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진 시간의 강

일상 속으로

by 제임스

"요즘 애들 싸가지 없다"는 말은 기원전 1700년 바빌로니아 점토판에서도,

1311년 대학생을 비판한 알바루스 펠라기우스의 글에서도 발견된다.

젊은 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불만은 인류의 오랜 전통이었다.


고대 수메르인이 점토판에 남긴 글귀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세대갈등은 단순한 불평을 넘어

사회를 분열시키는 심각한 문제로 번져버렸다.

전 세계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안고 있는

한국의 세대갈등은 왜 이토록 심각해졌을까?


과거의 세대갈등은 지금과는 성격이 달랐다.

짧은 세대교체 주기와 느린 사회변화 속에서

가정 내 지식전달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고,

일반적으로 세대가 거듭될수록 생활이 나아졌기에

"다 가르쳐주는데 왜 제대로 안 따라오냐"는 식의

애정 어린 꾸지람 정도였다.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것이 당연했던 시대에는

개인의 문제일 뿐 사회갈등의 형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다르다.

급격한 수명 증가로 고령층 부양에 국가 세금의 상당 부분이 투입되고,

기술과 문화, 경제 상황과 미래에 대한 관점이 이전 세대와 완전히 달라졌다.

단순한 나이 차이에서 오는 오해를 넘어 연금 문제처럼

직접적인 이익과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다.

전 세계 청년층이 스스로를 "희생당한 세대", "두머", "탕핑", "사토리 세대"라고

부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 모두 자신을 피해자나 희생자로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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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선진국의 공통된 문제인 저출산으로 인해

윗세대보다 인구가 적은 청년층은 압도적으로 많은 기성세대와

고령층 앞에서 발언권이 약할 수밖에 없다.

경제권과 기득권은 대부분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고,

선출직 결정권자와 투표권자 역시 기성세대에 집중되어 있어

정치인들은 표가 많은 이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라는 말이 현실이 되어버린 지금,

청년들은 과거와 같은 노력을 해도 같은 결과를 얻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특히 한국의 세대갈등이 유독 심각한 이유는 초고속 압축성장에 있다.

서양이 100년에 걸쳐 이룬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한국은 50년 만에 압축해 이뤘다.

6.25 전쟁 직후 전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나라가

산업화, 민주화, 선진국 진입까지 단숨에 달성한 것은 대단한 성과지만,

세대갈등을 포함한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각 세대가 경험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변화가 너무나 달라서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2000년대 이후 본격화된 세대갈등 담론은 2020년대에 들어 극에 달했다.

SNS 발달과 경제 상황 악화가 겹치면서 세대가 받는 이익과 관련된

요소들이 중요 정책 문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으로 인한 일자리 양극화,

세대와 자산 계층이 겹쳐진 부동산 문제,

본질적으로 세대 간 계약인 연금 문제까지 모든 것이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여기에 정치 양극화와 편향된 미디어가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전체의 84%가 세대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고,

55%가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제 세대갈등은 단순한 차이를 넘어 서로를 혐오하고 증오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청년층은 "우리가 과도한 부담을 안는다"고 느끼고,

기성세대는 "노력과 저축으로 이뤄낸 것"이라고 주장한다.

각자의 입장에서는 모두 옳지만,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한 이 갈등은 해결될 수 없다.


만약 이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

서로를 혐오하고 증오하며 더욱 팍팍하고 우울한 사회가 될 것이다.

행복도는 낮아지고 서로를 향한 도움의 손길은 줄어들 것이다.

새로운 사회문제가 던져질 때마다 '네 편, 내 편'으로 갈라져 싸우고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세대갈등의 가장 좋은 해결법은 어렵지만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다.

청년층의 어려움도 인정하고,

기성세대가 겪었던 후진국 수준의 열악한 환경과 아픔도 이해해야 한다.

특히, 부모로써 선배로써 더 양보하고 더 이해해야한다.

서로를 이해하고 각자를 인정하지 않는 이상,

사회문제로 번진 세대갈등은 해결할 수 없다.


갈라진 시간의 강 위에 놓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리다.

혐오와 증오 대신 대화와 소통, 이해를 통해 세대 간의 깊어진 골을 메워야 한다.

갈등이 단순한 차이 정도에서 머물기를,

그리하여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실마리를 찾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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