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회사 인턴십 살아남기

by James

학교 수업과 조교 활동, 그리고 인턴십을 병행하다 보니 시간이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다. 1년짜리 석사가 아니라 2년짜리 과정이었다면 조금 더 여유가 있었을까, 아니면 더 많은 걸 이룰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꽤 자주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대부분의 MBA 과정이 왜 2년인지 몸으로 느끼며 이해하게 됐다. 유학 오기 전에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대부분 비슷한 선택을 할 때는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다. 다만 이미 나는 결정을 내렸고, 1년짜리 석사의 절반은 이미 지나가고 있었다.


미국에 오기 전에는 이 정도 시간이 흘렀다면 다음 단계에 대해 적어도 어느 정도는 정리되어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 사실은 해맑게도 그런 생각조차 깊게 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인턴, 학과, 조교, 그리고 지원이라는 여러 개의 원반을 동시에 돌리고 있는 서커스와 비슷했다. 각각의 원반은 다른 높이에서 다른 속도로 돌고 있었고, 단 하나라도 멈출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예를 들면 시간표에 맞춰 학교 수업을 듣고, 일주일에 4시간 정도는 조교 활동을 위해 학부 수업에 들어간다. 강의가 없는 아침 시간과 공강 시간에는 인턴십을 하는 회사 미팅이나 멘토와의 미팅에 참여한다. 수업이 끝나면 회사에서 요구하는 기업 및 산업 분석 리포트를 작성한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계속 채용 공고를 확인하고 지원을 이어간다. 주말이 되면 다음 주를 위한 조교 업무를 준비하고, 학부생들의 과제나 시험을 채점한다.

학생, 인턴, 조교, 구직자라는 4개의 모자를 쓴 나의 하루하루는, 내가 담당하던 300명 규모의 대형 강의만큼이나 일정이 빡빡했지만, 익숙해지니 어떻게든 해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주변의 배려가 컸다. 회사는 우리 학교와 오랜 파트너십을 맺고 있었고, 10년 넘게 매년 나와 같은 학생들을 선발해 온 곳이라 시스템이 이미 잘 잡혀 있었다. 내가 조교로 일하던 교수 역시 그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이었기 때문에 내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대형 강의라 조교도 여러 명이었고, 인터뷰나 업무 일정이 겹치면 서로 스케줄을 바꿔주는 분위기도 자연스러웠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건 하나였다. 회사는 결국 이익을 내는 조직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학교와 관계가 깊다고 해도, 내 상사는 교수도, 선생님도, 선배도 아니었다. 그곳에서 나를 증명하는 건 결국 내가 해내는 일이 전부였다.


아이비리그 석사는 생각보다 오래 "먹히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비리그라는 이름을 어떤 문이든 열어줄 것 같은 만능열쇠로 오해한다. 나 또한 그랬다. 물론 어떤 순간에는 문을 열어주는 것이 맞고, 분명 경쟁력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어떤 순간에는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한다.


한국에서 소위 SKY를 비롯한 명문대가 그러하듯, 첫 접점에서는 분명 효과가 있다. 프리패스라는 의미가 아니라 판단 비용을 줄여준다는 의미에서다. 이력서 상단, 소개 문장, 첫 미팅에서의 배경 설명. 상대가 아직 나를 잘 모를 때 그 한 줄은 “이 사람은 최소한 이 정도의 검증은 거쳤겠구나”, 혹은 “적어도 성실하기는 하겠구나”라는 판단을 빠르게 만들어준다. 이때 아이비리그 석사는 실력의 증명이 아니라 리스크를 낮춰주는 장치로 작동한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국가 이동이나 커리어 리셋 상황에서는 충분히 큰 효과다. 적어도 설명을 시작할 수 있는 시간, 질문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직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아이비리그 석사는 빠르게 무력해진다. 첫 프로젝트, 첫 리뷰, 첫 실수 앞에서는 아무도 학교를 묻지 않는다. 그때부터 평가 기준은 단순하다. 인턴이라도 마찬가지다. 일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어떤 로직으로 접근하는지, 맥락을 이해하는지, 그리고 어떤 다음 질문을 가져오는지. 아이비리그 석사는 보고서를 대신 써주지도, 회의를 대신 정리해주지도 않는다. 오히려 기대치만 높인다. 내 경우에는 핵심 임원의 절반 정도의 모교가 브라운대학교 출신인 회사에 들어갔고, 다른 학교와는 진행하지 않는 공식 석사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합류했다.

“브라운에 있다면서 이 정도는 알겠지.”

이 한 문장으로 충분했다. 그 순간부터 학벌은 전제 조건이 된다. 있어도 플러스가 아니고, 없으면 마이너스인 상태다. 가장 위험한 건 학교를 정체성으로 착각하는 순간이다. 예전에 우리 회사의 한 선배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대학교 졸업장은 ‘라틴어로 인쇄된 화려한 영수증’이라고. 물론 시니컬한 농담이었겠지만, 나 역시 1년 동안 준비해서 석사에 오면서 비용과 기회를 저울질했던 입장이었기에 완전히 틀린 말로 들리지는 않았다. 그 말을 한 사람 역시 수십 년 전에 나와 같은 고민을 한 대선배였다는 점에서 더더욱. 뭐 설령 공감하지 않았더라도, 인턴인 내가 어쩔 텐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맞습니다 상무님, 헤헤"라고 말했을 터였다.

몇 년이 지난 뒤, 나는 그 선배가 쓰던 사무실 옆방을 쓰게 되었다. 이제 그 자리에 없는 그 선배의 말은 여전히 다소 시니컬하게 들리지만, 여전히 일정 부분은 맞는 이야기라고 느낀다. 다만 지금은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 것도 사실이다. 한때는 DEI와 PC의 영향으로 더 다양한 배경의 사람을 채용하려는 흐름이 강했고, 대학이나 성적을 덜 보자는 움직임도 있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며 채용 시장의 흐름은 다시 변하고 있다. 월스트리트를 비롯한 주요 기업들은 다시 특정 학교 출신 인재 풀을 적극적으로 보기 시작했고, 동시에 일부 기업들은 학위 자체를 크게 보지 않고 성과 중심으로 채용하기도 한다.

결국 중요한 건 학교가 아니라 그 이후다.

한국뿐만 아니라 영국, 그리고 국제기구에서도 일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 미국 직장 생활에도 비교적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한 미국, 특히 뉴욕에서의 인턴십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 차이는 특히 커뮤니케이션 방식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영국에서는 표현이 전반적으로 훨씬 완곡하다. 겉으로 들으면 동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의미는 전혀 다른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This might be difficult”라는 표현은 사실상 완전히 불가능에 가깝다는 의미이고, “I’m not sure this is the best approach”라는 말도 강한 반대 의견일 때가 많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말의 내용만큼이나 톤과 맥락을 읽는 능력이 중요하다. 조직 분위기도 비교적 균형과 관계를 중요하게 보는 편이다. 의견을 강하게 밀어붙이기보다는 전체적인 흐름을 고려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반대로 미국에서는 훨씬 직접적인 방식이 일반적이다. 회의에서도 결론부터 말하는 경우가 많고, 동의하지 않을 때도 의견을 비교적 명확하게 표현한다. “I don’t think that works”라는 말이 크게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그런 태도가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조직 분위기 역시 다르다. 영국이 관계와 균형을 중요하게 본다면, 미국은 전반적으로 성과 중심이다. 누가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보다 누가 결과를 냈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팀 내 의견 충돌도 비교적 자연스럽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회식 문화도 꽤 다르다. 미국은 회식이 거의 없고, 대신 가볍게 happy hour 정도가 있는 편이다. 반면 영국은 여전히 pub culture가 강해서 퇴근 후나 금요일 저녁에 팀이 함께 펍에 가는 문화가 꽤 남아 있다.



그냥 직장인의 팁

이건 내가 미국, 한국, 영국에서 지원자로서 부딪히며 배운 것들, 그리고 지금 채용을 맡으며 더 분명해진 생각들이다. 벤처 및 투자전략실을 이끌고, 싱크탱크 프로그램 면접과 취업 특강을 하며 느낀 점을 정리해 본다.

내가 경험한 미국 회사에서의 인턴십은 ‘배우는 자리’라기보다, 생각보다 훨씬 이른 시점에 검증받는 자리였다. 아무도 인턴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아무도 인턴이라는 이유로 기준을 낮추지도 않는다. 처음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아무도 일을 정확히 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업무 설명은 대체로 짧다. 앞뒤 설명 없이 맥락만 던져지거나, 때로는 설명 없이 목표만 주어진다.

“이거 한 번 봐줄래?”, “네가 생각하기엔 어때?”, “이거 읽고 내일 오후까지 PPT로 만들어 주세요.” 이 질문들 안에는 정답 대신 방향만 있다. 한국에서 익숙했던 ‘지시를 기다리고 정확히 수행하는 태도’는 이곳에서는 오히려 소극적으로 보일 수 있다. 후배가 생기고 팀과 부서를 리딩하면서 자연스럽게 깨달은 건, 인턴십에서 중요한 건 일을 얼마나 잘했느냐보다 일을 어떻게 정의했느냐라는 점이다.


살아남는 인턴은 몇 가지를 빠르게 배운다.

첫째, 질문을 준비해서 한다.

“이걸 어떻게 하면 되나요?”보다 “제가 이렇게 이해했는데 이 방향이 맞을까요?”라는 질문이 훨씬 안전하다. 질문은 무지가 아니라 사고의 흔적으로 읽힌다.


둘째, 보이지 않는 일을 정리한다.

회의 노트, 정리된 메일, 다음 스텝 요약. 아무도 시키지 않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이다. 이런 역할을 맡는 순간 인턴은 팀의 ‘리스크’가 아니라 자산이 된다.


셋째, 속도보다 리듬을 맞춘다.

미국 회사는 그냥 빠른 듯 보이지만 사실은 각자의 속도가 명확하다. 혼자만 과속하면 튀고 너무 느리면 신뢰를 잃는다. 팀의 리듬을 읽고 그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미국 인턴십에서 ‘착한 인턴’은 오래 남지 못한다. 대신 생각하는 인턴, 기록하는 인턴, 다음 질문을 가져오는 인턴이 기억된다. 인턴십의 끝에서 남는 것은 배운 기술보다 “이 사람과 다시 일하고 싶은가”라는 판단이다.

살아남는다는 건 실수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실수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인 것 같다.


그리고 이건 내가 한국에서 온 후배에게 단 하나의 팁만 준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내가 한 일, 나의 성과를 반드시 기록해라.

미국, 영국 등 영미권은 시간이 지나면 자동 승진이 되는 시스템이 아니다. 몇 달 채웠다고 인턴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말하면, 같은 조건의 지원자라면 외국인인 우리를 뽑는 건 회사 입장에서 더 비효율적인 선택이다.

미안하지만 그냥 그렇다. HR 입장에서는 추가 서류 작업이 필요하고, 비자 스폰서도 고려해야 하고, 그에 따른 비용도 발생한다. 그리고 뱅킹이나 테크처럼 이직이 잦은 업계라 하더라도, 외국인의 경우에는 나나 회사가 원해도 비자 때문에 갑자기 일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즉,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뽑아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업무적으로 압도적인 재능이 있거나, 누구나 인정하는 성과를 낼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인턴이나 주니어 단계에서는 대부분 비슷하다. 그렇다면 차이를 만드는 건 결국 기록이다. 내가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기여를 했는지,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를 남겨둬야 한다.

3개월 수습 기간이 지나고 평가를 할 때, 혹은 6개월, 10개월이 지난 뒤 인사평가 시즌에는 그때 했던 일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 당신조차도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기록이 필요하다. 흐릿한 기억이 아니라, 남겨진 결과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전 13화커피챗과 네트워킹: 미국 취업에서 정말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