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몇 달 앞두고 안정적으로 합격했던 Goldman Sachs의 입사 제안이 철회된 지 어느덧 두 달가량이 지났다. 가끔은 문득 그 일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미 오래전에 지나간 이야기를 계속 붙잡고 있을 여유는 없다. 이 시기에는 석사 과정, 조교 업무, 인터뷰 준비, 인턴십, 그리고 졸업 이후의 거취까지 동시에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보냈다. 후회하거나 감정에 잠길 시간조차 없이 시간은 지나갔다.
5월 말, 졸업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Boston Consulting Group에 합격한 동기, 중국으로 돌아가기로 한 친구, 영국인이지만 프랑스 사모펀드로 향하는 친구까지. 같은 강의실에서 비슷한 고민을 나누던 동기들이 하나둘 각자의 방향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동안 여러 유명 증권사와 테크 기업의 인터뷰를 봤고, 몇몇은 마지막 라운드까지 비교적 안정적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결과는 늘 실망스러웠다. 어떤 경우에는 인터뷰가 모두 끝난 뒤에야 비자 스폰서십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어떤 경우에는 연락을 주고받던 인사담당자가 갑자기 잠수를 타기도 했다. 포지션 자체가 사라지는 일도 있었고, 단순히 인터뷰를 망친 날도 있었다.
그렇게 몇십 건의 인터뷰를 봤지만, 손에 쥔 오퍼는 없었다. 이유조차 기억나지 않을 만큼 다양한 이유로 탈락했다. 길게는 한두 달을 매달려 준비한 프로세스도 있었고, 어떤 회사는 모든 팀원과 1:1 인터뷰를 진행하느라 몇 시간씩 이어지는 날도 있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탈락 통보를 받는 날이면, 그날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단순히 체력적인 문제를 넘어서는 피로감이었다. 더 허탈했던 건 대부분의 경우 피드백조차 없이 자동 생성된 차가운 이메일 한 통으로 모든 과정이 끝난다는 점이었다. 몇 달 동안 쌓아온 긴장과 스트레스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다음 인터뷰를 볼 회사에서는 내가 이전 인터뷰에 어디까지 갔는지, 블랙락과의, 아마존과의 대화에서 어떤 멋진 답변을 했는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는 과정을 반복할 뿐이다.
동전 넣고 하는 게임조차 몇 판 지나면 세이브 포인트가 생기는데, 이 구직 과정에는 그런 개념이 없다. 이미 지원했던 회사라도 다른 포지션이면 이력서부터 다시 올려야 한다.
하지만 이런 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몇 달이 남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미국 회사에 지원할 기회가 언제 올지 알 수 없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계속 지원서를 넣었다. 그때 한국 증권사의 미국 지사에서 연락이 왔다. 아직도 그날 아침이 기억난다. 졸업식에 맬 넥타이가 도착했다는 알림을 받고 택배를 찾으러 1층으로 내려가던 중이었다. 휴대폰에 뜬 메일 하나. 한국 이름의 인사담당자가 보낸 인터뷰 스케줄링 메일이었다.
문제는 내가 지원했다는 사실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 회사가 뉴욕과 서부에 지사가 있다는 건 상식으로 알고이었지만 여기서 무슨 채용을 하는지 도 모르고 있었다. 어떤 포지션인지도, 언제 지원했는지도 전혀 감이 없었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지원서를 넣다 보니, 그중 하나였겠거니 생각하고 일단 인터뷰를 보기로 했다. 첫 인터뷰가 시작되기 전까지도 내가 어떤 포지션에 지원했는지 끝내 찾지 못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몇 번의 인터뷰를 무난하게 마쳤고, 예상보다 빠르게 결과가 나왔다. 합격이었다.
비자가 필요한 외국인이라는 사실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미국에 있는 한국 기업이고 한국인이 많은 환경이라 그런지, 전체적인 프로세스는 훨씬 명확하고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막상 합격을 받고 나니, 오히려 고민이 시작됐다. 한국 회사라면 굳이 미국에서 다닐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졸업이 코앞이었고, 당장 어딘가에는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미국을 비롯해 외국에서 외국인으로 그 나라에 체류하는 데는 제약이 많다. 그중 가장 기본적인 게 아마 소속일 것이다. 학생이라면 학교에, 그렇지 않다면 회사에. 어딘가에 속해 있어야만 이 나라에 머무를 수 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내가 원하는 일이나 커리어에 대해 고민하기 이전에, 나의 ‘적법한 존재’ 자체부터 고민하게 된다. 이 부분은 이전 글에서도 간단히 언급했지만, 추후 실제로 겪고 있는 ‘그냥 직장인’의 관점에서 비자 관련 이야기는 따로 정리해 볼 생각이다.
어쨌든, 학생 비자가 끝난 뒤에는 Optional Practical Training, 흔히 OPT라고 불리는 기간이 있다. 일정 기간 동안 미국에서 배운 내용을 실무에 적용하며 취업을 할 수 있도록 주어지는 시간이다. 보통은 약 두 달 정도의 유예 기간을 활용해 구직을 이어가는 전략도 가능하지만 나는 그마저도 스스로 없애버렸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골드만에 합격하면서 OPT의 시작일자를 졸업 다음 날로 정해버렸고, 그 결과 졸업과 동시에 어디든 취업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가능하면 미국 회사에서 경험을 쌓고 싶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아 보였고, 이대로라면 (한국회사의) 미국 지사 직장생활을 경험하는 것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처럼 보였다. 이게 과연 나에게 좋은 선택인지에 대해서도 계속 고민했던 것 같다.
이런 상황을 회사 멘토에게 이야기하니, 인턴십을 하던 회사는 내가 이미 알고 있던 대로 현재 정규직은 뽑고 있지 않지만, 지금까지의 내 퍼포먼스를 봐서 계약을 연장해 줄 수는 있다고 했다. 물론 이 회사에서 리턴 오퍼를 받아 인턴십 이후 정규직까지 이어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적어도 회사의 배려 덕분에 하나의 옵션은 생긴 것이다.
인턴십이기는 하지만 졸업 이후 몇 달 간이라도 풀타임으로 일할 수 있는 자리. 그리고 합법적으로 미국에 있을 수 있는 소속. 그리고 꿈과 이상을 제외하고 현실적으로도, 인턴십의 월급이 한국 회사 미국 지사 월급과 비슷했기 때문에 당장의 생활비 역시 크게 문제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적어도 몇 달은 벌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 한국 회사의 입사는 거절했다.
한국 회사의 미국 지사를 거절한 이후에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갔다. 처음 이 모든 과정을 시작했을 때처럼. 하나하나 읽어보고, 다시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이전 몇 달 동안은 물량으로 승부했다. 최대한 많은 인터뷰, 최대한 많은 기회. 하지만 이제는 방향을 바꿨다. 내가 합격하면 실제로 갈 수 있는 회사와 부서만 선별해서 지원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역을 두 가지로 나눴다. 하나는 뉴욕과 같은 대도시.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포지션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하나는, 비선호 지역으로 추정되는 곳.
여기서 ‘비선호 지역’이라는 개념은 다분히 외국인의 시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실제로 내가 그 지역에서 어떤 회사를 선호해야 하는지, 혹은 어떤 회사에서 결원이 많이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었다. 나는 미국에 온 지 1년도 되지 않은 외국인 유학생이었다. 내가 미국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석사를 준비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된 주 이름, 그리고 몇몇 대표적인 도시와 그곳의 유명한 대학교 정도였다.
그래서 감이 아니라, 나름의 정량화된 방식으로 정리해 보기로 했다. 먼저 구글에서 각주의 인구수, 범죄율, 강력범죄율, 주요 산업 및 클러스터, 위험지역 랭킹 등을 찾아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중에서 투자은행이 주요 오피스를 둘 만한 대도시를 추려냈다. 그다음, 내가 원하는 회사와 부서가 실제로 그 지역에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그 리스트 위에 몇 가지 요소를 더 얹었다. 해당 지역의 주요 대학 리스트, 나의 스펙, 그리고 채용 플랫폼에 올라온 해당 오피스의 채용공고 수와 빈도. 이 요소들을 하나의 기준처럼 놓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순서대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 기준과 정량화가 얼마나 정확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후에 다루겠지만 물론 단점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얼기설기 만든 지역의 산업과 인재의 유입이라는 이 단순한 고민은 몇 년 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어졌다.
2026년 3월 말 나는 American Real Estate Society에서 부동산 개발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화하는 모형을 발표하게 됐다. 뉴욕을 기준으로 최근 20년의 범죄율, 건강, 소득, 교육 등 20가지 지표를 기반으로 한 분석이었다. 그리고 해당 연구는 국제 저널에도 출간됐다. 세상에 쓸데없는 행동이 없기는 한 것 같다.
전략이 통했는지, 아니면 단순히 학교 졸업 시즌과 맞물려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평소보다 인터뷰를 훨씬 많이 보게 됐다. 샌프란시스코, 유타, 뉴욕, 오스틴에 있는 팀들과 인터뷰를 이어가던 중, 덜컥 볼티모어 Morgan Stanley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사실 이 포지션을 대도시 기준으로 지원한 건지, 아니면 비선호 지역으로 분류해서 지원한 건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워낙 많이 지원했으니까.
어쨌든 내가 원하던 일을 할 수 있는 대형사였고, 조건 협상도 이전에 몇 번 경험이 있어서 나름 잘 마무리됐다. 그런데 막상 합격을 하고 나니, 인터넷을 찾아보면서 슬슬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본 영화의 한 장면, 볼티모어는 치안의 편차가 크다는 기사, 어떤 지역은 위험하다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났다.
인사팀과 전화를 하며 세부 사항을 확인하고, 구글 지도를 보면서 동네를 찾아봤다. 유튜브도 뒤져가며 나름 공부를 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내가 ‘볼티모어의 흉악 범죄 콘텐츠’를 좋아한다고 판단했는지, 점점 더 불안한 영상들만 보여주기 시작했다. 정보를 찾으려고 시작한 건데, 오히려 불안을 키우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참, 문명이 도움이 안 될 때가 있다.
이제 감사한 마음으로 가야 하는 상황인데, 마음이 계속 불편했다. 이 상태에서 그냥 가야 하는 건지, 아니면 인터뷰를 더 봐야 하는 건지. 판단이 쉽게 서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몇 년 뒤 출장으로 다시 볼티모어에 갈 일이 있었다. 생각보다 멋지고, 조용한 도시였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살고 있는 뉴욕도, 평화로운 분위기의 Brown University가 있는 프로비던스도, 범죄는 어디에서든 일어난다. 작년 12월, 브라운에서도 일어나지 않았어야 하는 일이 있었던 것처럼.)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직속 상사가 이직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면서 팀원들은 모두, 내가 당시 인턴을 하던 팀의 담당 임원과 면담을 하게 됐다. 이 사람은 나와 마찬가지로 브라운 출신이었고, 한 번씩 마주치면 인사를 잘 받아주던 사람이었다. 내가 조교를 하던 교수님에게 본인도 배웠다는 이야기를 해줄 만큼, 인상에 남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형식적인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자연스럽게 나의 졸업과 취직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리고 나는 조언을 구했다. 수천 건의 지원, 그리고 최근의 합격과 선택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Morgan Stanley까지.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임원은, 내가 썼던 리포트들도 좋았고 멘토의 리뷰도 좋았다며, 회사에서 오퍼를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일반적으로 인턴 바로 위 직급은 Analyst지만, 내가 받았던 오퍼들, 그리고 한국과 국제기구에서의 경력, 브라운에서의 석사를 고려해서 Associate로 오퍼를 주겠다고 했다. 결국, 이직을 하게 된 직속 상사의 자리에 내가 들어가게 되는 그림이 되었다.
이후 인사팀과 간단한 미팅을 거쳤고, 일 년에 가까운 절박한 구직활동이 무색할 만큼 간단하게, 나는 인턴을 했던 회사에서 그대로 직장생활을 이어가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