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취업과 입사제안 철회

by James

미국에서 첫 오퍼를 받았을 때, 나는 이제 드디어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포지션과 팀이 정해지고, 내가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봤던 John은 내 사수, 몇 주 전 인터뷰를 본 Kimberly는 내 팀장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주변에서는 “이제 드디어 정착이네, 축하해”라는 말을 듣고 있었다. 인턴십을 하고 있는 회사에는 굳이 알리지는 않았지만, 학교에서 같이 취업 준비를 하던 동기가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보면 덤덤하게 (최대한 재수 없지 않게) Goldman Sachs에 합격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해본 경험이 있으니 겸손은 미덕이라고 생각했지만, 굳이 꽁꽁 숨길 이유도 없었고 나는 정말 노력했기 때문에 충분히 축하받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오퍼가 철회되었을 때, ‘화가 난다’, ‘슬프다’, ‘실망스럽다’처럼 딱 이름 붙일 수 있는 감정보다는 그냥 어안이 벙벙했다. 예전에 어떤 소설에서 마음속에 무언가 무너져 입 밖으로 탄식이 새어 나온다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때 그 문장이 뜬금없이 떠올랐던 게 기억난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뭔가가 무너진 것 같았으니까. 아무 설명도, 대안도 없이 내가 간절히 바라왔고 이제 막 손에 넣은 것이 연기처럼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미국 회사에서 오퍼는 계약이면서도 동시에 계약이 아니다. 조건이 바뀌고, 시장이 흔들리고, 팀이 재편되면 오퍼는 조용히 사라진다. 그리고 생각보다 이런 일이 자주 있다는 사실은 내가 직접 겪고 나서, 인터넷을 찾아보고 나서야 알게 됐다. 예를 들어 한국에 있을 때도 미국의 글로벌 테크 기업들, 아마존이나 구글, 혹은 내가 합격했던 골드만 같은 회사들이 하루아침에 수천 명을 해고했다는 뉴스를 듣곤 했다. 그 임팩트는 단순히 그 수천 명에 그치지 않는다. 잠정적으로 그 팀에 합류하기로 되어 있던 신입 직원들, 그리고 더 넓게는 스타트업 시장의 인력 풀, 나아가 해당 업계 외국인들의 비자 문제까지 영향을 미친다. 물론 그런 사실을 머리로는 알아도 그걸 몸으로 받아들이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처음 입사 철회를 겪었을 때, 며칠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첫 번째 합격과 채용 제안 철회

학교생활과 인턴십, 조교와 구직활동을 이어가는 중 나는 골드만삭스에 합격을 했다. 인턴십을 하는 회사는 우리 학교와 좋은 관계를 가진 회사였지만 당장 채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외부 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그 덕분에 졸업을 약 3개월 정도 남긴 시점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졸업 후 취업할 곳을 찾은 셈이었다.


때마침 학교에서도 졸업 후 미국에서 일을 할 학생을 대상으로 Optional Practical Training(OPT)의 신청을 받고 있었다. 모든 타이밍이 착착 맞아떨어진다. 입사일이 구체적으로 확정된 상황은 아니었지만 이미 골드만에서 인터뷰까지 합격한 상태였고, 하루라도 빨리 일을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별다른 고민 없이 OPT 시작일을 졸업식 다음 날로 설정했다. 그리고 이 결정을 나중에 후회하게 될 줄은,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이 부분은 이후 비자 관련 포스팅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OPT는 외국인 학생이 미국에서 이수한 전공과 연관된 분야에서 일정 기간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다. 기본적으로 시작일을 기준으로 1년 동안 근무가 가능하고, STEM 전공의 경우에는 추가로 2년 연장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 OPT의 시작일은 어느 정도 유연하게 설정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은 졸업 이후 바로 일을 시작하기보다는, 일정에 여유를 두고 시작일을 잡는다. 구직 기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입사 일정이 정확히 정해지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골드만이라니! 모든 금융인이 아는 브랜드를 가진 회사이고, 부서도 내가 한국에서 해오던 일의 연장이었기 때문에 포지션 자체도 매력적이었다. 오피스는 서부라서 내가 아는 곳은 아니기는 했지만, 그게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사실 미국에서 내가 아는 도시는 뉴욕 아니면 보스턴 정도이기도 하고. 아니, 오히려 서부가 동부보다 날씨도 좋다고 하니 금상첨화면 금상첨화지, 굳이 안 좋을 이유도 없어 보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인사팀과 이야기를 나누고 주요 사항들을 듣고 있었는데, 입사 예정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럼 2주 정도 뒤에 가능하실까요?"
"네?"

지원할 때 분명히 나는 입사 가능 일정을 적었는데, 뭔가 착오가 있었던 듯했다. 하나하나 다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 싶었다. 나는 졸업 예정일이 약 3개월 정도 남아 있었고, 필요하다면 졸업식에 가지 않고 2달 반 정도 이후부터는 바로 가능할 것 같다고 답했다. 찝찝했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혹시 학교를 그만두고 바로 조인할 수 있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한국이었다면 아마 그렇게 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곳에서 제약이 너무 많았다. 한국 국적의 내가 미국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비자 문제 때문에 먼저 졸업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고, 인사담당자는 확인 후 알려주겠다고 했다. 며칠 후 돌아온 답은 사무적이었고 단순했다. 당장 출근이 가능한 상황이 아니면 진행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해당 팀에서는 바로 투입될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나는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입사 가능 일정을 명확히 전달했는지, 인사팀에서 그걸 읽었는지, 혹은 팀에서 제대로 확인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나와 두 달에 가까운 인터뷰를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두 달을 기다릴 수 없다는 이유로 채용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해도,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며칠은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지원도, 운동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누워만 있었다. 그동안 지원해 둔 곳에서 가끔 연락이 오면 억지로 몸을 일으켜 잠깐 인터뷰를 보는 것 외에는, 계속 천장만 보고 있었다. 혹시 그때 인사팀과의 미팅에서 두 달이 아닌 한 달이라고 말했으면 어땠을까, 지금이라도 이메일을 써볼까, 아니, 내가 혹시 뭔가 실수한 게 있나, 팀장님(이 될 뻔했던 사람)에게 연락을 해볼까.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 와중에도 골드만에서는 다른 오피스에서 비슷한 포지션으로 인터뷰를 볼 수 있는지 연락이 왔다.


그때 나에게 가장 도움이 되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바로 그 무력감이었고,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이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상황은 내가 잘못해서 생긴 것도 아니고, 당장 내가 바꿀 수 있는 종류의 문제도 아니었다. 속상하지만 그냥 받아들이는 게 어찌 보면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합격은 합격이었다. 일정이 맞지 않아 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금융업에서 가장 아이코닉한 회사에 합격한 경험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정신승리라고 해도 할 수 없고, 조금 지질해 보일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겸손한 척하면서 동기들에게 자랑했던 것과는 별개로, 어디에도 내가 오늘 인터뷰를 보고, 내일 또 다른 인터뷰를 볼 때 만날 이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했다"는 생각만은 분명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럼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뭘까”,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따라왔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울해하고 있다. 내일은 면접이 있다. 모든 게 귀찮다. 1년 동안 정말 노력해서 아이비리그에 들어왔다. 그림 같은 캠퍼스에서, 꿈꾸던(? 어쨌든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간 위에서, 그 꿈속에서 또 다른,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그렇다면 지금 할 수 있는 건 뭘까"
이제부터 정 힘들면 지원을 안 할 수도 있다. 몇 달 남지 않은 석사 생활을, 어떤 선배의 말처럼 골프 실력을 키우는 데 쓸 수도 있다. 소비의 나라답게 앞으로 5년 동안 입을 옷을 전략적으로 미리 장만해서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일찍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네덜란드에서 온 동기처럼 노란색 지프차를 빌려서 미국을 횡단해 보는 것도 꽤 멋질 것 같다. 생각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았다.


그렇게 나는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물론 아쉽기는 했지만, 이 모든 과정이 최악과는 거리가 멀고, 어쩌면 내가 꾸던 꿈 위에서 더 큰 꿈을 향해 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졸업 시즌이 되면 다시 기회가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다시 묵묵히 지원을 이어갔다.



그냥 직장인의 팁

이건 내가 미국, 한국, 영국에서 지원자로서 부딪히며 배운 것들, 그리고 지금 채용을 맡으며 더 분명해진 생각들이다. 벤처 및 투자전략실을 이끌고, 싱크탱크 프로그램 면접과 취업 특강을 하며 느낀 점을 정리해 본다.

1. “합격 =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서명 전까지는, 정말 마지막까지도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하다. 실제로 인턴십이 끝난 뒤 받은 리턴 오퍼가 사라지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고, 인터뷰를 잘 보는 것과 오퍼를 받는 것은 다르며, 또 오퍼를 받는 것과 실제로 입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단계다. 그래서 합격을 했다고 해서 모든 과정이 끝났다고 생각하기보다는, 하나의 단계가 지나갔다고 보는 편이 현실적이다.


그래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는 우리가 만들어 놓은 리듬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좋다. 지원하던 속도나 숫자를 조금 줄일 수는 있지만, 졸업까지 시간이 남아 있다면 더 좋은 포지션에 계속 지원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고, 업계 사람들과의 커피챗을 이어가는 것도 충분히 도움이 된다. 학교와는 다르게 시장에는 언제나 더 나은 옵션이 존재하고, 우리의 협상력은 결국 내가 가지고 있는 선택지의 개수에 비례한다. 합격하는 순간 모든 것을 멈추면 자연스럽게 내 옵션은 하나로 줄어든다. 반대로, 합격 이후에도 다른 회사들과 계속 연결을 유지하고 있다면 지금 받은 조건을 비교하고 협상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결국 중요한 건 합격 자체보다, 그 이후에도 내가 더 좋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만들어두는 것이다.


2. 비자 이슈는 디테일이 아니라 본질이다.

인터뷰가 아무리 잘 풀려도 마지막에 모든 걸 뒤집을 수 있다. 꼭, 확인하자. 외국인으로 미국에서 취업을 한다는 건, 단순히 회사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하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가 나를 “합법적으로, 그리고 일정에 맞춰” 일하게 만들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후에 다루겠지만, F-1 학생 기준으로만 봐도 졸업 후 일할 수 있는 기본 경로인 OPT는 신청 시점, 프로그램 종료일, EAD 승인 시점, 실업 기간 제한이 다 엮여 있다. USCIS와 SEVP 기준상 post-completion OPT는 보통 프로그램 종료 전 90일부터 종료 후 60일 사이에 신청할 수 있고, post-completion OPT 중에는 실업 상태를 90일 이상 누적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취업 준비를 좀 더 해보면 되지”가 아니라, 날짜가 꼬이면 체류 자체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


여기에 미국 취업의 잔인한 현실이 하나 더 있다. 비자는 개인의 사정이지만, 동시에 철저히 회사의 운영 문제다. 고용주는 단순히 서류 한 장 써주는 게 아니라 임금 수준, 고용 조건, 공지 의무 같은 규정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니 경기나 팀 상황이 조금만 흔들려도, 내 역량과 무관하게 회사는 가장 먼저 “이 복잡성을 지금 감당할 필요가 있나?”를 계산하게 된다. 그래서 외국인으로 미국 취업을 준비할 때 비자는 뒤에 붙는 행정 이슈가 아니라, 처음부터 전략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내가 언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지, OPT 시작일을 어떻게 잡을지, 실업 허용일수를 얼마나 남겨둘지, STEM OPT 가능성이 있는지, cap-gap이 적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이 회사가 실제로 H-1B까지 연결할 의사가 있는지를 처음부터 같이 봐야 한다. 비자는 “나중에 HR이 처리해 주겠지”의 영역이 아니다. 미국에서 외국인으로 일한다는 건, 실력과 타이밍과 신분이 동시에 맞아야 겨우 성립하는 일이고, 그중 하나만 어긋나도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3. 회사의 의사결정은 개인의 노력과 별개로 움직인다.

이건 취업을 하다 보면 꽤 늦게, 그리고 대개는 좀 아프게 배우게 되는 사실이다. 우리는 인터뷰를 준비할 때 늘 개인의 변수에 집중한다. 내가 말을 더 잘했어야 했나, 답변을 더 날카롭게 했어야 했나, 태도가 별로였나, 경험이 부족했나. 물론 그런 것들도 중요하다. 그런데 막상 시장에 나가보면, 채용은 생각보다 훨씬 덜 개인적이다.


특히 경기가 애매하거나 조직이 흔들릴 때는 더 그렇다. 미 노동통계국(BLS)에 따르면 2025년 12월 미국 구인 건수는 약 654만 건으로 1년 전보다 감소했고, 2026년 2월 hires도 480만 건으로 줄었다. 이런 숫자는 면접 한 번의 퍼포먼스보다 훨씬 큰 배경이다. 내가 부족해서라기보다, 그냥 회사가 덜 뽑고 있는 시기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걸 너무 늦게 깨달으면, 매번 결과를 전부 자기 탓으로만 돌리게 된다.


그래서 꼭 이 말을 붙이고 싶다. 멘털 관리는 실력만큼 중요하다. 떨어지는 이유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보다, 다시 지원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 회사가 내 노력을 100퍼센트 반영해서 판단해 줄 거라고 기대하면 취업 과정은 훨씬 더 잔인해진다. 어떤 결과는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테이블 위에서 결정된 것이다.


4. 하루 이틀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서는 받아들여야 한다.

감정은 자연스럽게 흘려보내자. 계속 붙잡고 있으면 다음 기회를 잡을 에너지가 남지 않는다. 기억하자, 생각보다 선택지는 많다. 계속 지원하는 것도 선택이고, 잠깐 쉬는 것도 선택이다. 중요한 건 지금 당장 무엇을 하느냐보다, 지금 상황을 내가 선택하고 있다는 걸 계속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내가 정말 좋아하는, 그리고 굉장히 널리 알려진 문구가 있다. “Keep calm and carry on.”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도중, 영국 본토 항공전으로 인해 연이어 독일군의 폭격을 당하던 상황에서 영국 왕실이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만든 프로파간다 문구다. 실제로 이 선전물은 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이 독일에 패했을 경우 사용될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결국 실제로 사용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을까. 2차 세계대전 당시 엘리자베스 왕녀는 (훗날 여왕이 되는) 운전병으로 복무하며 직접 물자 운송 임무도 수행했고, 윈스턴 처칠 총리는 영국 본토가 침략당하는 위기 상황에서도 끝까지 외국으로 떠나지 않고 전시 내각을 꾸린 뒤 런던 집무실과 지하 벙커에 남아 공무를 수행했다. 우리가 믿고 있던 신념이 전쟁에 의해 무너질 수도 있는 그 최악의 상황에서 - 아니, 이 포스터가 세상에 나올 시점이라면 이미 우리가 이뤄놓은 많은 것들이 무너진 이후의 상황에서 - 우리가 마지막으로 건네는 한마디. “침착함을 유지하며 하던 일을 이어가자.” 그저 담담하게, 그리고 끝까지.

물론 지금은 이 문구가 다양한 패러디와 함께 하나의 밈처럼 계속 재생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장이 처음 만들어졌던 배경을 떠올리면 나에게는 여전히 꽤 진지하게 다가온다.
Keep calm and carry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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