 그 의미를 사람들에게 설명해 주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자유로운 삶을 위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아픔이 묻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실과 위기의 세계 속에서 드러커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인식했고 당당했습니다. 그리고 그 삶을 살아가는 모든 것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수용했습니다.


청년 드러커는 18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함부르크로 가서 작은 무역회사의 수습사원 생활을 시작합니다. 고국 오스트리아는 극심한 정치적 혼란과 경제 불황으로 어지러웠고, 독일은 전체주의가 세력을 넓히고 있었습니다. 대학교 진학 대신 다른 나라에서 독립을 한 선택은 그의 생애에서 첫 번째로 내린 독립적 결정입니다. 드러커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발견하기 위해서 그러한 선택을 했습니다. 또한 드러커는 나치 정권을 비판하는 팸플릿을 썼는데, 이 행동은 이로 인해 독일에서 추방될 수도 있다는 위험을 각오했던 것입니다. 또한 드러커는 5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저술한 39권의 저서를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정치서적으로 시작했고, 이 책에서 개인의 자유를 뿌리 째 부인하는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해 자신의 신념을 공개했습니다. 저는 생각해 봅니다. '청년 드러커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자신의 기반인 고향과 가족을 떠나는 선택을 할 수 있었던 믿음은 무엇이었을까?' '최고 권력자에 대해서 분명하게 비판할 수 있는 용기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인간은 그 누구라도 자신의 가치대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과 이로 인한 결과가 때로는 원하는 것이 아닐 수 있어도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삶에 대한 겸허한 책임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청년들에게는 전쟁처럼 삶을 뿌리 채 박탈하는 위기는 당분간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느끼는 상황과 고통이 가볍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분명한 점은 오늘날의 청년들만이 힘든 시대를 살아가지는 않았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점입니다. 삶의 상황과 맥락은 개인의 바람과는 다릅니다. 비극도 있고 고통도 있고 희극도 있고 평화도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이러한 삶의 테라피스트를 자신이 해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선택을 하고 결과를 수용해야 합니다. 편안하고 고통스럽지 않은 상황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투덜댈 이유는 없습니다. 물론 덜 고통스럽고 덜 힘든 사회를 위해서 인간은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몫입니다.


드러커는 혼돈과 대전환의 시대에 청년기를 거치면서 삶의 가치와 이정표를 밟아 나갔습니다. 비엔나의 청년은 전체주의를 극복하고 모든 인간의 자유를 실현하는 '정상적인 사회'에 대한 신념을 키워갔고, 다양한 조직이 목표를 달성하도록 하는 경영과 경영자의 중요성을 파악했고, 경영 연구와 저술에 평생을 바치게 됩니다.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경영사상가가 되었습니다.


자,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아가 봅시다.

삶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요? 각자에게 있습니다. 어떠한 사회를 만든 원인 제공자로서가 아니라, 방향과 목표, 경로를 결정할 절대적인 권한은 인간에게 있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오직 자유로운 사람만이 책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유가 없는 노예에게는 책임이 없습니다. 노예에게는 생각과 판단이라는 능력이 없으니까요(인정하지 않으니까요). 책임은 오직 자유로운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고, 책임은 인간을 자유롭게 합니다. 그리고 책임은 온전한 삶에 대한 요구를 뜻합니다. 삶의 주인으로서 온전한 삶을 실현하기 위해서 삶에 대한 진정성을 가지라는 요구입니다.



충만한 삶을 바라는 것


과거의 힘든 시절을 말하면서 지금은 정말 좋은 시대라고 말한다면 '꼰대'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대인이 누리고 있는 자유와 기회는 분명히 사회가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는 증거임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살아가는 터전과 시대가 다름에도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살아야 한다는 명제는 모든 인간에게 부여되는 책임입니다. 이 점에서 다른 시대와 상황에서 삶의 경로를 책임적으로 만들어 갔던 선배 세대들의 삶은 돌아볼 가치가 있습니다.


청년 드러커에게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삶의 선택지는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자유'를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유로운 삶을 찾아 이방인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당시 오스트리아 상류층 자제들이 선택하는 고위공무원, 법률가, 교수라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고 18세의 나이에 홀로 고향을 떠났고 수습사원이자 대학생으로 새로운 삶에 도전했습니다. 이러한 드러커가 훗날 위대한 경영사상가가 되리라고 예상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가 일했던 회사는 인도에 자물쇠를 파는 조그만 회사였습니다. 수습사원으로 일하는 십 대 청년이 무엇이 될 수 있었을까요? 또한 당시에는 경영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없었고, 드러커를 포함한 많은 젊은이들이 안정된 경력을 계획하기란 불가능한 혼돈과 파괴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의 드러커는 개인으로 보면 그 어떤 안정된 기반도 없고 미래가 없었던 시기였지만, 저는 청년 드러커가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경험하고 이를 통해 어떠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인식하던 도약의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드러커는 스스로 남들과는 다른 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독일에서 수습사원과 신문사 기자로 일하면서 야간 대학을 나오고 뒤이서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독일을 떠나 영국으로 갑니다. 금융회사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면서 드러커는 유럽에 엄청난 전쟁의 재앙이 몰려오고 있다는 것을 파악합니다. 그래서 당시 가장 자유롭고 풍요로운 나라였던 미국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이러한 선택은 도피가 아니었습니다. 아무런 안정적 직업도 없고 가족이나 지인도 없는 미국에서의 삶은 큰 도전이었으니까요.


미국에서 드러커는 유럽 언론을 위한 자유기고가이자 작은 여자대학의 시간강사로 가르치는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탁월한 지식과 사고력을 갖춘 드러커는 가르치고 저술하는 자신의 강점을 깊이 이해해고 이제 자신이 펼칠 경력의 본류로 나아갔습니다. 경영학을 가르치고, 기업 조직을 분석하고, 경영 컨설팅을 하면서 경영사상의 체계를 세우게 됩니다. 또한 비영리조직을 위해 무료로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나눠주면서 경영을 통한 조직의 발전이라는 자신의 목표에 헌신했습니다


드러커가 20세기 가장 뛰어난 경영사상가로 인정받는 이유는 그가 이룩한 성취와 업적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은 이러한 업적은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지식기반을 충실하게 학습하고 그 위에 무엇인가 덧붙인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바로 이 점이 드러커의 탁월함을 말해 줍니다. 드러커는 가르치고 저술하고 컨설팅하는 경험을 통해 조직경영의 의의를 인식했고, 흩어져 있던 지식을 통합해서 <경영>이라고 하는 학문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드러커를 통해 경영은 현대 조직을 만들고 조직을 운영하는 가장 중요한 기관(organ)이라는 의의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의 공헌은 교수이자 작가, 컨설턴트이자 멘토, 기업과 비영리기업 등 다양한 조직을 경험하려고 했던 삶의 방식이 만든 것입니다. 매우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했던 드러커는 이러한 자신의 삶을 '하나의 세계 이상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세계에서 최선으로 자신이 가장 잘 공헌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삶의 다양함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삶의 충만함을 얻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저는 청년들이 "충만한 삶", 영어로 표현하자면 "fullness"를 삶의 모토로 생각해 보기를 권합니다. 아직 경력을 시작하지도 않은(혹은 못한) 청년세대에게 '충만한 삶'이라는 주제는 매우 멀게 느껴지겠죠.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이 인생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 뿐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의 인생을 책임지라고 요구할 사람은 거의 없지 않나요? 그렇다면 단순하고 파편화된 삶이 아니라 충만한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이 살 수 있는 가장 가득 찬 삶이 어떤 것일까에 대해서 충분하고도 진지하게 고민해 보기를 조언합니다.


충만함에 대한 정의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최대한 충만한 삶을 바라는 것은 올바른 삶의 의지입니다.

여러분 각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충만한 삶의 정의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충만함을 찾는 여정을 시작하라


언제나 삶에는 가난함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청년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이 점에서 충만함을 가볍게 느낄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먼 얘기로 받아들이는 것이죠. 차분하게 마음을 들여다 보기를 권합니다. 언제나 삶은 순간이고, 이 순간이 모여서 짧지 않은 인생을 만들어 갑니다. 현재의 행복을 위해 미래의 고통을 무시하는 자세가 어리석은 것처럼, 현재의 고통을 참는 대가로 미래의 행복을 기대하는 것도 현명하지 않습니다. 현재에도 최선의 삶은 행복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입니다.


충만한 삶이란 내게 어떤 의미인가를 진지하게 물어봐야 합니다.

건강, 명예, 돈, 권력, 직업, 승진, 연봉, 연인, 친구, 성취, 봉사....

아주 솔직하게, 그리고 아주 냉정하게 질문해야 합니다.


이 질문을 할 때 한 가지 명심할 내용이 있습니다. 자신의 머리로, 가슴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요구입니다.

많은 청년들은 가치나 목표, 의미와 책임에 대해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 배워 왔습니다. 이것은 선배 세대의 잘못입니다. 저도 일말의 책임을 인정합니다.

따라서 지금 내가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진짜로 내게 중요한 것인가를 최소한 다섯 번은 물어봐야 합니다. 남의 생각이 아니라 내가 받아들이는 진짜 생각, 순수한 믿음을 발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인생은 여러분의 것이고, 각자의 인생은 각자의 책임입니다.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마음속에서 질문하십시오.

"나는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가?"

무엇인가 부족함이 느껴진다면 다시 물어보십시오.

"내가 생각하는 충만함은 어떤 것인가?"

마지막으로 질문하세요.

"충만한 삶을 만들어 가기 위해 무엇을 지금 해야 하는가?"

이때 자신이 원하는 것만이 아니라 삶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책임을 생각하십시오. 원하는 것은 욕망으로 이어지지만 책임은 삶의 의미로 이어집니다.


인간을 다른 말로 하면 책임지는 존재입니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드러커라면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자신이 믿는 가치대로 삶을 살아가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바로 자네라네. 물론, 사회는 호락호락하지 않아. 많은 고통과 실패를 피할 수는 없네. 자신을 새롭게 하고 자신을 성장시키고, 자신이 꿈꾸는 사회를 위해 조금이라도 기여하면서, 그 결과로써 삶에 충실함을 더하는 사람은 오직 자네라네."


숨을 깊게 쉬라. 모든 일이 한 번에 일어나리라고 기대하지 마라. 당신이 있는 곳에서 시작하고 한걸음 한 걸음씩 충만한 인생을 위해 행동하라.
(피터 드러커)




http://jakiva.tistory.com
https://www.facebook.com/jay.moon.1029


저자 도서

mvAA9tAISJKsqgN3aYPFEBn6Rz4.jpg

http://www.yes24.com/24/goods/33234955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피터 드러커로 경영과 세상 읽기(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