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의 얼굴, 김평균

주절주절

by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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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한가득 쌓인 통계청 보고서 속 숫자들은 차갑고 무심하다.

평균 수명, 평균 소득, 평균 주거 면적…

그 숫자들의 무게를 진짜로 짊어지고 사는 이들의 숨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 숫자들에 이름을 붙여보았다.

'김평균'이라는 이름으로.


김평균의 인생은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의 가장 표준적인 길을 밟았다.

비평준화 지역의 평범한 인문계 고교, 중간보다 조금 위의 내신, 수능 4등급 중반.

그 결과는 지방 수도권 하위권 사립대, 경영학과. 3.4의 학점과 토익 590점, 전공 자격증 2개

그가 '평균'을 넘어서기 위한 고군분투의 흔적이다.


1년의 취준 끝에 맞은 중견 제조업체 사무직,

첫 연봉 3,200만 원. 그 순간, 그는 통계 속 '취업자' 한 명이 되었다.



그의 연봉 상승곡선은 대한민국 기업의 전형을 보여준다.

2~4%의 오름세, 대리(28세), 과장(34세), 차장(41세 예상)이라는 단계적인 진급.

안정적이지만,

결코 가파르지 않은 이 상승은 물가를 생각하면 제자리 걸음에 가깝다.


35세, 비슷한 조건의 배우자를 만나 전세 2억 원의 소형 아파트 전세에 들어간다.

부모의 도움은 '도우미' 수준.

이때의 연봉 4,700만 원, 세후 320만 원. 매달 90만 원,

1년에 천만 원 가까이 저축한다는 건 결코 적지 않은 성과다.

하지만 그가 딛고 선 기반은 허약했다.

상속을 기대할 수 없는 여전히 대출이 남아 있는 부모.

그의 19년 저축과 예적금 총액 1억 8천만 원은 피와 땀으로 빚은 숫자다.


44세, 생애 첫 아파트의 문을 연다.

경기도 부천, 신축 25평(전용 59㎡), 시세 4억 대 중반.

저축과 예적금 1억 8천만 원에 배우자의 몫까지 합쳐 2억 5천만 원을 들여도,

2억 원의 대출을 떠안아야 했다.

'내 집 마련'이라는 환호 뒤에는 여전히 1시간 20분의 출퇴근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 7시 30분 출근, 저녁 7시 퇴근이라는 리듬은 변하지 않았다.





차장급에서 정체된 진급,

연봉 6천만 원은 물가 상승률 앞에서 실질적으로는 정체나 다름없다.

맞벌이로 버는 돈은 자녀의 대학 등록금, 생활비, 대출 이자에 흡수된다.

다시 저축하기엔 버거운 현실.

결국, 퇴직 후를 기다리는 건 '아파트 한 채'라는 자산뿐이다.

그것이 통계가 말해주는 '평균적인' 인생의 종착지다.


김평균의 삶은 드라마틱한 반전이나 비극이 없다.

평범함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는 통계의 냉정함 너머에

존재하는 뜨거운 삶의 온기가 스민다.

새벽 지하철의 졸음, 월급날 계산기의 촉각,

대출 이자율에 떨리는 마음, 아이 등록금 명세서 앞의 한숨,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를 보며 흘러내리는 땀방울…

그 모든 것들이 '평균'이라는 숫자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는 실패한 인생이 아니다.


주어진 조건 속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성실하게 일하며,

가족을 이루고,

집 한 채를 마련했다.


대한민국 사회가 요구하는 '평균적인 성공'의 기준을 충실히 따라간 삶이다.

그럼에도 그의 인생을 바라보는 우리 마음 한켠에

맴도는 무거운 감정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평균'이라는 이름 아래 가려진,

개개인이 겪는 치열한 생존의 무게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일상의 용기 때문일 것이다.


통계는 김평균이 평균 수명까지 산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긴 시간을 채우는 건,

결국 평균을 이루는 숫자들이 아니라,

그 숫자들 사이를 꿰뚫고 흐르는 평범한 인간의 땀과 한숨,

작은 희열과 깊은 좌절의 물줄기다.


김평균은 단지 하나의 통계치가 아니라,

이 땅의 수많은 얼굴 위에 겹쳐지는,

우리 모두의 평범한 투영이다.

그의 삶은 완결된 통계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도 써 내려가고 있는 생생한 현장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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