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어>, 1997
원래 제목이 ‘전도사’였다고 한다. 최면으로 사람을 잔혹하게 죽이게끔 하는 연쇄살인마와 그를 잡으려는 형사의 추적을 다룬 미스터리 스릴러. 이렇게 보면 도대체 뭐가 특별하냐, 최면이라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2024년도에 바라본 이 영화의 핵심은 두 가지다.
먼저 마미야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빠짐없이 던지는 ‘당신 누구야?’란 질문. 이 질문을 받는 사람은 먼저 당황한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는 잊어버렸다고 하면서, 그는 시종 그는 상대방에게 누구냐고 묻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이름과 직업으로 질문에 대답하던 사람들은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마미야의 말에 스스로의 내부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그다음에 그들은 태연히 살인을 한다. 창녀를, 아내를, 동료를, 남자를. 이윽고 마미야는 최면을 활용해 한 인간의 내부의 억눌린 감정을 찾아내고, 이를 살인을 통해 해소하는 것을 '치료'라고 보는 사상의 충실한 전도사라는 것을 알게 된다.
현시대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말하는 것에 그 어느 시대보다 몰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플랫폼이 있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자유롭고, 사람들은 스스로를 브랜딩 하여 그 고유성을 가치로 거래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시대적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사람, 혹은 전통적인 의미의 커뮤니티는 모두 사라진 현시대에서 자신이 머물 수 있는 커뮤니티를 찾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를테면 가족과 친족의 유대성은 옅어지고, 학교는 졸업했으나 사회에는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은 취업준비생은?
그렇게 사람들은 어떤 조건 없이 쉽게 받아들여지고, 접근성이 좋은 커뮤니티인 온라인 커뮤니티로 흘러 들어간다. 오늘날 다수의 사회 문제와 사건들이 온라인 커뮤니티가 중심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그야말로 사회에서 억눌린 모든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발언할 수 있는 장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면이 아니며, 익명이기에 더욱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원시시대부터 우리는 무리를 짓고 살았다. 야생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서는 무리를 지어 사는 것이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처음은 그러했을지라도, 점점 무리를 짓고 사회를 이루고 사는 것은 인간에게 더 큰 의미로 분화하기 시작했으리라. 현재도 마찬가지다. 인간이라면 안전한 커뮤니티 안의 소속원으로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이고 싶기를 바란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란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의 핵심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중요한 사람이란 느낌을 받고 싶어 한다'는 사실인 것처럼.
이러한 시대상을 생각해 보았을 때 <큐어>를 보며 느낀 것은 '돈'이라는 화폐가 아니라 '인간 자체'가 거래 가치가 된 세상에, 자신의 이야기를 찾기 위해 애쓰는 자들과 거기에서 탈락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내세울 수 없는 자들 모두가 동시에 스스로의 존재감에 대해 언제든 취약해질 수 있는 상황에 처해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적 의미의 커뮤니티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사회적 제도에 대해 고민해 보기도 했고,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작품을 통해 말할 수 있는 중요한 가치에 대해서 고민하게끔 하기도 했다. 20여 년 전 영화가 다시금 그럴듯하게 느껴지는 세상인 것이다.
두 번째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이 작품에서 쓰고 있는 샷(shot)의 사이즈다. 요즘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사이즈에 따른 연출에 대해 인식했던 것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인식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상업'의 공식이니까. 그렇게 의미 없는 샷들의 난무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일까.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인 영화 <큐어>의 롱샷이 너무나도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런 장르에서 이 정도로 인물을 멀리서 바라보게끔 하는 영화가 최근 있었던가? 그나마 떠오른 것은 에드워드 양 감독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었다.
롱샷 혹은 풀샷은 인물은 물론 인물이 있는 공간을 전부 미장센으로 삼는다. 공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공간과 인물을 배치하는 방법에 따른 효과가 더 크다. 그렇기에 인물의 감정과 장면의 충격을 극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에서 이와 같은 쇼트는 다소 낯설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샷 사이즈가 이 영화를 더욱 서늘하게 만든다. 파편화된 장면, 극도의 몰입을 유도하는 몽타주가 아닌 우리가 일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의 사이즈를 고수하며, 심지어 어떤 장면에서는 롱테이크로 진행되는 크라임씬은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마치 내가 현실에서 본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물론 샷 사이즈를 영화 분석의 차원에서 핵심으로 짚은 것이 아니다. 이 영화를 24년도에 보면서 영화의 형식과 상업/비상업을 나누는 샷 사이즈와 연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샷 사이즈마저도 변화한다, 아니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이 내가 주목한 핵심이었다.
최근 아이돌의 VR 콘서트를 관람하고 오면서 시점과 시선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아진 것에 더해 우리가 이야기를 전달함에 있어 영상 문법에서도 혁신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기획, 컨셉, 시나리오도 중요하지만 결국 이를 구현해 내는 영상의 스토리텔링도 우리가 가치 있는 것을 전달하고 있는가? 우리가 관객에게 어떤 강렬함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란 고민이 필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