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현실을 껴안는 믿음의 힘
"긍정의 힘!"이라는 구호가 전 세계를 휩쓸던 시절이 있었다.
조엘 오스틴 목사의 메시지처럼 낙관만이 만병통치약이고,
미소가 모든 문을 열며,
부정적 생각은 성취의 적이라는 믿음이 우리를 지배했다.
'믿는 대로 된다'는 긍정의 주문은 현대인에게 강력한 위안과 동력이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이상한 역설이 드러났다.
《애틀랜틱》지와 여러 연구들은 오히려 부정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더 오래 살고,
더 많은 소득을 올리며,
더 건강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충격적인 결과를 발표했다.
낙관의 빛나는 기대가 가혹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던 것이다.
낙관의 함정
낙관론자의 장밋빛 안경은 위험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
방사성 기체 라돈의 위험 경고를 들었을 때,
비관론자는 즉시 집을 점검하지만
낙관론자는 '내게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며 무시하기 쉽다.
미국 국립암연구소 연구에 따르면,
질병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건강 검진에 더 적극적이어서
조기 발견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학업에서도 마찬가지다.
낙관적인 학생이 기대 점수를 받지 못하면 극심한 좌절에 빠지지만,
부정적 전망을 해온 학생은 나쁜 결과에도
차분히 대응하며 다음을 준비한다.
부부 관계에서도 지나친 낙관은 독이 된다.
비현실적 기대를 품으면 현실의 거친 면모에 부딪혀 관계가 쉽게 흔들린다.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낙관주의자, 부정적인 요소를
더 먼저 인식하는 비관주의자,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현실주의자 가운데,
누가 가장 행복할까?
지금까지는 낙관주의자가 더 행복하다는 주장이 대세였으나,
최근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국 바스대학교 경제학과 부교수인 크리스 도슨(Chris Dawson)과
런던정경대 교수인 데이비드 데 메지(David de Meza)가
1,601명의 영국인을 낙관주의자, 비관주의자, 현실주의자 등 세 그룹으로 나누어
18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현실주의자 그룹의 웰빙 수준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방어적 비관론의 힘
부정적 사고는 단순한 방패가 아니다.
미시간대 심리학자들이 제시한 '방어적 비관론'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리며 철저히 준비하는 적극적 생존 전략이다.
'잘못될 수 있다'는 생각이 오히려 집중력을
극대화하고 모든 가능성을 꼼꼼히 점검하게 만든다.
영국에서 20년간 자영업자를 추적한 연구 결과,
이런 비관론자들은 낙관론자들보다 평균 25%나 더 많은 소득을 올렸다.
불안한 마음이 더 치밀한 계획과 실행으로 이어진 결과였다.
개인을 넘어 사회적으로도,
들뜬 분위기보다 차분한 때에 사람들은 더 진지하게 소통하고
복잡한 문제를 공정하게 바라본다.
심리학 연구는 슬픔을 경험한 사람들이 오히려
타인에게 더 관대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스톡데일 패러독스
베트남 전쟁 당시 8년간 포로수용소에서 고초를 겪은
미군 장교 제임스 스톡데일의 이야기는 이 모든 것을 집약한다.
수용소에는 "이번 부활절에는 풀려날 거야"라며 근거 없는 희망에
기댄 낙관론자들과 "풀려나긴 글렀어"라며 포기한 비관론자들이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계속되는 실망에 절망하여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스톡데일은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의 비결은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끝까지 살아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다진 현실주의에 있었다.
경영학자 짐 콜린스는 이를 '스톡데일 패러독스'라 명명하며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라"고 강조했다.
통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스톡데일은 자신의 생존 비결을
고대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가르침에서 찾았다.
노예 출신의 절름발이였던 에픽테토스는
"절뚝거림은 다리의 장애일 뿐,
내 의지까지 절뚝거리게 하지는 못한다"고 선언했다.
그의 철학 핵심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철저히 구분하고,
에너지를 오직 전자에 집중하는 데 있었다.
우리 인생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유는
'애초에 할 수 없는 일'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비하기 때문이다.
공부에 영 취미가없는 아이에게 학원을 열심히 보내면 될까?
주식에 투자 해 놓고 올라 달라고 고사를 지내고
밤낮으로 주가를 보며 안절부절한다고 내 주식이 오를까?
우리 욕망 안에는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혼재되어 있다.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할 수 없는 것'에 에너지를 소진할 때,
우리는 "왜 안 되는 거야?"라며 인생을 원망하게 된다.
막연한 낙관주의가 모든 게 가능할 것 같은 환상을 심어주고,
그 환상이 깨질 때 우리는 자책에 빠진다.
진정한 믿음의 힘
"믿는 대로 된다"는 진리는 맹목적인 낙관의 주문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을 냉철히 직시하는 용기,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곳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지혜,
그리고 통제 밖의 것들에 대한 초연함이 결합된 상태에서 비로소 실현된다.
스톡데일이 포로수용소에서,
에픽테토스가 신체적 고통 속에서 보여준 것처럼,
가장 어두운 그림자마저 껴안을 때 비로소 진정한 빛이 우리를 인도한다.
허상을 벗어던지고 현실을 응시하는 냉철함이 위험에 대비하게 하고,
기대를 낮춤으로써 작은 기쁨에도 감사하게 한다.
어둠을 직시하는 용기에서 우러나오는 건설적인 부정성,
그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통찰과 끈질긴 생존 본능이 우리를
더 튼튼하고 현명하며 오래도록 이 땅에 머물게 하는 진정한 비결이다.
믿는 대로 되는 세상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믿고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