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그만 쌓고, ‘생각하는 근육’을 키워야 할 때

AI가 나보다 똑똑해진 시대, 나의 ‘대체 불가능한 무기’는?

by 작가와

띵동. 문자가 왔다.

‘[해외승인] USD 20.00’

어느새 내 손가락은 건방지게 자아를 가지고 유료 구독 버튼을 눌러버렸다.

‘한 달만 써보고 해지해야지.’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너를 해지한단 거짓말을 두고 돌아오긴 했지만.

해지는 커녕 다음 달에 또 결제 문자가 날아오거나, 심지어 구독한 사실조차 까먹는다. 심지어 오늘, 구독 리스트를 살펴보다가 연간 결제를 한 것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처음엔 ChatGPT 하나면 충분했다. 그러다 커뮤니티 멤버들이 “Claude가 글은 더 잘 써요”라고 해서 결제하고, “이미지 생성은 미드저니가 짱에요”라는 말에 또 지갑을 연다. 정신을 차려보면 카드 값은 슬금슬금 오르고, 브라우저 상단에는 온갖 AI 즐겨찾기 탭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일종의 ‘AI 장발’ 상태랄까.

그런데 멍하니 모니터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 AI가 이렇게 똑똑해지는데, 나는 뭘 잘해야 하지?'

사실 이 질문이 이 글을 쓰게 만든 진짜 이유다. 우리 세대(대충 내 나이는 아래 PS를 보면 짐작 갈 것이다)의 커리어 로드맵은 비교적 단순했다. 친척들이 늘 하던 말, 기억나는가?

“한 우물만 파라.”

“전문성을 길러야 오래 살아남는다.”

“그래도 자격증 하나는 따 놓으면 좋단다.”

성실하게, 꾸준히, 한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되면 평생직장은 아니더라도 ‘먹고사니즘’은 해결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가끔 주변에서 “넌 왜 자격증 안 따놨어?”라고 뼈 때리는 질문을 던져도, “이 분야에선 내가 전문가야”라고 방어할 수 있었다.

이런 느낌.png 우리가 일하는 판은 이런 느낌? Gemini 활용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일하는 판은 달라졌다. 내가 가진 ‘전문 지식’은 AI가 3초 만에 더 방대한 양으로 내놓는다. 정답이 있는 문제는 AI가 다 풀어버리고, 이제 남은 건 정답 없는 ‘오프라인 비정형 문제’들 뿐이다. 예전엔 “지식 + 성실함”으로 버텼다면, 지금은 “새로운 툴을 빨리 배워서, 내 경험과 엮어, 남들과 다르게 풀어내는 힘”이 없으면 도태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직장인인 우리는 불안하다. ‘그래, 스펙을 더 쌓자. 남들이 한다는 거 다 해보자.’ 퇴근하고 코딩도 배우고, 영어 회화도 다시 끊고, 데이터 분석 강의도 듣는다. 일정표는 빽빽한데 이상하게 불안감은 줄어들지 않는다.


왜 그럴까? 본질은 ‘무엇을 하나 더 배웠느냐(What)’가 아니라, ‘새로운 것을 어떻게 소화하느냐(How)’로 게임의 룰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스펙 리스트를 아무리 길게 늘려도, ‘일하는 방식’과 ‘생각하는 근육’이 그대로라면 그건 제자리걸음이다. 헨리 키신저의 『AI 이후의 세계』나 유발 하라리의 『넥서스』 같은 벽돌책들을 읽으며, 나는 직장인의 생존 키워드를 몇 가지로 좁혔다.

AI의 답변을 순진하게 믿지 않고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눈.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의견과 사실을 분리해 논리를 세우는 힘.

동료나 고객을 나와 다른 경험을 한 파트너로 보는 태도.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업데이트하려는 뻔뻔함.

그리고 여기에, AI를 내 손발처럼 부리는 감각 등등.


재미있는 건, ‘AI 리터러시’를 빼면 전부 예전부터 중요하다고 했던 ‘기본기’라는 점이다. 단지 예전엔 ‘있으면 좋은(Nice to have)’ 능력이었다면, 이젠 ‘없으면 죽는(Must have)’ 생존 기술로 격상되었다는 차이뿐이다.

반대로 힘을 빼야 할 것도 분명해졌다. 단순히 암기해서 자격증을 따거나, 남들이 좋다는 툴을 무작정 구독만 하는 행위다. (카드 명세서를 보면 속도 쓰리다…) 그래서 오늘은 정답 대신 질문 하나를 던지려 한다.


“AI가 나보다 똑똑해진 이 시대에, 나의 ‘대체 불가능한 무기’는 무엇인가?”

이 질문을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지루한 회의 시간에도 마음 한구석에 걸어두면 좋겠다. 다음 글부터는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뻘짓 또는 경험담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풀어보려 한다.


P.S. 나도 한때는 ‘지식의 양’이 중요했던 시기를 겪은 세대다. 대학 한 번 가보겠다고 공부했던 필수 과목이 이 정도였다. 국어, 영어, 수학(미적분, 확률통계 포함),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국사, 세계사, 한국지리, 세계지리, 정치경제, 국민윤리, 사회문화…

그나마 고등학교 중간에 본고사가 폐지되어 중국어가 빠진 게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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