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가 된 인간들 Idiocracy

주절주절

by 제임스


500년 후의 지구를 상상해보라.

거리를 가득 메운 광고판에는 화려한 영상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스마트폰 화면에 박힌 채 걸음을 재촉한다.

누군가 길을 묻자 손가락으로 허공을 톡톡 치며 말없이

홀로그램 지도를 띄운다.


서점은 오래전 사라졌고,

도서관은 VR 체험관으로 변했다.

영화 <이디오크라시>가 경고한 대로,

인류의 평균 IQ가 80 아래로 추락한 디스토피아가 펼쳐진다면?


영화 이디오크러시 (Idiocracy 2006 미국) 마이크 저지 감독/ 루크 윌슨


그 무서운 예언이 공상으로만 들리지 않는 까닭은,

우리의 인지 능력이 이미 미묘한 경사면을

굴러내려가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고학력 여성의 출산 기피와 열성 유전자 보유층의 다산이 지능 저하를 부른다"는

영화의 설정은 우생학적 편견을 담고 있지만,

핵심은 다르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이 '생각할 필요' 자체를 잃어간다는 역설이다.


영화 속에서 인간은 자극적이고 단편적인 것에만 열광한다. 고차원적인 사고는 사라진지 오래다. 영화 이디오크라시


덴마크 코펜하겐대 연구는 냉혹한 데이터로 이를 입증했다.

1998년 이후 군 입대자들의 IQ가 10여 년 새 1.5점 하락했고,

스마트폰 사용 시간과 지능 감소의 상관관계가 확인되었다.


1930년대부터 이어진 '플린 효과'(10년마다 IQ 3점 상승)가 깨진 것이다.

영양 상태 개선과 교육 확대가 가져온 지능 상승 추세를 기술이 뒤집은 셈이다.

문제의 핵심은 '언어의 쇠퇴'에 있다.

인간의 사고는 언어라는 그물로 세상을 포획한다.


인간의 뇌는 3중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생존과 본능에 대한 부분은 파충류의 뇌, 감정에 대한 것은 포유류의 뇌, 이성과 관련한 것이 인간의 뇌다


마르틴 하이데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선언한 것처럼,

우리의 인식 범위는 소유한 어휘의 경계를 넘지 못한다.

러시아 학자 알렉산드르 루리야의 연구가 이를 증명한다.


추상화와 논리 추론의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글이라는 도구를 통해 길러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문자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한국인 10명 중 3명은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으며,

대학생의 일일 독서 시간(42분)은 인터넷 사용 시간(127분)의 1/3에 불과하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찾기 어려워진 지 오래다.

아이들은 질문이 생기면 유튜브로 동영상을 검색하고,

성인들도 장문의 기사를 읽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텍스트를 처리하는 전두엽의 근력이 빠르게 약화되는 중이다.

SNS와 메신저가 일상언어를 단문과 이모티콘으로 격하시키면서,

생각의 깊이는 수심 1cm의 웅덩이로 변해간다.


이미지와 동영상 중심 문화가 불러온 인지 재편은 더욱 심각하다.

"퇴근 후 뭐 먹지?" 같은 단순 사고는 시각적 이미지로 처리되지만,

"기후 위기 해결 방안" 같은 복합적 사고는 언어 없이 불가능하다.

동영상 플랫폼이 지식 전달의 주류가 될수록,

인간의 사고는 점차 '보고 느끼는' 포유류 뇌 수준으로 퇴행한다.

추상적 사유를 담당하는 신피질이 마비되면서 논증 능력은 사라지고,

감정적 자극에만 반응하는 원시적 소통이 판을 친다.


온라인 공간이 증오 발화와 비이성적 논쟁으로 가득한 현실이 그 증거다.

"언어의 한계가 곧 인식하는 세계의 한계"(비트겐슈타인)라면,

우리가 마주할 미래는 점점 좁아지는 사고의 감옥일 것이다.



기술이 인간을 대신해 생각해주는 시대,

스스로 사고하지 않는 종은 진화에서 도태된다.

500년 후 바보들만 남은 지구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종이 책을 펼칠 때,

문자로 쓴 일기를 통해 내면과 대화할 때,

우리의 전두엽은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어둠 속에 던져진 성냥갑처럼,

한 줄의 문장이 생각의 암흑을 가를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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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l6IlUqpOjZo?si=HfnK9aA1HZqCCe3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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