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생존 전략
얼마 전 사무실 풍경.
“오 팀장, 아까(30분 정도 전에) 말한 베트남 출판 계약 건, 독소조항이나 유의 사항들은 없는지 확인했어요?”
“아, 아까 메신저로 보냈습니다.”
“벌써? 이거 URL?”
“네, 그거 보시면 금방 이해하실거에요.”
URL을 클릭하니 ChatGPT와 나눈 대화 내용이 그냥, 바로 열렸다.
“…, …”
업무를 요청할 땐 ‘맥락(Context)’이 중요하다. 신입 사원에게 일을 맡길 때를 생각해보자. “자료 좀 찾아주세요”라고 툭 던지면, 10 중 9.999 엉뚱한 데이터를 가져온다.
“훈민정음의 경쟁사 3곳 A, B, C의 최근 3년 매출 추이와 주요 현황을 엑셀로 정리해주세요”라고 말해야 원하는 결과물이 나온다. AI도 똑같다. 질문하는 사람의 머릿속에 ‘정리된 구조’가 없으면, AI는 그저 뻔하고 평범한 답변을 내놓는다. 역설적으로 AI가 똑똑해질수록 질문하는 사람의 ‘디테일’이 결과물의 퀄리티를 결정한다.
2022년 12월, 팀원이 알려준 ChatGPT를 처음 써봤을 때 느꼈던 감정은 ‘환희’와 ‘공포’였다. 내가 20년 넘게 밥벌이 수단으로 삼아온 기획, 글쓰기 등을 이 녀석은 단 몇 초 만에 해치웠다. ‘대애애애박!’과 함께 ‘어… … ?’ 묘한 패배감이 들었다. 실제로 채용이 줄고 있단 뉴스가 점점 더 빈번하게 보인다.
“사람이 하던 일을 AI가 다 하면, 나는 뭘 준비해야 하지?”
이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유튜브를 보면 온통 ‘3시간 걸릴 일을 3분 만에 끝내는 법’ 같은 스킬 영상뿐이다. 보고 있으면 ‘대박이다’ 싶다가도, 영상을 끄면 ‘나는 이 속도를 못 따라가겠는데?’ 하는 자괴감이 밀려온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니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생성(Generate)’의 비용이 0에 수렴하는 시대다. 그렇다면 값이 비싸지는 건 무엇일까? 바로 ‘기획(Direction)’이다. AI는 생성을 기가 막히게 잘한다. 단, ‘무엇을’ 생성해야 할지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내가 내 업무의 본질을 꿰뚫고 있어야 AI라는 도구를 내 손발처럼 부릴 수 있다.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었다. 중요한 건 AI 툴의 이름을 외우는 게 아니라, 내 업무 프로세스 중 어디에 이 녀석을 끼워 넣을지 판단하는 ‘감’을 익히는 것이다. 게다가 AI는 온라인의 강자이지, 아직 오프라인까지 영역을 넓히진 못했다. 뭐, 피지컬 AI로 언제까지 지속될 지 모르지만.
그래서 나는 거창한 공부 대신 아주 사소한 환경 설정부터 바꿨다. 크롬 브라우저를 켰을 때 가장 먼저 뜨는 화면을 포털 사이트가 아니라 ChatGPT로 바꾼 것이다. 눈에 밟혀야 한 번이라도 더 말을 걸게 되니까. 그렇게 AI는 ‘미지의 기술’에서 ‘내 말을 잘 듣는, 하지만 가끔 멍청한 조수’가 되었다. 직장인인 우리에게 필요한 건 AI 전문 자격증*이 아니다. 내 업무의 루틴 속에 AI를 슬쩍 밀어 넣는 개입이다. 일단 브라우저 시작 화면부터 바꿔보면 어떨까?
그렇게 바뀐 화면으로 내가 구체적으로 무슨 짓(?)을 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지 개인 생각을 천천히 풀어보려 한다.
PS. *자격증을 폄훼하는 건 아니니 오해는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