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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라나 Dec 29. 2022

저에게 12월 32일은 없는 건가요?

30대를 마무리하며

"10  9  8  7  6  5  4  3  2  1  0.

여러분, 드디어 20XX 년이 밝았습니다."

 티브이에선 한창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연이어 새해를 알리는 멘트와 함께 타종행사 중계를 보여준다.

'틱' 티브이를 끄고 잠자리에 눕는다. 이제 한 살 더 먹었구나.



 30대엔 내 나이를 잊어버리는 날이 많았다.

아이들의 나이와 개월수, 발달정도는 빠꼼히 잘 알고 있으면서  내 나이와 내 발달정도에는 무척 둔감했다. 가끔씩 내 나이를 물어오는 질문을 받을 때면 한참을 되돌아 세어봐야만 내 나이가 나왔다. 때로는 그냥 84년생이에요. 하면 그만이긴 했지만.


 하지만 올해는 무척 달랐다. 1년 내내. 내 나이를 외우고 살았다. 이번달은 39.5살...... 12월은 39.9살

체감으로 내 나이가 다가왔다.


 그렇다. 이제 난 30대가 며칠 안 남은 여자다. 오늘 기준으로 딱 3일 남았다.

지난 1년을 30대가 끝난다는 생각에 참 슬프다 생각했는데, 이젠 담담해졌다.


 20대에서 30대 넘어올 땐 나의 30대가 밝고 찬란할 것 같은 기대감에 가득 찼다. 무얼 시켜도 다 할 자신이 있었고 무엇이든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솟았다. 이제 서른쯤 되었으니 인생의 진리를 많이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30대가 지나고 40대에 발을 들이려고 하니 왜 이렇게 구정물에 발을 담그는 느낌인지 모르겠다. 정말 가기 싫은 데 할 수 없이 떠밀려 들어가야만 하는 느낌이다.




내가 생각하는 40대는 이렇다.

 

40대의 삶은 뭔가 좀 우아한 느낌이어야 한다.

30대는 그저 바쁘게 일과 육아를 하면서 달리는 느낌이라면 40대는 커피 좀 들고 책 좀 읽을 수 있는 여유가 느껴지는 삶이어야 한다. 


40대의 차림새는 심플하고 매력적인 모습이어야 한다.

명품까진 아니지만 단정하고 멋스러운 옷과 가방이 나를 좀 더 아름답도록 돋보이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40대의 말투는 우아하고 품격 있어야 한다.

도도하지만 매력 있고 고급스러운 어휘를 구사하며 지식과 여유가 드러나는 느낌이어야 한다




현실은 다르다. 

현재 나는 아들 둘 있는 씩씩한 여장부가 되어가고 있다.


내 차림은 언제든 이 두 녀석을 방어할 만큼 튼튼하고 간편하게 무장되어 있다.

뭐가 묻어도 티도 안나는 편하고 어두운 계열의 옷차림, 신발은 운동화가 가장 적당하며 가방은 튼튼하고 짐을 많이 넣을 수 있는 크로스백이 최고다. 가끔 야외활동이 길어질 것 같은 날에는 백팩에 여러 가지 물건을 쑤셔 넣어서 메고 거기에 늘어나는 짐에 대비해 에코백까지 챙기는 건 필수가 되어버렸다.

 

커피는 아이들을 돌보다가 힘들어질 오후 타이밍에 믹스커피로 한잔 들이켜 줘야 하며 책은 그저 식탁옆에 굴러다니다가 반찬 양념만 안 묻으면 다행이다.

 

말투는 세상 씩씩한 사령관 말투. 지시와 명령은 아들들을 잘 지도할 수 있는 노하우이며 아들들에겐 복종만이 남았다.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내 가슴은 조금씩 설레었고

첫눈이 아름답게 내리던 날 네가 올 때가 됐다 생각했어

(되도록 지나가는 계절을 담담히 받아들여 보았어)


하지만 올해가 다 가도록 마지막 달력을 넘기도록 

너는 결국 오지 않고 새해만 밝아서 기뻐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만 울었어

(결국 너는 오고 말았고 기뻐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만 울겠지)


내게 1월 1일은 없다고 내 달력은 끝이 아니라고 32일이라고 33일이라고 

네가 올 때까지 나에겐 아직 12월이라고

(나도 아직 12월이라고, 시간을 붙잡고 싶다)


- 별 '12월 32일' -



나의 40대는 이렇게 맞이해야 하는 것인가. 슬프지만 이게 현실이다. 

이 노래에서는 그가 오길 간절히 바라고 기다리고 있지만 나는 그가 안 오길 아주 아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하지만 이 노래와 같은 심정으로 단 하루라도 붙잡고 싶다. 


저에게 12월 32일, 33일..... 등등은 이제 없는 건가요?




이제 난 미련 가득 남은 30대와 이별을 3일 앞두고 있다.

잘 가, 행복했어 나의 30대. 다시 만났으면 좋겠지만 그럴 순 없겠지?

(내년 6월에 나이가 깎인다는데, 그럼 우리 살짝 다시 만나볼까?)  



사진출처 - pixabay  

가사출처 -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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