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를 마치며
평범한 대학에서 학부를 마치고, 남들처럼 군대를 다녀오고, 취업을 했다. 그래서 막연하게 석사를 떠올릴 때조차, 스스로를 아이비리그와 연결 짓는 일은 없었다. 물론 남들만큼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한다. 바쁠 때는 야근이며, 주말출근을 했던 그냥 보통이라는 의미에서의 K-직장인 혹은, ‘그냥 직장인’이었던 나는, 아이비리그에 학교가 몇 개인지도 정확히 모를 만큼, 그 세계를 나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막연하게 석사를 가고 싶다는 꿈을 꾸고. 시간이 조금 흘러 1년 뒤에는 브라운이라는 이름의 한 아이비리그 학교에 들어가 있었고, 또 그로부터 1년 뒤에는 전 세계 금융의 중심이라 불리는 뉴욕에서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단 2년에 대한 이야기다. 아주 짧지만, 동시에 나에게는 전혀 다른 세계와 세상을 통과해 온 시간이었다.
이번 파트 2의 제목은 ‘해외 취업의 기술’이다.
인트로에서 말했듯이, 기술이라는 건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방법과 수단, 그리고 기법을 의미한다. 그런데 part 2에서의 1년을 돌아보면, 나는 그 ‘기술’을 알고 움직인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몰랐던 쪽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저 소처럼 우직하게, 수백 개의 회사에 수천 개의 지원서를 넣었다. 가뭄에 콩 나듯 인터뷰가 잡히면 그때마다 최선을 다해 준비했고, 뉴욕이나 보스턴에 이벤트가 있으면 가능하면 참석해서 사람을 만나고, 커피챗도 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적어도 이 1년 동안은 커피챗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만약 이 모든 과정에서 조금 더 이른 시점에 ‘전략’이라는 걸, 혹은 나만의 방법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었다면, 이 여정은 훨씬 더 효율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같은 시간을 쓰더라도, 훨씬 덜 돌아가고, 덜 지치고, 조금 더 빠르게 도달했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내가 해낸 것들이 모두 정교한 전략의 결과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인턴십도, 정규직 전환도, 나 나름 전략을 세우고 열심히 하기는 했지만, 어떤 영화나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치밀하게 설계된 플랜, 혹은 무릎을 '탁'치는 방법을 도입했다기보다는, 그때그때 선택가능한 옵션들 중 최선(처럼 보이는)의 여러 선택과 우연을 얼기설기 엮고 또 겹친 결과였다. 수백 개의 회사에 수천 개의 지원서를 내고 인터뷰를 보면서도, 정작 인턴은 교수님의 예전 제자 팀으로 이어졌고, 어떤 기회는 지원했다가 취소되기도 했으며, 또 어떤 선택은 스스로 포기하기도 했지만 정규직은 인턴을 하던 회사에 마침 공백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경우라고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은 격일 수도 있고 결과만 놓고 보면 그냥 운이 좋았던 이야기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사실,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이렇게 꺼내는 건 여전히 망설여진다.
입학수기야 어느 정도 익명성이 보장되기도 하고, 이미 석사를 졸업한 지도 꽤 시간이 지났고, 지금의 생활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무엇보다 학생이라는 페르소나는 지금의 '뉴욕의 그냥 직장인'인 나 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조금은 편하게 쓸 수 있었다. 반면에 취업에 대한 이야기는 어쨌든 좀 더 최근의 이야기이고,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지금의 나와 연결되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는 어찌 보면 꽤나 비효율적이었던, 미국의 취업시장을 잘 모르는 한국의 ‘그냥 직장인’이 미국에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후배 ‘그냥 직장인’들은 조금 덜 겪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소소한 현업자의 팁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나는 주변에 나와 비슷한 상황의 사람이 정말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더 헤맸고, 더 돌아갔다.
물론 내 이야기가 미국을, 혹은 영국을 포함한 수많은 해외 시장에서 일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경험을 대변할 수는 없다. 당장 내가 있는 이 미국만 보더라도, 3억 명이 넘는 인구가 살아가고 있고, 단순 계산으로도 1억 개 이상의 일자리가 존재한다.
그중 일부, 예를 들어 10–15퍼센트 정도가 외국인에게 열려 있다고 가정해 본다면, 약 1,500만 개 정도의 의자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한국의 취업자 수가 2025년 6월 기준 약 2,909만 명 정도였으니, 이 숫자는 한국에서 실제로 일하는 사람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숫자만 놓고 보면, 꽤 큰 시장이다. 우리는 결국 그 수많은 회사의 수많은 자리 중 단 하나의 의자만 차지하면 되는 게임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어떤 방식으로 취업을 했다", 혹은 "나는 이런 방식으로 이 자리에 오게 되었다"라는 식의 이야기는, 결국 그 수많은 의자 중 하나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목표를 향해 가더라도, 접근 방식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네트워크를 통해 들어가고, 어떤 사람은 특정한 기술을 통해 기회를 만들고, 또 어떤 사람은 예상치 못한 타이밍과 우연 속에서 자리를 잡기도 한다. 때로는 훨씬 더 크리에이티브한 접근이, 우리가 생각하는 ‘정석’보다 더 잘 통하기도 할 것이다.
이건 거창한 성공담이라기보다는, 나와 비슷하게 석사를 통해 미국에 오기 위해 시간과 노력, 그리고 적지 않은 비용을 투자하고 있는 ‘그냥 직장인’들에게, 이런 방식도 있고, 이런 관점도 있을 수 있다는, 아주 작은 힌트 하나 정도는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한다.
강연을 하면서 한 번씩 받는 질문들이 있다. 대부분은 시간이나 흐름 때문에 길게 답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이야기들인데, 이 글에서는 조금 정리해보려고 한다.
“미국에서 일해보니 실제 직장 문화나 취업 환경은 어떤가요?”혹은
“석사로 미국에 와서 몇 년 만에 Vice President까지 올라갔는데 비결이 뭔가요?”
이 두 질문에 대한 나의 생각으로, Part 2를 마무리해보려 한다.
이 질문을 받으면, 사실 사람들이 어떤 답을 기대하는지 어느 정도는 알 것 같다. 그래서 패널로 여러 연사가 함께 있는 자리라면, 이 질문은 보통 테크 회사에 있는 연사에게 넘기는 편이다. 무엇보다 나도 그랬지만, 사람들이 떠올리는 ‘미국의 직장 문화’는 대개 실리콘밸리의 이미지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주최 측이 신경 써서 이벤트를 만들고 소중한 시간을 들여서 강연에 참석했는데 "아, 음. 한국하고 비슷해요 ㅎㅎ" 이런 대답은 모두의 기대에 어긋난다.
하지만 정말로. 내가 몸담고 있는 금융업은, 생각보다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조금 더 직업 안정성이 떨어진다. 클라이언트를 직접 만나는 부서는 여전히 정장과 구두가 기본이고, 미팅의 성격에 따라 넥타이까지 갖춰 입는다. 직장 내 위계도 철저하고 수직적이다. 심지어 백오피스라고 해서 분위기가 완전히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전반적으로는 기대보다 훨씬 보수적인 편이다. 나 역시 한 번쯤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사무실 한가운데 미끄럼틀이 있는 풍경을 떠올렸던 적이 있었지만, 막상 와보니 한국의 사무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더 있었다면 꼭 덧붙이고 싶었던 부분이 하나 있다. 이전 글에서 한국에서는 크게 느끼지 못했던 학연을 오히려 미국에서 더 체감했다고 했는데, 여기에 지연과 인맥까지 더해지면 영향력은 생각보다 훨씬 커진다. 인도인 매니저 아래 팀이 대부분 인도인으로 구성되어 있거나, 비슷한 배경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있는 구조는 굉장히 흔하게 보이고 또 자연스럽다. 추천 채용과 리퍼럴이 잘 이루어지는 집단에서는, 네트워크 자체가 사실상 전제가 된다. 체감상 주요 클라이언트의 둘째 딸이 여름인턴으로 들어온다거나, 부사장님이 나온 프린스턴을 똑같이 나온 부사장님의 조카가 면접을 보러 오는 것이 조금 더 빈번하기도 하다.
오피스나 팀마다 선호하는 학교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것도 체감적으로 느껴진다. 석사 전에는 미국학교에 관심이 없어 내가 아는 열개 남짓한 대학과 그것보다 적은 고등학교만 알아도 월스트리트 절반의 출신 학교를 맞출 수 있다. 여름휴가에는 비슷한 지역에 있는 별장으로 가서 비슷한 이벤트에 가고 비슷한 사람들을 만난다. 내가 커피챗과 네트워킹을 계속 강조했던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다.
물론 내가 경험한 것이 미국 전체를 설명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산업, 회사, 팀에 따라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아니 하나의 회사 안에서도 극과 극으로 바뀐다. 내가 경험했던 영국이나 국제기구와 비교해도 전혀 다른 것은 당연하고, 업무 특성상 서부에서 일을 하고 테크와 VC의 심장인 서부만 가도 또 느낌이 정말 다르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도 취업 시장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 않나. “쉽지 않다”는 정도를 제외하면 말이다. 우리가 잘 모르는 이 나라 역시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되지는 않는다. 미국에서 석사를 했다고 해서 취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미국 학위가 없다고 해서 기회가 닫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내가 이 Part 2에서 말하고 싶었던 건 단순하다. 전공이 지금의 트렌드와 맞지 않더라도, 우리가 기대했던 모습과 다르더라도, 경로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다는 점이다. 지원을 해도 떨어지고, 커피챗에서 답을 못 받고, 인터뷰에서 계속 거절을 당하는 일은 당연하게 반복된다. 심지어 합격했던 포지션이 사라지는 일도 실제로 일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남아 있는 사람에게는 결국 하나의 기회가 온다. 내 취업준비 기간을 돌아봐도 누가 더 꾸준한가를 겨루는 싸움이었다. 내가 지원하던 시기를 지나, 지금 회사와 싱크탱크를 거쳐간 후배들과 동료들을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한다. 특히 나와 같은 외국인에게는 특별한 배경이나 완벽한 전략보다는, 연결을 만들고 기회를 계속 두드리는 과정 속에서 결과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아직 보이지 않을 뿐 이미 어딘가에는 하나의 의자가 남아 있을 거라 믿는다.
실제로 받았던 질문이고, 미국에서 실제로 일을 하는 주니어 프로페셔널들을 위한 강연장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재수 없지 않게 말하려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인턴을 하면서 처음으로 확신을 가지고 선택했던 투자 종목은 NVIDIA였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이 회사는 2026년 기준 지구상에서 가장 큰 기업이 되었다.
그때의 투자 로직은 정말 단순했다. 수많은 숫자와 데이터가 있었지만, 한국에서 증권사에 다니며 반도체 투자를 했던 경험, 동시에 석사를 준비하며 주말에 공부했던 인공지능 (Chapter 1에서 다루었다), 그리고 국제기구에서 만났던 개발도상국들이 핀테크와 크립토에서 보여주던 흐름까지, 서로 다른 조각들이 하나로 이어졌다. 브라운에서의 학업은 그 흐름에 대한 확신을 더해주는 역할을 했고, 결국 하나의 투자 아이디어로 정리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GPU에 본격적인 투자가 이루어지던 시점도 아니었고, 이 회사가 지금과 같은 결과를 보여주고 있던 때도 아니었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빠르게 승진한 비결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결국, 내가 알고 있는 것들과 경험을 바탕으로 결론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재료는 사람마다 다르다.
흔히 외국인이라는 배경은 약점처럼 생각되지만, 동시에 강점이 될 수도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나의 경우를 보면, 한국에서의 반도체 투자 경험,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과 학업, 인간과 기술의 상호작용에 대한 고민, 그리고 미국에서의 경험까지,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던 요소들이 결국 하나의 방향으로 모였다. 그 조합이 자연스럽게 NVIDIA라는 선택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Ludwig Feuerbach의 말처럼,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받아들이느냐에 의해 만들어진다. 흔히 말하는 “You are what you eat”이다. 우리가 무엇을 공부하고, 어떤 경험을 쌓고, 무엇에 시간을 쓰는지가 결국 결과로 이어진다. 이 예시를 다시 반복하자면, 나에게는 인공지능, 반도체 투자, 한국에서의 경험, 그리고 미국에서의 학업이 그 인풋이었고, 그 결과 중 하나가 NVIDIA라는 선택이었다. 여기에 언어와 문화, 각자의 배경까지 더해진다면,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은 더 넓어진다.
그래서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단순하다. 특별한 비결이 있었다기보다는, 내가 가지고 있던 것들을 버리지 않고 계속 쌓아왔고, 그 사이를 연결해 온 결과였다는 것. 그리고 그 연결은 누구에게나, 각자의 방식으로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냥 직장인’이라면, 이미 한국에서의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한국어라는 언어를 통해 하나의 시장과 문화를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 차이는 처음에는 어색함으로, 때로는 약점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을 길게 보면, 결국 차이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같은 것을 조금 더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것을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이다. 기술과 산업이 빠르게 바뀌는 시기일수록, 하나의 전공이나 하나의 경험만으로 설명되는 커리어는 한계가 명확해진다. 서로 다른 경험, 다른 언어, 다른 로직, 다른 시장을 이해하는 사람이 그 사이에서 의미를 만든다.
그래서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이 아직은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조급하게 하나로 맞추려 하지 않아도 된다. 그 조각들이 어떤 순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어지고, 그 연결이 하나의 방향이 된다. 그리고 그 연결의 순간은, 대부분 준비된 사람에게 우연처럼 찾아온다. 나에게 NVIDIA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