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똑똑함과 현명함의 간극
어제 저녁 효자 아들이 집에 왔다.
- 청소년기 속만 썩이던 아들이
해외 출장 다녀오면서 비싼 양주를 샀다며
아빠와 한잔하고 싶다고.
"누구 찍었니?"
"이준석이요."
이유는 단순했다.
젊고 미래가 있으며 지금의 청년들을 대변한다고 했다.
--------ㅇ-------
우리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며
끊임없이 새로운 과제 앞에 고뇌해야 한다.
특히 올해 대선을 치르며 역사는 반복된다는
역사학자 토인비의 말을 안 떠 올릴 수가 없다.
역사의 거울에 비추어 보면 ‘똑똑함’만으로는
결코 험난한 파고를 헤쳐나갈 수 없다는 냉엄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최근 대한민국 정치에서 이준석 후보를 보며
느꼈던 안타까움은 바로 이러한 깨달음과 맞닿아 있다.
그의 날카로운 언변과 뛰어난 분석 능력은
분명 ‘똑똑함’의 영역에 속하지만,
그에게 부족했던 ‘현명함’은
결국 ‘경험 부족과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관우의 비극: 오만함이 부른 파멸
삼국지의 영웅 관우는 탁월한 무공과 의리,
충직함으로 민간에서 신으로 추앙받았지만,
정치적 관점에서 그는 한 나라의 운명을 망친
치명적 결함을 지니고 있었다.
위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오나라와 촉나라의
굳건한 동맹은 필수적이었고,
그 연결고리인 형주를 책임지던 관우의 역할은
오촉 동맹을 견고하게 유지하는 것이었다.
오나라의 손권은 오촉 동맹이 생존에 필수적임을 정확히 인식하고
관우에게 자녀들 간의 혼인을 제안하며
관계 강화를 꾀했다.
하지만 관우는
“개의 자식과는 결혼을 허락할 수 없다”는
냉소적인 반응으로 손권에게 깊은 모욕감을 안겼다.
결국 손권은 감정에 이끌려 관우를 공격했고,
관우는 처형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여기서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관우의 의형제였던 유비는 분노에 휩싸여 오나라를 공격했으나 참패했고,
이로 인해 오촉 양국은 막대한 국력을 낭비하며 쇠퇴의 길을 걸었고,
결국 위나라를 이은 진나라의 손에 멸망하고 말았다.
관우, 손권, 유비 모두 감정과 자존심에 이끌려
국가의 운명을 망친 이 비극적인 서사는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뛰어난 개인적 역량에도 불구하고
오만함과 미숙한 판단으로 동맹을 파기하고
국력을 낭비하는 모습은 현시대 정치인의 모습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준석 후보에게서 보였던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라는 비판 역시,
어쩌면 관우에게 부족했던 ‘현명함’의
부재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냉철한 판단과 전략적 사고는 뛰어났을지 몰라도,
감정을 제어하고 타인과 조화롭게 관계를 맺는 능력,
즉 ‘사람의 마음을 얻는 현명함’이 부족했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관우의 사례는 명확히 보여준다.
원한을 넘어선 연합정치
반면 마오쩌둥은 관우의 비극을 반면교사 삼아
‘현명함’이 무엇인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초창기 중국 공산당은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으로부터
대학살을 당하는 등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
공산당 입장에서 국민당은 불구대천의 원수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마오쩌둥은 들끓고 있던 분노의 감정을
철저하게 죽이고 2차 국공합작을 성사시켰다.
공산당은 소비에트를 해체하고 중화민국 내 자치정부로 전환했으며,
자신들의 군대인 홍군을 국민당 산하 8로군으로 편제하는 등
자존심마저 내팽개쳤다.
단기 이익을 포기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민당과의 연합을 추진한 것이다.
이는 국민당의 공격에서 벗어나 항일 전에 집중하기 위함이었다.
일본군이 도시를 기반으로 삼던 국민당을 약화시키는 동안,
공산당은 광활한 농촌 지역에서 유격전을 펼치며
민중의 지지를 얻어 급성장했다.
결국 항일전이 끝났을 무렵 공산당과 국민당의 힘은 완전히 역전되었고,
공산당은 내전에서 승리하여 오늘날의 중국을 탄생시켰다.
마오쩌둥의 사례는 개인의 감정이나 단기적인 자존심을
넘어선 전략적 현명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복수심이나 과거의 원한에 사로잡히지 않고,
오직 목표 달성을 위해 이질적인 세력과 손을 잡는 유연한 사고는
‘똑똑함’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현명함’의 경지이다.
와신상담(臥薪嘗膽)
누구나 다아는 와신상담 고사의 유래에서 보듯이
하루아침에 일국의 왕에서 노예가 된 구천은 죽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마음을 다잡고 복수를 결심했다.
일단 고국으로 돌아가는 게 급선무였다.
부차가 그를 순순히 고국으로 돌려보낼 리는 만무했다.
구천은 부차의 신임을 받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다 하기로 하고 궂은 일을 자처했다.
구천은 3년 동안 부차의 마구간에서 말을 돌보았다.
부차가 병이 들자 구천은 그의 똥까지 맛본 후 쾌유할 것을 예언했다.
부차는 구차의 충성심에 완전히 감복한 나머지
구천을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해준다.
귀향 후 구천은 머리맡에 쓸개를 달아 놓고
시간 날 때마다 핥으며 복수를 다짐한다.
그리고 10년 간 병사를 훈련시키며 월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후 마침내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이준석 역시 당대표까지 했고,
이전 대선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었다.
그래서 홀대 받은 그는 가슴속에 뜨거운 복수심이 끓어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원수의 똥까지 먹은
부차처럼 인내와 현명함이 없었다.
똑똑함에 가려진 현명함의 부재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도 ‘연합 정치’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해 좌절된 사례는 많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긴밀하게 협력했지만,
1987년 대선을 앞두고 갈라서며 군부 출신 대통령 당선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굳건한 동맹이 필요한 시기에
개인적인 경쟁과 자존심에 함몰된 결과였다.
민주주의는 정의의 싸움이 아니라 숫자의 싸움이다.
진보정당의 몰락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은 복지국가를 옹호하며 빠르게 지지를 확대했지만,
2008년 초 자주파와 평등파의 분당으로 생존조차 버거운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문재인과 안철수의 연합 실패 또한
지지자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분당으로 치달으며
한국 정치 지형에 또 다른 굴절을 가져왔다.
이러한 사례들은 뛰어난 정치적 감각과 지식을 갖춘
‘똑똑한’ 정치인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대의를 위해 개인의 감정이나 집단의 이익을 내려놓고
‘현명하게’ 연대하고 협력하는 능력이 부족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성공한 사례도 있다.
1990년 3당 합당은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과 야당이었던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하여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이 탄생한 사건과 김대중(DJ)과 김종필(JP)이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단일화를 선언한 DJP연합이다.
이준석 후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의 날카로운 비판과 분석은 분명 특정 지지층에게 어필했지만,
정치적 동맹과 연합의 중요성을 간과하거나,
혹은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던 모습은 이번 선거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경험을 넘어선 현명함의 추구
대한민국은 자원도 없고 오로지 수출로 생존해야 할 운명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미래의 과제 앞에 고뇌해야 한다.
이러한 시기에 필요한 것은 단순히 지식과 논리를 앞세우는
‘똑똑함’을 넘어선 ‘현명함’이다.
‘현명함’은 과거의 거울을 통해 현재의 문제를 또렷이 인식하고,
감정을 제어하며,
이질적인 세력과도 대의를 위해 손을 잡을 수 있는
유연한 사고와 통찰력을 의미한다.
정치는 협치를 통해서만 좋은 결과를 낳는다.
특히 국제 외교분야에서는 더욱더 필요하다.
이준석 후보가 앞으로 크게 성장하려면,
이 비판적인 수필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그의 뛰어난 ‘똑똑함’에 ‘현명함’이라는 날개를 달아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나이를 먹고 경험을 쌓는 것을 넘어선,
인간 본연의 감정과 이기심을 극복하고
더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성숙한 리더십이다.
어찌 되었든 이준석은 젊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 갈 우리의 아들이다.
그는 관우의 오만함이 불러온 비극과 마오쩌둥의 전략적 현명함,
부차의 와신상담이 이끌어낸 성공을 곱씹으며,
현명한 정치를 했으면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똑똑하지만 현명하지 못한’ 정치인들의 반복된
실패 속에서 한국 사회는 또다시 예측 불가능한 혼돈 속으로 빠져들지도 모른다.
당신은 어떤 리더십이 이 불확실한 시대를 헤쳐나가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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