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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레나 Aug 27. 2020

내 친구의 소개팅

소개팅 남의 '초승달 문고리설'


오늘 산책을 하다가 여느 날처럼 밤하늘을 바라보았는데 초승달이 보였다. 초승달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대학시절, 나의 제일 친한 친구의 소개팅 이야기이다. 나의 베스트 프렌드인 그녀는 성격도 싹싹한 데다 여성스럽기까지 해서 주변 남자 선배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항상 그녀는 주변의 소개팅 제의가 끊이지 않았는데, 그날도 소개팅이 잡혀서 아침에 했던 화장을 굳이 다시 지우고 정성껏 차곡차곡 화장을 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매번 소개팅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나에게 풀어내는 소위 '소개팅 썰'을 듣는 재미가 쏠쏠해서, 얼른 친구의 소개팅이 끝났으면 하고 바랐다. 당시 함께 자취를 하고 있었어서 그녀가 소개팅을 하는 동안 나는 썰을 기다리는 들뜬 마음과 함께 집에서 무한도전을 다운로드하여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나 친구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어땠어 어땠어? 잘생겼어?"라고 다그치는 나의 물음에

"네가 나갔어야 했어" 이러는 것이었다. 응?

생각보다 상대 남자분이 감성적이고 세심하셔서 내 스타일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추성훈 같은 상남자를 좋아하는 그녀의 스타일에는 영 아니었나보다. 그녀가 말해줬던 것 중에 생각난 이야기가 그 남자분의 일명 '초승달 문고리설'이다.


둘이서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학교 캠퍼스를 같이 걷고 있었는데 남자분이 초승달을 바라보며


" 밤하늘을 볼 때마다 가끔씩 저는 이런 상상을 해요. 까만 하늘에 초승달이 떠있는 게 아니라, 사실 밤하늘은 달 색깔처럼 밝고 노란데 검은색 도화지 같은 게 덮여 있어서 딱 저기만 뚫려 있는 거예요. 그래서 손가락을 초승달 문고리에 넣고 확 - 하고 뜯어내리면 밤하늘이 확- 환하게 밝아질 수도 있겠다 라는 상상을 해봤어요. "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말에 친구는 감당할 수 없는 그만의 '갬성'을 느꼈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집에 온 것이다.

그녀는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야"라고 하며 네가 나갔으면 좋아했을 것이라고 했다.


내 친구가 아닌 내가 그 소개팅을 나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그녀와는 상반되게  "어머어머 어쩜 그런 생각을! "이라고 감동을 했을 수도 있겠다. 이 일화가 7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이야기가 떠오르는 걸 보면, 그녀가 아니라 내가 나갔으면 아마 몇 번의 데이트는 더 이어졌으려나?

돌고 돌아 나는 어차피 지금의 남자 친구를 만났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지만, 초승달을 보면 괜스레 그 소개팅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초승달을 문고리로 표현했던 갬성적인 남자와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내 친구의 웃픈 이야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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