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흥선대원군의 마음을 녹인 한 마디

같이 들으면 좋은 노래 - 박소은 <눈을 맞춰 술잔을 채워>

by 잼인

“네가 무슨 노래를 듣는지 궁금해.”


음악 애호가들에게 이 말은 거의 고백과도 같다. 내 취향의 노래를 궁금해 한다는 건 내 우주에 들어오고 싶다는 노크에 가깝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말을 친한 친구로부터 들었다. 좋아하는 동네 엘피바에 친구들을 데려간 날이었는데, 각자 듣고 싶은 노래를 신청하면 된다고 알려줬더니 친구는 저런 다정한 말을 들려주며 내 신청곡을 듣고 싶다고 했다. 애정 가득 담긴 호기심에 놀라 “헉” 소리를 내며 놀라고는 “너 정말 다정한 친구구나…”라고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는 이런 내 반응에 ‘정말 궁금한 것뿐인데, 그게 왜 다정한 거지?’ 라는 표정이었지만, 지금부터 이 글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남겨보려고 한다.


우선 취향의 폐쇄성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단어 선택 때문에 갑자기 학문적인 글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내겐 그만한 학식이 없으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취향의 사전적인 정의는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이나 경향”인데, 여기서 주체는 ‘나’이다. 그러니까 개인이 하고 싶어하는, 좋아하는 무언가이기 때문에 지극히 개인적이고 각자 다른 취향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 말인즉슨, 내 취향은 나라는 담을 넘어가기 쉽지 않고 외부에서 그 담을 넘어오기도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 경우엔, 주변에서 이 노래 좋다고 추천을 해줘도 아예 그 노래를 듣지도 않는다거나 들어도 별 감흥 없이 흘려넘기게 된다. 근데 웃긴 건, 감흥 없던 곡도 나중에 다른 기회로 다시 듣고는 ‘내 취향이다!’하고 플레이리스트에 담기도 한다. 아마 타인으로부터 넘어오는 것보단 내가 발견하고 문을 열어주는 것이 취향의 영역에 들어오기 수월한 거겠지.


이렇게 취향에 견고한 벽이 있으니, 타인의 취향을 궁금해하는 일은 극히 드물 수밖에 없다. 가끔이지만 궁금해질 때가 있긴 하다. 가령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나도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중학교 때 좋아하던 애가 그린데이와 린킨파크 노래를 듣는 걸 알게 되어 따라서 열심히 듣곤 했다. 또는 나랑 취향이 참 잘 맞는 것 같은 사람이라, 이 사람이 듣는 노래는 나도 좋아할 가능성이 클 것 같다는 생각에 그의 취향을 궁금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타인 그 자체를 향한 순수한 호기심이라고 할 수 없다. 상대를 스포티파이처럼 여기는… 불순한 목적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말로 설명하긴 어려운 감정과 경험이 음악에는 녹아있다. 그래서 음악 취향을 궁금해한다는 건 타인이 어떤 사람인지 더 알고 싶어 하는 것이기에 엄청난 애정과 호감이 담겨있을 수밖에 없다. 그날, 날 알고 싶어 하는 다정한 친구에게 기꺼이 내밀한 감정이 얽힌 노래를 공유했다. 우리는 함께 루시드폴의 <춘분>을 들으면서는 스스로를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을, 여유와 설빈의 <거울을 봤어요>를 들으면서는 현실에 치여 공허해진 마음을 공유했다. 평소 우리가 같이 놀 땐 말하지 않았던 감정들이었다.


최근에 내가 친구처럼 이렇게 순수하게 다른 누군가의 취향을 궁금해한 적이 있나 반문했는데, 거의 없었다. 한 살 한 살 먹으며 취향이 뚜렷해짐과 동시에 강경한 쇄국 정책을 펼치는 취향 흥선대원군이 되어가고 있구나.


단순히 음악 취향에 한정된 것도 아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그렇다. 예전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궁금해하고 새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고 싶었는데, 갈수록 호기심과 타인을 알려고 하는 노력이 확연히 줄고 있다. 그래서 타인에게 심드렁한 요즘의 나와 달리, 눈을 반짝이며 날 알고 싶어 하던 친구의 모습이 크게 인상 깊었나 보다.



친구들과 보낸 그 날의 분위기가 꼭 이 노래 같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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