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나는 이솝우화 속 그 잔인한 장면을 떠올린다.
목마른 새끼 양이 맑은 시냇물을 마시는데,
갑자기 나타난 늑대가 목숨을 위협한다.
“네가 물을 흐려 마실 수 없게 했다”는 억지 뒤엔,
결국 “너를 잡아먹겠다”는 본질이 드러난다.
힘 있는 자의 논리는 진리라는 비극처럼.
요즘 대통령 사면권 논란 속에서
권력의 자의성에 대한 우려가 사회를 갈라놓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광복절 특별사면 명단 발표 후,
여론은 마치 우화 속 시냇물처럼 거세게 요동친다.
“사면하면 안 될 인물들을 포함했다”는 비판-
민주화 운동도 아닌 입시 비리와 위안부 할머니 지원금 횡령 등-
이 폭풍 속에서 나는 문득 늑대의 억지 주장이 생각난다.
사실과 무관하게 목적을 정당화하는 권력의 수사(修辭) 말이다.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헌법이 부여한 절대적 권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액턴 경의 명언처럼,
사면권 행사엔 국민의 신뢰를 책임지는 무게가 따라야 한다.
우화 속 늑대가 시냇물을 빌미로 삼았듯,
권력의 논리도 공익보다 사익을 감추는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
정의는 눈가리개를 한 채 저울을 든다.
그것은 편견 없는 공정함의 상징이다.
그런데 사면권 앞에서 정의의 여신은 혼란스러워한다.
법정의 판결을 무력화하는 행정권의 힘 앞에
저울추는 한쪽으로 쏠리고,
눈가리개는 벗겨진 채 ‘누가 더 유리한가’ 를 살핀다.
민심은 안중에 없고 정치적 보은만 남았다.
마치 늑대가 새끼 양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무시했듯,
합리적 의심을 제쳐둔 권력의 독주가 정의를 위협한다.
정치적 이해와 인간적 정리가 얽힌 이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으로 진실을 가려야 할까.
이솝우화가 단순한 동물 이야기로 깊은 교훈을 전하듯,
사면 논란도 ‘옳고 그름’ 이상의 복합적 층위를 지녔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화의 교훈이 “강자의 논리는 약자를 착취한다” 는 경고라는 점이다.
「늑대와 새끼 양」의 결말처럼,
권력의 남용은 사회의 뿌리를 약화시킨다.
사면권이 특정 세력의 보호막으로 전락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용서가 아닌 특권의 방패가 되고,
법치의 강은 오염되어 신뢰라는 물길을 마르게 한다.
이솝우화는 비극으로 끝나지만,
우리는 다른 결말을 써야 한다.
진정한 사면은 상처 치유의 시작이어야 하며,
공동체 화합의 다리가 되어야 한다.
우화 속 새끼 양이 마신 깨끗한 물처럼,
투명하고 공정한 기준이 논란의 강물을 정화할 것이다.
나는 우화의 마지막 장면을 상상해본다.
늑대가 물을 가로막지 않고,
새끼 양과 함께 강가에 앉아
공정한 규칙 아래 물을 나누는 모습을.
우리 사회도 권력의 일방적 논리가 아닌,
상생의 지혜로
갈등의 계곡을 메울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