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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재미있을 수 있을까?

빈 페이지의 즐거움

by 작가와
그림1.png 구글AI 로 만든 이미지

빈 페이지의 즐거움: 글쓰기가 재미있을 수 있을까?

우리는 종종 글쓰기를 과제로, 장애물로, 시지프스적 노력으로 여긴다. 하지만 나는 생각해본다. 글쓰기 행위 그 자체가 기쁨의 원천이 될 수 있을까? 이건 단순히 완성된 원고나 출판된 작품의 성취감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과정 자체에서 진정한 즐거움을 찾고, 우리 정신 깊숙한 곳의 근본적인 무언가를 건드리는 것에 관한 것이다. 글쓰기가 어떻게 깊은 즐거움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감히 말하건대, 재미있을 수 있는지 함께 탐험해보자.


시간을 거슬러: 즐거움을 위한 글쓰기의 진화

기원을 생각해보자. 글쓰기는 지극히 -매우 지극히- 실용적인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 점토판과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는 주로 기록 보관에 사용되었다. 재고 목록, 거래 내역, 통치에 필요한 것들 말이다. 재미는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도 뭔가 더 많은 것의 힌트가 있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는 "영혼을 치유하는 집"이라는 개념이 있었는데, 단순한 기록을 넘어 글쓰기가 마음을 달래고 치유하는 치료적 힘을 가진 곳으로 인정받았다.

시간이 흐르고, 글쓰기는 점차 개인적 표현의 수단으로 변모했다. 일기와 편지가 널리 퍼지며 자기 성찰과 연결의 통로를 제공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내밀한 토로나 아나이스 닌의 거침없는 탐구를 떠올려보라. 19세기에는 글쓰기가 여가 활동으로 부상했다. 워싱턴 어빙 같은 작가들은 순전히 즐거움을 주기 위해 이야기를 썼는데, 이는 문자의 상업적 기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20세기 후반에는 제임스 페네베이커의 연구로 글쓰기의 치료적 효과가 공식적으로 인정받았고, 표현적 글쓰기가 정신 건강에 미치는 깊은 영향이 부각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명료함을 위한 저널링부터 순수한 사랑으로 복잡한 허구 세계를 창조하는 것까지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목격한다.

- 우리에게도 군대 간 삼촌 또는 아저씨와 주고 받는 '위문 편지'란 게 있었다 -


한국의 전통: 풍류와 문자향

또한 우리나라도 글쓰기를 즐거움으로 여긴 오랜 전통이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문자향(文字香)'이라 하여 글자에서 풍기는 향기를 즐겼고, '묵희(墨戱)'라는 말로 먹과 붓을 가지고 노는 즐거움을 표현했다. 이들은 시회(詩會)를 열어 자연 속에서 함께 시를 짓고, 즉흥적으로 한시를 주고받으며 문학적 교류를 즐겼다. 특히 '시제(詩題)'를 정해 경쟁적으로 시를 짓는 것은 일종의 지적 유희였다.

여성들도 글쓰기의 즐거움을 누렸다. 한글 창제 이후 양반가 여성들은 언간(諺簡)이라는 한글 편지를 통해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깊은 감정까지 자유롭게 표현했다. 허난설헌은 규방에 갇힌 삶의 고통 속에서도 시 쓰기를 통해 정신적 자유를 누렸고, 신사임당은 그림과 함께 시를 남기며 예술적 즐거움을 추구했다.

현대에 들어서는 1970-80년대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한 '문우회(文友會)' 문화가 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자신의 글을 낭독하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글쓰기의 즐거움을 공유했다. 오늘날에는 '브런치', '네이버 블로그' 같은 플랫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을 기록하고, '글챌린지'에 참여하며 글쓰기를 일종의 놀이이자 자기 돌봄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 이처럼 한국의 글쓰기 문화는 고유한 방식으로 즐거움과 치유, 공동체적 연결을 추구해왔다.


놀이의 심리학: 글쓰기는 왜 기분 좋게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무엇이 글쓰기를 재미있게 만드는가? 우리는 "재미"라는 것 자체를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재미가 항상 요란한 웃음과 억누를 수 없는 기쁨에 관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완벽한 단어를 찾는 조용한 만족감, 매력적인 문장을 만들어내는 미묘한 전율이기도 하다.

본질적으로 "재미"는 놀이, 자유, 즐거움, 그리고 내재적 향유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외부 보상이 아닌 그 자체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 개념이 중요해진다. 몰입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당면한 과제에 완전히 빠져드는 강렬한 집중 상태다. 우리가 진정으로 몰입할 때 글쓰기는 분명 이런 상태를 유도할 수 있다. 우리는 도전받지만 우리의 기술은 그 과제에 충분하다. "내면의 비평가"는 사라지고, 우리는 창조 행위에 몰두하게 된다.

이점은 "재미"라는 주관적 경험을 넘어선다. 글쓰기는 정신적 명료함을 제공하여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처리하도록 돕는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엔돌핀과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하여 자기 돌봄의 한 형태로 작용할 수 있다. 기술을 쌓고 진전을 목격하면서 얻는 자신감도 있고, 순수하고 가공되지 않은 창조의 기쁨도 있다. "단어를 가지고 놀고", 이야기를 탐험하고, 타고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 말이다.

- 몰입 시리즈를 안 읽어봤다면 한 번은 읽어보길 정말 추천한다 -


현재의 논쟁: "재미"가 핵심일까?

하지만 "재미"가 핵심일까? 우리는 종종 "고통받는 예술가"라는 상투적 표현을 접한다. 창의성이 고통과 투쟁으로 연료를 얻는다는 생각 말이다. 고난이 위대한 예술의 전제조건이라는 낭만적 관념이 있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은 오류일지도 모른다. 고통은 방해물이 될 수 있고, 창작 과정을 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 기쁨과 행복도 똑같이 타당하고, 어쩌면 더 강력한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솔직히 말하자. 글쓰기가 항상 재미있는 것은 아니다. 힘든 작업이고, 고된 노동이고, 직업이 될 수 있다. 좌절, 자기 의심, 순전한 고역의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즐거움의 단계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브레인스토밍은 신나는 일이 될 수 있다. 세련되게 다듬고 광을 내는 세심한 과정인 편집은 깊은 만족감을 줄 수 있다. 그리고 궁극적인 만족감은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세상과 공유하고, 그 영향을 목격하는 데서 오는 경우가 많다.

물론 외부 압박은 기쁨을 죽일 수 있다. 마감 시한, 비판적 리뷰, 끊임없는 자기 홍보의 필요성 – 이런 것들은 글쓰기 과정에서 생명력을 빼앗아갈 수 있다. 그래서 순수한 즐거움을 위한 "자기 자신을 위한 글쓰기" 행위가 매우 중요해진다. 그것은 자유를 주고, 압박을 줄이며, 기술의 내재적 즐거움과 다시 연결되도록 해준다.

문화적 뉘앙스도 고려해보자. 문학에서의 유쾌함은 서구 문화에서 종종 받아들여지지만, 특히 유교 철학의 영향을 받은 일부 동양 전통에서는 유머와 경쾌함이 역사적으로 강조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장 진지한 문화에서도 유머는 지속된다. 그것은 사회 비평의 중요한 도구이자 역경에 대처하는 수단이며, 불굴의 인간 정신에 대한 증거로 작용한다.


글쓰기를 다시 재미있게 만들기: 작가, 교육자, 커뮤니티의 팁

그렇다면 글쓰기에서 어떻게 기쁨을 키울 수 있을까? 영감을 얻기 위해 현대 작가들을 살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닐 게이먼은 다양한 형식에서 자신의 창의적 기쁨을 따르며, 소설, 만화, 시나리오 사이를 자연스럽게 오간다. 조이 하조는 자신의 유산에 창의성의 뿌리를 두고, 아메리카 원주민 정체성에서 힘과 영감을 얻는다. 진정성, 헌신, 호기심 – 이것들이 공통된 실마리인 것 같다. 도전 속에서도 행위 자체에서 기쁨을 찾는 열쇠 말이다.

교육자들도 글쓰기 교육 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꾸고 있다. 완성된 결과물에서 과정 자체로 초점을 옮기고, 기술을 탈신비화하여 더 접근하기 쉽게 만들고 있다. 창의적 자유를 장려하고, 자유 글쓰기를 촉진하며, "최악의 첫 초안"을 받아들이고, 언어와의 장난스러운 실험을 권장한다. 매력적인 주제, "우스운" 소재, 멘토 텍스트를 사용하여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글쓰기에 대한 사랑을 키운다.

커뮤니티의 힘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글쓰기는 고독한 추구일 수 있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다른 작가들과 연결되면 지지, 책임감, 공유된 목적 의식을 얻을 수 있다. 아이디어 교환은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귀중한 피드백을 제공하며, 협업의 문을 연다. 명상과 호흡법을 통합한 "글쓰기 서클" 같은 구조화된 연습은 몰입 상태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왓패드나 미라퀼 같은 온라인 플랫폼은 연결, 피드백, 창의적 작품 공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개별 작가인 당신을 위한 실용적 팁은 어떨까? 작은 것부터 시작하고 "작은 성공"을 축하하며 자신감을 키워보자. 자유 글쓰기와 탐험을 받아들이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쓰는" 것을 허용하라. 영감을 주고 창의성을 기르는 공간인 도움이 되는 환경을 만들어라. 프롬프트, 음악, 시각 자료를 실험하여 상상력을 자극하라. 단어 수 도전이나 진행 추적으로 과정을 게임화하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정으로 당신을 매료시키는 것에 대해 써라.

- 그 뒤엔 일단 전자책을 출판하라, 기왕이면 '작가와'에서 -


글쓰기 재미의 미래: AI는 놀이 친구인가 위협인가?

마지막으로 인공지능의 역할을 고려해보자. AI는 글쓰기 즐거움에 친구인가 적인가? 한편으로 AI는 문법 검사, 맞춤법 검사, 서식 지정 같은 지루한 작업을 간소화하여 창의적 사고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해준다.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과 작가의 블록 극복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정당한 우려도 있다. AI가 독창적 사고를 감소시키고, 콘텐츠를 획일화하며, 내재적 만족감을 줄이고, 자기 발견 과정을 약화시킬 수 있을까?

기술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인간 스타일을 모방하고 어조를 이해할 수 있는 미묘한 언어 모델의 출현을 목격하고 있다. AI가 텍스트, 이미지, 소리를 통합하는 멀티모달 스토리텔링이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다. 독자 선호도에 맞춰 적응하는 개인화된 내러티브가 곧 다가올 것이다. AI는 심지어 개인화된 피드백을 제공하고 진행 상황을 추적하는 "스마트 글쓰기 코치" 역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적 요소는 지속되어야 한다. 표절, 편향성, 지적 재산권을 둘러싼 윤리적 고려사항들이 다루어져야 한다. 인간 작가로서 우리의 역할은 진화할 것이며, 우리는 큐레이터, 편집자, 감정의 깊이와 독특한 목소리의 주입자가 될 것이다. AI는 대체자가 아닌 협력자로 봐야 한다.


결론: 여정을 받아들이자

글쓰기는 재미있을 수 있다. 그것은 깊은 심리적 보상을 활용하며 즐거움과 창의적 표현을 제공해온 풍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도전과 새로운 기술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페이지에 단어를 적고, 자신을 표현하고, 아이디어와 연결되는 핵심적 기쁨은 여전히 강력하고 본질적으로 보람 있는 경험으로 남아 있다. 이것은 찾아내고, 키우고, 축하할 가치가 있는 기쁨이다. 여정을 받아들이고, 빈 페이지가 당신만의 독특한 창의적 놀이의 캔버스가 되도록 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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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95% 이상은 AI가 써줬다. '작가와'홈페이지도 작가님들이 AI를 더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개편했다. 근데 역설적인 상황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냥 AI를 활용하는 건 나의 사고력이나 글쓰기 증진에 별로 도움되지 않는다는 걸. 이제 난 순수하게 내 경험과 머리에서 나온 글을 쓰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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